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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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문화] 생명존중의 생명과학적 의미 ③생명체의 시작(하)

독립 생명체 수정란 인권 존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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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원선 교수(서강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위원)
 
  일반적으로 동물의 발생 과정에서 수정을 기점으로 해서 몸의 전체적 구도가 잡히고 기관이 형성되기까지 단계를 배아(胚芽) 시기라고 한다. 인간과 같이 모체 내에서 발생의 상당 기간을 보내는 경우, 배아 이후부터 출생 전까지 단계는 태아(胎兒) 시기라고 한다.

 그런데 사람을 포함한 포유동물은 이러한 과정들이 체내에서 진행되기에 외부에서 변화 모습을 실시간으로 관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영상진단 기술이 개발되기 이전에는 발생 과정에서 일어나는 구체적 변화 모습을 대체적 모델 생명체의 관찰을 통해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발생 과정이 비교적 소상하게 밝혀진 것은 개구리, 닭, 생쥐와 같이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생물들을 대상으로 연구해 얻은 결과이다.

 과연 배아와 태아는 생명체라는 의미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생물학적 의미에서 생명현상은 그것을 발하는 주체가 수정란이건, 배아이건, 혹은 태아이건 별반 다르지 않음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다만 생명현상이 수행되는 방식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배아에는 위나 장과 같은 소화기관은 없지만 난황이나 모체의 혈류로부터 공급되는 영양소를 궁극적으로 그것을 이용하는 세포가 흡수하여 기본적 생명활동에 이용하는 면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기실 수정이 일어나면서 수정란에는 지속적으로 미세한 변화가 일어나 초기 배아가 점점 종 고유의 특이한 모습을 띠게 된다.

 이 과정에서 앞서 일어난 변화는 다음 발생단계의 전초가 된다. 즉 수정이라는 원인 사건이 다음에 일어나는 난할이라는 사건의 단초를 제공하는 것이다. 난할이 일어나면서 세포들은 자신이 위치한 장소와 인접하고 있는 세포의 영향에 의해 조금씩 차별성을 보이게 된다.

 이렇게 차별성을 보이는 세포들 집단을 배엽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차별성을 띠게 된 이들 세포집단은 더 이상 그 상태로서는 불안정하기에 최대한 안정된 배열 상태를 갖게 되는 집단적 움직임을 보이게 된다. 이것을 전문용어로 `낭배운동`이라 부르는데, 이 때 `원시선`이라고 부르는 움푹 팬 구조가 세포들이 집단적으로 배아의 내부로 이동해 들어감으로써 나타난다. 이것은 심장이나 눈과 같은 기관이라기보다는 한시적으로 나타났다가 없어지는 세포집단 움직임의 궤적이다.

 한편 수정란은 난할을 하면서 내부에 주머니를 지닌 배반포로 발달하는데 이것이 자궁벽에 자리를 잡는 현상을 착상이라고 한다. 착상 과정이 전개되면서 태반이 형성되는데 태반은 모체에서 유래하는 자궁내막과 배아에서 유래하는 배외막이 합쳐진 것이다. 따라서 태반은 일방이 아닌 엄마와 아기의 합작품인 셈이다.

 태반이 발달하면서 배아는 자신의 영양 및 산소 공급과 노폐물 배출을 모체에 의존하게 된다. 그렇지만 생명현상은 엄연히 배아나 태아에 의해 독립적으로 수행되고 있다. 단지 엄마의 몸 안에서 숨을 쉬고, 밥을 먹고, 배설을 하며 성장을 하는 것이다.

 세포들의 이동으로 배아에는 뇌와 척수를 만들게 될 신경관이 나타나고, 이어 다른 장기들이 순차적으로 자리를 잡는다. 이렇듯 생명체의 삶의 과정인 발생은 단편적 현상이 아닌 연속적 변화의 과정이며 각 단계는 밀접한 인과관계로 이어진다. 따라서 수정란에서 출발해 형성되는 각 단계의 배아는 모습을 달
리해 가며 시시각각 변화하는 하나의 생명체와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거의 모든 발생학 분야 서적은 수정란을 새로운 생명체의 시작으로 기술하고 있다. 초기 난할로 인해 여러 개의 세포를 갖게 된 수정란이 단순한 세포덩어리일 수 없으며 원시선의 유무, 심장과 같은 기관의 형성, 착상을 생명체 여부를 판단하는 준거로 주장하는 일부의 견해는 과학적 타당성을 결여한 지극히 편의주의적 발상일 뿐이다.

 근래에 이르러 생식의학과 재생의학의 발달과 더불어 독립된 생명체인 수정란을 마치 개인의 소유물인 것처럼 여기는 풍조가 사회에 만연하고 있다. 수정란을 비롯한 어린 배아는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이며, 그렇기에 방어능력이 없는 사람인 수정란의 인권은 더욱 존중받아야 한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루카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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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2-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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