2024년 5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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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문화] 전통문화와 동양생명관 ③초월적 종교생명

이향만 교수(서강대 생명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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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의 가르침을 따르는 이상적 생명관은 생명으로 말미암아 현실을 살아가는 주체가 되게 하고, 살아있는 의미를 찾게 하며, 생명이 지향하는 바를 좇아 지극한 선의 경지에 도달하도록 수행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공자는 "아침에 도를 듣는다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했다. 얼마나 간절한 바람인가? 또 "도에 뜻을 두고, 덕을 바탕으로 하고, 인에 의지하여, 예로 향유하라"고 했다. 이를 통해 공자의 사회적 생명관은 궁극적으로 도와 일치하는 도덕생명을 지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도와 일치한다는 것은 진리 안에 삶으로써 생명이 본래 의미를 발현케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덕생명은 윤리적 차원을 넘어서 생명 본질을 고양시키고, 형이상학적 의미에 다다르는 점에서 초월적 종교생명이라고 할 수 있다.

 노자는 도와 일치한 성인의 마음은 생명의 충기(沖氣)로 가득 차 모든 사람에게 생명의 기운을 불어 넣어주며,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품어 안으므로 사람들은 평화를 누리고 안식을 찾게 된다고 했다. 그럼에도 "성인은 스스로 몸을 겸손하게 뒤로 하여 몸이 드러나게 하며, 몸에 관심을 두지 않음으로써 몸이 있게 한다." 이것이 자기를 없게 함으로써 자기를 이루는 성인의 삶이다. 성인이 도를 따르는 것은 도의 공평함이 천하의 시작부터 있었기 때문이다. 도는 너그럽고 공평하게 우리에게 생명을 내어주고 살린다. 그러므로 도 안에 머무는 삶은 용서를 받아 새로운 생명으로 고귀하게 된다고 하는 것이다. 노자에게 도는 어머니와 같은 생명의 풍요와 기다림과 너그러움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도는 생명의 어머니로서 우리가 부르기 전에 이미 우리를 그 품 안에 도의 아들로 나날이 새로 낳아준다고 했다.

 인간은 누구나 고유한 도덕적 본성을 갖추고 있으며 도덕적 본성을 통해 생명의 의미가 구현되고 완성될 수 있다. 공자와 노자의 도덕적 생명관은 맹자와 장자에 이르러 그 의미가 발전적으로 나타난다. 맹자가 "만물이 모두 나에게 구비되어 있다"고 하는 것은 인성이 모든 생명에 참여하고 모든 생명 안에서 완성됨을 의미한다. 그런데 맹자의 관심은 생명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성향과 생명력[氣]에 있다. 맹자가 말하는 모든 사람에게 내재되어 있는 `남의 고통을 그냥 보고 지나치지 못하는 마음`[不忍人之心]이 바로 생명의 성향이다. 이 생명의 성향은 자기 생명에 대한 관심에서 머무르지 않고 다른 생명에 대한 관심으로 자기 생명을 의미를 고양시키는 것이다. 그 생명의 기운이 다름 아닌 호연지기다.

 맹자의 철학을 잇는「중용」에 나타난 도덕생명의 완성에 관한 언급은 생명에 내포돼 있는 창조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오직 온 천지에서 지극히 성실한 자만이 자기의 생명을 극진히 완성할 수 있다. 자신의 생명을 극진히 발휘할 수 있는 이는 또한 남의 생명도 극진히 완수할 수 있다. 남의 생명을 완수할 수 있는 이는 더 나아가서 만물의 생명을 극진히 완수할 수 있다. 만물의 생명을 극진히 할 수 있는 이는 천지의 화륙을 도울 수 있다. 천지의 화륙을 도울 수 있으면 그는 천지에 참여할 수 있다." 여기서 참여란 방동미의 번역처럼 관계의 완성으로 인간이 천지와 함께 공동의 창조자가 되는 것이다.

 맹자의 도덕적 생명관이 사회적이고 관계적이라면 장자의 생명관은 다양한 생명현상이 모두 내적 자유와 영적 상승을 위한 과정으로 나타나 있다. 장자에게 생명성은 변화의 주체로서 자연의 변화와 일체감을 갖으며 현상적인 제약으로부터 소요(逍遙)할 수 있는 완전한 자유 안에 내재돼 있다. 북명(北冥)의 곤(鯤)이 붕(鵬)이 되어 남명(南冥)으로 날아가는 우화가 바로 변화와 생명의 여정을 잘 함축하고 있다.

 장자는 도덕생명을 구현한 완전한 자유인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옛날에 진인은 태어남을 기뻐하지 않고 죽음도 싫어할 줄 몰라서 거스르지 않았다. 태연히 왔다가 태연히 갔다. 어디서 왔는지 잊지 않고 어디로 가는지 묻지 않으며, 살고자 몸부림치지 않았다. 받는 대로 기뻐하고 잃는 대로 되돌렸다. 이것을 일컬어 마음이 도를 손상시키지 않으며, 사람이 하늘을 조장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러한 사람을 진인이라고 한다." 진인의 실체는 살고 죽음을 넘어서 도와 일체를 이루는 데에 있다. 변화를 대상화하지 않고 변화와 함께 어우러지는 삶에서 완전한 자유를 향유하는 데 있다. 실로 동아시아 고대인들이 추구한 완전한 생명성은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여전히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아름다운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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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2-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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