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
기획특집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영원한 지금-죽음을 준비합시다](6) 유언장 작성

죽음 문턱에서 쓰는 일기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죽음에 대한 자신의 `성숙한 준비`
삶의 궤적 돌아보며 지난 삶 반성
죽음의 두려움과 공포도 사라져
 

   "오늘, 모든 이들은 죽음의 가능성을 깨달아야 한다."(1979년)
 "내게 죽음이 언제 닥칠지 모르나 죽음의 순간을 내 주님의 어머니(성모 마리아) 손에 맡긴다."(연도 미상)
 "나는 처분할 아무런 재산도 남기지 않는다. 나의 일상적 물품들은 적절하게 배치되길 바란다. 개인적인 메모는 소각돼야 한다."(연도 미상)
 지난 2005년 선종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취임 이듬해인 1979년부터 2000년까지 22년에 걸쳐 유언장을 썼다. 항상 죽음을 준비하며 진실하고자 했던 온 인류의 목자로서의 참모습이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기 전 남긴 "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카 23, 46)를 라틴어로 적고 영성록(유언장)을 마무리했다.
 "내 관 위에는 꽃 대신 시집 한 권을 올려놓으면 어떨까요?"
 시인 이해인(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 수녀회) 수녀가 문인 101인의 유언장 모음집 「오늘은 내 남은 생의 첫날」(2006)에 남긴 가상 유언이다. 이 수녀는 "혹시 죽어서까지 공동체를 번거롭게 할까봐 마음이 쓰인다"며 "장례식에는 최소한의 가족과 독자들만 참석하도록 조치해 달라"는 부탁의 말을 전했다.
 이 수녀는 "죽음에 대한 차가운 두려움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선종과 장례식을 지켜보면서 따뜻한 그리움으로 바뀌었다"는 말로 유언장을 마무리 했다.
 
 흔히 유언장을 `거룩한 준비`라고 말한다. 언젠가 다가올 죽음에 대한 준비이며 사후(死後) 가족 화합을 위한 안전판이라는 본래 의미 외에도 남은 생을 더 의미 있게 살기 위한 근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언장 얘기를 들먹이면 불쾌하게 여기는 게 우리 정서지만,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관심과 함께 우리나라에서도 유언장 쓰기 문화가 서서히 확산되고 있다.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남기고 싶은 이야기,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한 회고, 유산 분배 등을 미리 기록해 두는 것이다.
 죽음준비교육 전문 강사 유경(47)씨는 아름다운 이별(죽음) 준비를 위해 가장 손쉽게 실천할 수 있는 방법으로 평소 일기를 쓰듯 유언장을 써볼 것을 권한다. 유씨는 "유언장은 미리 작성해 봄으로써 죽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유씨가 웰다잉 안내서 「유경의 죽음준비학교」에 소개한 죽음준비교육 참가자의 유언들에는 당부사항과 가족에 대한 사랑, 미안함이 절절히 담겨 있다.
 "기일에 일반적인 제사는 지내지 마라. 묵념과 기도로 대신하고, 가족이 모여 우의를 다지는 날로 삼아라."(남, 70)
 "혼수상태가 오면 산소호흡기로 연명시키지 마라. 임종 후엔 화장 해다오."(여, 62)
 "고생은 했지만 후회 없이 살았다."(여, 79)
 유씨는 "죽음준비교육의 맨 마지막 과정으로 유언장 쓰기 시간을 마련하는데 당초 우려와 달리 참석자들 모두 진지하게 자신의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유언을 남긴다"고 설명했다. 유언장을 미리 써본 이들은 특히 미처 발견하지 못한 자신과 가족ㆍ지인들에 대한 애틋함으로 눈시울을 붉힌다고 한다.
 한림대 생사학 연구소 소장 오진탁(철학과) 교수 역시 웰다잉을 위한 7가지 실천사항의 하나로 `유서 쓰기`를 권하고 있다. 해마다 연초 혹은 연말에 유서를 작성해 두는데 지난 해 작성한 유서를 다시 읽어보고 수정할 사항이 있으면 다시 작성하는 것이다.
 오 교수는 "살다가 유언도 하지 못한 채 갑자기 죽는 일도 있으므로 삶의 시간이 1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고 가정하고 진지하게 죽음을 묵상하면서 유서를 작성하라"고 강조했다.
 "평소에 유언장을 쓰는 사람은 오히려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삶에 강한 의지를 갖게 되며, 밝게 살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또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도 한결 없어집니다."
 유언은 꼭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만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유언장 쓰기는 예측하지 못한 죽음에 대비해 세상과 가족들에게 남길 말을 미리 써두는 통과의례이며 죽음에 대한 자신의 성숙한 준비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유언장을 쓴다는 것 자체가 자신의 삶의 궤적을 되돌아보게 함으로써 지나온 삶을 반성하는 계기가 된다. 또 가족, 친지, 이웃과 화해하지 못한 관계의 매듭을 푸는 일이기도 하다. 궁극적으로 삶의 새로운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유언장에는 유산 상속(기부)은 물론 장례절차와 연명치료 여부, 장기(시신)기증, 화장을 할 것인지 매장을 할 것인지 장법 등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담아야 한다. 실질적인 죽음에 대한 준비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사제들은 생전에 유언을 써서 교구에 보관하는데 대개 개인 재산을 교구에 봉헌하고 시신 또는 장기를 기증한다는 내용으로 작성한다. 특히 인천교구 사제들은 매년 사제성화의 날 미사 중에 유언장을 새롭게 봉헌하며 거룩한 사제직을 위해 일생을 봉헌할 것을 거듭 다짐하는 계기로 삼고 있다.
서영호 기자 amotu@pbc.co.kr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09-11-15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5. 19

지혜 1장 1절
세상의 통치자들아, 정의를 사랑하여라. 선량한 마음으로 주님을 생각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그분을 찾아라.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