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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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문화] ⑥ 서사와 생명

삶의 고유성과 보편적 가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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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향만 교수(서강대 생명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
 
  인간의 문화적 행위 가운데 가장 늦게 나타난 것이 서사(敍事)이다. 서사는 인류의 세계 이해 과정을 설명한 비유적 이야기로서 시, 설화, 신화 등으로 표현된다. 서사는 고대인의 생명관, 세계관, 인간관에 대한 서술에서 비롯된다. 점차 문학형식으로 발전해 다양한 장르로 나타났다.

 서사는 동서고금에 국한되지 않는 인류의 정신적 유산으로 인간이 추구하는 궁극적 가치를 반영하고 있다. 인간은 상징을 공유하는 존재로서 서사를 통해 인간 생명의 의미와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 그리고 인간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 물어 왔다.

 이 과정에서 서사는 삶의 정황에 대한 심층적 해석을 돕고 삶을 새로운 지평에서 바라보게 했다. 지혜를 전승하는 상징체계로서 신화는 생명의 시원과 인간 기원과 공동체적 삶의 지향성에 대해 전하고 있다. 이 점에서 서사는 사려(思慮)하는 삶이 이룬 상징적 유산이다.

 전승된 신화와 설화 내용 분석을 통해 사람들은 당면한 삶의 조건과 의미를 깨달아 왔다. 고전이나 성경을 반복해서 읽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세상에 새로운 일이란 전혀 없는 듯 고전은 읽는 가운데 우리에게 삶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이미 써진 보편적 텍스트로서 서사는 지금 써가고 있는 내 서사와 대조하게 해서 내 삶의 고유성과 보편적 가치를 발견하게 한다. 예를 들어 비극적 드라마를 접하는 가운데 우리는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동정심으로 슬퍼하기도 하지만 단지 거기서 머물지 않는다.

 비극적 서사는 비극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게 하고, 내 삶의 비극적 요소가 무엇인지 묻고, 내가 비극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자성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나아가 나도 언제든지 비극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될 때 비극은 내 텍스트로 전환된다. 이 때 서사구조를 심층적으로 이해하는 과정은 고유한 서사를 쓰는 일이 된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단군신화는 이상적 인간상을 이루는 인간본성의 구성요소와 생명성에 대해 잘 설명해 주고 있다. 하늘에서 땅을 향하는 환인(桓因)의 사랑은 인간정신이 지향해야 할 궁극점과 종교성을 암시하고 있다. 어두운 굴 속에 머무는 곰이 빛을 향해 나아가는 인고의 과정은 인간 본능과 완전한 인간성의 조건이 무엇인지를 잘 가르쳐 주고 있다. 신이 사람이 되고, 동물이 사람이 되는 하강과 상승의 신비로운 교차점에서 인간 단군이 태어난다. 단군은 하늘과 땅의 요소를 갖춤으로써 완전한 인간이 된다.

 이러한 원형적 서사구조는 다른 종교 설화에서도 보편적으로 발견된다. 또 다른 신화에서와 같이 단군신화의 서사구조 안에 배치돼 있는 여러 상징들은 단지 신화를 구성하는 요소가 아니라 서사를 읽는 독자가 스스로의 삶의 구조에서 구체화해야 할 상징들이다. 신화를 읽는 독자가 텍스트에 내재된 도덕적 요청을 인식하게 될 때 서사구조는 개인의 삶 속에서 의미화를 불러일으키게 될 것이다. 이 때가 신화적 지평에서 역사적 지평으로 의미변화가 일어나는 시점이다.

 이런 까닭으로 신화에 내재돼 있는 진리와 선과 아름다움의 요소는 단지 읽고 이해하는 데서 그칠 내용이 아니라 우리가 삶 가운데에서 새로 써 내려갈 이야기다.

 신화창조는 다른 말이 아니라 우리가 삶 속에서 새로운 진리를 발견하고, 새로운 윤리적 삶을 살아가고, 삶의 새로운 아름다움을 나타낼 것을 기약하는 말이다. 이 때 신화는 우리 모두가 함께 꾸는 꿈이며, 이상이 된다. 그러므로 신화는 옛이야기가 아니라 살아있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자, 내 이야기이다.

 연필심이 없이는 그림을 그릴 수 없듯이 생명은 한 인간의 여정을 그려내는 사람의 심(心)이다. 심을 가는 일은 뼈를 깎듯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더 분명하고 또렷한 인생을 살기 위한 필연적 조건이다. 그렇듯 사람의 생명성은 가장 고통스러울 때 드러난다. 아름다운 사랑은 목숨을 바치는 희생 가운데 이뤄진다. 진리는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 가운데 홀로 밝혀진다. 이 모두는 역사적 서사가 전해주는 역설들이며 생명의 서사이다.

 인간의 삶은 일시적이지만 서사는 사라지지 않는다. 옛 서사에 이어 나날이 새로 쓰이는 서사는 생명의 가치와 신비를 더욱 밝혀줄 것이다. 우리 모두는 그 서사를 써가는 주인공들이며 나아가 우리 모두의 삶은 고양된 생명을 지향해 함께 일치할 아름답고 거룩한 서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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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2-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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