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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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문화] 무익한 연명치료 중단 ② 꿈속에서 맞는 임종- 완화적 진정(말기 진정)

통증 없는 삶의 마지막을 보낼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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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승민(가톨릭중앙의료원 의료협력본부 사무국장, 가정의학과 전문의)
 
  "어머니…엄마…."
 할아버지 신부님께서 입원해 계신 호스피스 완화의료 병실. 지난주부터 부쩍 자주 어머니를 찾는 소리가 통증을 참는 신음과 함께 나오고 있었다. 무리한 항암화학치료도 받지 않고 계셨으며 심폐소생술 거부 동의서에도 이미 서명하신 상태였기에 할아버지 신부님의 의학적 상황 상 무익한 연명치료에 해당될 것은 없었다.

 문제는 조절되지 않는 통증이었다. 온갖 방법을 사용해도 신부님의 전신에 퍼진 암에 의한 통증은 잘 조절되지 않았다. 환자가 통증에 시달리면서 삶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게 되는 것은 환자 본인에게 뿐만 아니라 이를 지켜보는 보호자들에게도 큰 고통이자 슬픔이며, 의료진에게는 현대 의학의 실패를 확인하는 좌절의 시간이기도 하다.

 그리스 신화의 이야기이다.
 예정보다 한참이나 지나도 바다로 떠난 남편(케익스)이 돌아오지 않자 아내(알키오네)는 날이면 날마다 항구에 나가서 배가 어서 빨리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신께 기도를 바쳤다. 제발 무사하게 해달라고. 남편을 다시 보고 함께 행복한 시간을 누리고 싶다고.

 하지만 이미 오래전에 남편은 풍랑에 배가 침몰하면서 죽은 뒤였다. 이미 죽은 사람의 무사함을 비는 간절한 기도에 신은 매우 슬퍼하며 이제 사실을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에 모든 사람의 형상으로 변신이 가능한 모르페우스를 불러 아내의 꿈속에서 남편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했다.

 아내는 꿈속에서 남편의 모습을 한 모르페우스를 만나게 되고 이제 더 이상 남편과 함께 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눈물 속에서 잠에서 깬 아내는 바닷가로 나가서 무사히 돌아오게 해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명복을 비는 기도를 바쳤다.
 
 신부님은 두 살 때 아버지를 여의셨다. 그래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아예 없고, 행상을 하셨던 어머니와 단 둘이서 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하셨다. 동네에 있던 작은 성당 공동체에 많은 의지를 하며 생활하셨던 어머니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성당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성장하셨다. 먼 친척 중에 수녀님이 한 분 계셨기에 막연하지만 성직에도 관심이 있었고 고교 시절을 보내면서 자연스럽게 신부님이 될 결심이 섰다고 하셨다.

 하지만 당신께서 신부님이 되실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몇 번이고 강조하셨다. 어머니 사진을 지갑에 넣어 항상 품에 갖고 다니시고, 신학교 입학식 때 함께 찍은 사진은 액자에 넣어 항상 사제관 책상의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놓아두셨다고 했다.

 신부님은 사실상 어머니가 아버지이자 스승이고 친구이자 연인이셨던 것이다. 하지만 신부님이 되는 걸 그 누구보다 기뻐해주셨을 어머니는 사제 서품식에 함께 하실 수 없었다. 서품식 몇 달 전에 갑자기 쓰러지셨다가 깨어나지 못하고 바로 돌아가셨던 것이다.

 어머니 얘기가 나올 때마다 신부님의 눈시울이 붉어지는 걸 신자들은 다 알고 있었다. 신부님은 암 진단을 받으시고 몸이 쇠약해지시면서 부쩍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난다고 하셨다. 통증에 시달리다가 어느 때는 어머니를 꿈속에서 만나 뵌 것 같다고도 하셨다.

 신부님은 모르핀에 의지해서 잠이 든 그 순간만큼은 암성 통증에서 벗어나 있었다. 주무시고 계신 그 때의 표정은 이 세상의 모든 아픔에서 벗어나 행복함으로 가득 차있는 것 같았다. 마치 모르페우스가 어머니로 변해서 신부님 곁에 함께 계신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신부님은 이제 오늘 내일 하시는 상황이었다. 통증이 조절될 때까지 모르핀 농도를 조금씩 높였다. 모르핀의 영향으로 깊이 잠이 드신 신부님은 이제 다시는 깨어나지 못하실 것이다. 이렇게 더 이상의 통증 없이 평안하게 주무시는 중에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시간이 되면 자연스럽게 호흡이 멎고 심장이 멈추게 될 것이다.

 살며시 미소를 띤 것처럼 느껴지는 신부님의 얼굴을 본다. 지금 꿈속에서 분명 신부님은 사제 서품식에 오신 어머니와 함께 계실 것이다. 또한 첫 미사 집전 때 멀리서 기쁨의 눈물로 기도하고 계신 어머니를 만나고 계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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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2-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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