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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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문화] 현대 생명과학의 '오류'

존재ㆍ초월적 '생명의 진리' 수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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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신비 무시하는 맹목적 과학지식은 독선적 신념

 
▲ 신 승 환 교수(가톨릭대 철학과,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위원)
 

    인간의 삶과 다른 동식물의 생명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구분된다. 우리 인간도 생명체인 만큼 동식물처럼 생리적이며 생물학적 측면에서 이해되는 생명이지만, 다른 한편 동식물이 지니지 못한 층위의 생명, 생명성을 지니고 있다. 이것을 우리 말에서는 삶과 생명이란 이름으로 구분해 표현했다.
 우리는 이런 구분을 통해 인간의 문화적인 생명, 의미와 역사적 과정을 통해 이해되는 생명으로 규정하고, 그렇게 드러나는 생명의 또 다른 층위에 대해 생각하고 이를 표현했다. 생명에 대해 논의하려면 이렇게 생명으로서의 같음과 다름을 함께 성찰해야 한다.
 이러한 체험은, 흔히 철학의 발상지라고 말하는 고대 그리스에서도 비슷하게 드러난다. 그들은 생명을 두 가지 관점에서 바라보고 이를 달리 표현했다. 생리적이며 생물학적인 측면과 인간적이며 의미론적인 생명, 생물적 층위 너머의 생명을 `조에`(zoe)와 `비오스`(bios)란 말로 달리 개념지어 이해한 것이다.
 그러나 라틴어를 거쳐 현대 유럽어에 와서는 이러한 체험은 가려지고, 생명을 이해한 분명한 구분은 사라지게 된다. 영어 `라이프`(life)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듯이 유럽어는 생명이 지닌 의미론적이며 초월적인 측면과 생리적이며 생물학적인 차이는 물론, 이 두 층위가 상호작용하는 원리를 분명하게 표현하지 못한다.
 현대 생명과학은 이러한 오류를 남김없이 보여준다. 생명은 한편으로 생리적이며 생물학적인 영역을 지니기에 분명 자연과학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생명은 또 다른 한편 그러한 차원을 초월하는 의미론적이며,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층위를 지닌다. 생명은 초월적이며, 정신적 층위를 배제할 경우 결코 올바로 이해할 수 없다.
 현대 생명과학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무시하고 배제하기에 생명의 진리를 왜곡하고 생명을 다만 물질적 차원으로 환원시키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 생명을 객체적 대상으로만 다루는 현대 생명과학의 오류가 있다.
 이러한 잘못은 생명과학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부 독단적인 철학적, 신학적 생명 이해에서도 드러난다. 철학과 신학, 또는 그리스도교 관점에서 생명을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생명과학의 여러 발견과 지식을 올바르게 수용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생명과학은 생명의 진리를 존재론적으로 정초하거나 자신의 학적 근거를 스스로 정립할 수 없기에, 초월적이며 존재론적 토대에 근거해 생명을 이해하는 학적 작업을 전개해야 한다. 생명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생명과학은 존재론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사실 교회는 진화론을 비롯한 생명과학의 올바른 지식과 법칙을 거부하지 않는다. 생명은 분명 진화의 과정을 거쳐 이 자리에 이르렀다. 비록 지금은 멸종하고 없지만, 인간과 유인원은 약 500만 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공동의 조상에서 만나게 된다.
 따라서 진화론을 비롯한 생명과학의 지식을 수용하면서도 그것이 보지 못하는 생명의 진리를 말해야 한다. 즉, 생명을 위해 과학적 지식은 철저히 수용하면서도, 그 근거가 되는 존재론적이며 초월론적인 생명의 진리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이다. 그럴 때만이 생명의 신비와 그 의미는 올바르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후기 근대를 사는 우리에게 생명의 의미와 진리, 생명의 신비와 선물로 다가오는 생명 전체를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이러한 두 층위의 상호작용과 총체적 이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혹시라도 우리 자신의 잘못된 신념과 독선으로 이 두 가지 진리 가운데 어느 한 쪽에만 치우쳐 있지는 않은가.
 생명의 신비를 무시하고 존재론적으로 성찰하지 못하는 맹목적 과학 지식만큼 위험한 것은 과학 지식을 이해하지 못하고 생명의 신비에 대해 섣부르게 선언하는 독선적 신념이다. 오늘날 생명의 신비와 진리를 정당하게 드러내려면 지극히 어려운 성찰 과정이 반드시 요구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비로소 생명은 그 신비와 존엄성을 조금씩 드러내게 될 것이다. 그럴 때만이 죽음의 문화에서 생명은 생명으로 존중받게 될 것이다. 생명의 문화, 살림의 문화는 다만 선언만으로는 이뤄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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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8-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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