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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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문화] ''존엄사'' 법이 있어야 한다면

인간에게 죽을 권리란 애당초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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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영모 교수(울산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위원)
 

 인간 존엄성이 결여된 상태에서 자신이나 가족의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나라에 따라서는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과 절차를 규정한 법률을 갖고 있는 경우도 있다. 요즘 들어 우리 사회에도 `존엄사(尊嚴死)` 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는 것 같다.
 
 한 예로 의료계를 꼽을 수 있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제18대 국회에서 `존엄사` 법을 입법화하려는 여야의 움직임이 속속 감지된다. 존엄사 법제화에 찬성 또는 반대하는 가톨릭교회의 공식 입장은 아직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존엄사 관련 법률을 제정한다는 가정 하에 필자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방향에 관해 몇 가지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존엄사` 의미가 여러 가지로 쓰이는 데 따른 혼란이 첫 번째 문제로 지적된다. 이런 상태에서 밀도 있는 논의는 도대체 불가능하며, 대화는 겉돌기를 반복한다. 무엇보다 존엄사를 안락사와 동일시해서는 안 되겠다. 말기 환자의 죽음을 고의적으로 의도하는 행위라면 안락사로 봄이 마땅하다. 환자에 대한 수분 공급, 영양 공급, 간호, 마사지, 일상적 투약, 환자와의 대화는 멈추지 말고 계속돼야 한다. 이런 행위들이 중단되면 그때는 소극적 안락사로 부르는 것이 옳다.
 식물 상태의 환자를 생각해 보자. 만약 존엄사를 식물 상태의 환자에 대한 일체의 치료, 가령 인공호흡기 치료, 수분 및 음식물 공급마저 중단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존엄사도 안락사의 범주에 속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이해된 존엄사는 소극적 안락사이므로 법률은 이를 금지해야 한다.
 
 또한, 한 개인이 존엄사를 선택할 때 그가 `죽을 권리`마저 갖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삶은 우리 모두의 의무이고, 우리 인간에게 죽을 권리란 애당초 없다고 가톨릭교회는 가르친다. 더욱이 만약 우리 사회에서 죽을 권리가 용인된다면 그 권리의 오남용에 따른 부작용이 엄청날 것임을 상상하기는 별로 어렵지 않다.
 
 앞으로 존엄사 법이 제정된다면 법에서 허용해야 할 것은 의료 집착적 행위의 중단, 다시 말해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중단이 돼야 할 것이라고 본다. 지난해 11월 서울 서부지방법원의 판결은 그 방향을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애당초 환자 가족은 재판부에 인공호흡기 제거뿐만 아니라 수분 공급, 영양 공급, 정상적 간호, 일상적 투약 등 치료 행위를 일절 중단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재판부가 받아들인 것은 인공호흡기 제거뿐이었다. 수분 및 영양분을 공급하는 행위, 정상적 간호, 일상적 투약 등 기본적 치료 행위는 환자의 인간적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재판부가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환자 가족이 존엄사라는 이름 아래 환자의 죽음을 고의적으로 의도했던 데 반해, 1심 재판부는 가족의 요청을 받아들이는 대신 인공호흡기의 제거만을 받아들여 병원 측이 인공호흡기 제거를 요구하는 가족의 요구에 응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던 것이다. 환자의 가족은 판결에 불복해 사건은 이제 2심 법원에서 다뤄지게 됐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인공호흡기 제거에는 환자의 죽음을 초래할 의도가 포함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인공호흡기 제거가 환자의 사망을 직접적으로 초래하는 것이라면 의사는 환자의 인공호흡기 제거 요구에 응할 의무가 없다"고 밝힌 1심 재판부의 판결문은 그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재판부는 인공호흡기 제거가 환자의 죽음을 의도한다기보다는 인공호흡기 부착이 환자의 회복 및 개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치료로서 무의미한 의료집착적 행위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환자의 죽음을 의도하는가의 여부, 이 점이 중요하다. 그런데 존엄사 입법을 추진하고 있는 사람들 중 일부는 수분 및 영양 공급 중단을 통해 환자의 죽음을 고의적으로 의도하는 것마저도 존엄사 이름 아래 두려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는 가톨릭교회 가르침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만약 우리 사회에 존엄사 법이 있어야 한다면 그 입법의 첫걸음은 가톨릭교회 가르침을 수용하는 선에서 멈추는 게 옳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09-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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