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
기획특집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인간 생명, 존재 그 자체로 존엄

2010 전국 생명대회 기조강연/생명이란 무엇인가(주교회의 의장 강우일 주교)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 강우일 주교가 2010 전국 생명대회에서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주교회의 의장 강우일(제주교구장) 주교는 9~11일 충북 음성 꽃동네에서 열린 2010 전국 생명대회에서 기조강연을 통해 생명 문제를 역사적ㆍ성서적 배경에서 거시적으로 짚었다. 인간과 성경의 역사를 `생명 의식 고양`이라는 시각으로 접근한 강 주교의 기조강연을 요약한다. 생명에 대한 새로운 안목을 제공할 것이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하느님 창조의 결정체이자 하느님과 모든 피조물을 잇는 대표다. 사람은 어떤 일이 있어도 훼손해서는 안 되는 최고 가치를 지닌 존재다.
 그런데도 인간은 창조된 직후부터 하느님께 받은 자유와 능력을 남용해 다른 인간 생명을 파괴하고 죽이는 악을 저질렀다. 원죄 이후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저지른 최초 죄악이 살인이었다. 인간은 역사를 살아오면서 온갖 구실을 붙여 끊임없이 수많은 생명을 훼손하고 제거했다.

 인간이 같은 인간을 그토록 무자비하게 짓밟은 것은 인간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제대로 깨닫지 못해 그런 것이 아닐까? 인간은 스스로가 자신을 창조한 것이 아니기에 인간 존재가 얼마나 존귀한지 온전히 인식하지 못했던 것 같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갈수록 인간이 다른 인간 생명을 아무렇게나 취급했음을 알 수 있다.

 고대인들에게는 인간이라고 해도 모두가 같은 인간 생명으로 보이지 않았다. 다른 종족, 다른 계층, 천민, 노예, 전쟁 포로 등은 동급 인간이 아니었다. 구약을 보면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원주민들을 거리낌 없이 죽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온다. 그들의 의식 수준에선 같은 종족, 같은 부족에 속한 이들만이 훼손해서는 안 되는 인간 생명을 지닌 존재였다.

 이스라엘은 나라가 망하고, 유배지로 끌려가고, 이민족 지배 속에 여러 세기를 고통 속에 살면서 인간이 갖는 인격의 가치에 대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됐다. 이스라엘 백성 자신들이 노예처럼 끌려가고 종살이하면서 노예들도 결코 함부로 억압하거나 무시하거나 짓밟아서는 안 되는 고귀하고 동등한 인간임을 깨달아갔다.

 이처럼 인간들은 수많은 참극을 저지르면서 조금씩 생명의 존귀함을 깨달았고, 생명을 훼손하는 데 따른 고통을 맛보면서 생명이란 그렇게 마구 짓밟아서는 안 되는 존재임을 시간과 더불어 아주 천천히 터득해나갔다. 그러나 아직도 멀었다.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총성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인간 생명을 파괴하는 행위는 전쟁만이 아니다. 오늘날에도 인류는 아직 인간 생명에 대한 인식과 이해가 성숙되지 못한 까닭에 다양한 방법으로 인간 생명을 훼손하고 있다.

 모체와는 엄연히 독립된 생명체로 자라고 있는 태아를 낙태하는 데 어떤 방법이 동원되는지 대부분의 산모나 주변 사람들, 낙태를 권장하는 사람들은 잘 모른다.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제2차 대전 때 독일 나치가 유다인 수백만 명을 가스실에서 독살하고 있을 때, 세상 사람들은 그 수용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깊이 알려고 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오늘의 낙태를 시술, 묵인, 방조하고 있는 사람들도 낙태의 진실에 대해 눈감고 깊이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도 우리가 인간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인식을 심화하고 그 존엄성을 지키고자 하는 역사 발전의 대열에 설 수 있으려면, 우리는 오늘날 저질러지고 있는 인간 생명에 대한 엄청난 파괴 행위를 중단하도록 호소하고 행동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2차 대전 당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유다인들이 죽어가는 데도 외면하고 침묵하던 수많은 대중의 대열에 낄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 시대 과학기술 발전으로 말미암아 인간 생명에 대한 인식을 한 단계 더 높이 고양하고 더 넓게 확대하도록 초대받고 있다. 인류는 오랜 역사적 체험을 통해 고대 사회에서는 아직 동등한 인간으로 인식하지 못했던 노예, 천민, 전쟁포로, 여성, 어린이, 이민족들도 똑같은 인간, 존엄한 인간임을 서서히 깨달아왔다. 오늘날 인류는 세포 덩어리라고만 여겨지는 배아와 태아도 동등한 인간 존엄성을 지닌 존재임을 어서 빨리 깨닫도록 초대받고 있는 것이다.

 인간 생명이 좀 더 포괄적으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의식은 태아나 배아를 인간으로 인정하는 데서 그쳐서는 안 된다. 인간 생명의 존엄함은 생명이 다 꺼져가는 마지막 상황, 질병이나 노쇠로 인해 신체적 생명력이 극도로 감퇴된 장애인이나 육체적ㆍ정신적 질병을 앓고 있는 병자나 노인에게도 똑같이 적용돼야 할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는 OECD국가 중에서 최고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전체적으로 병들었음을 입증한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자살하는가? 사회 전체가 경제적 가치를 최우선시하고, 그래서 모두가 경쟁 대열에 끼게 되고, 그 대열에서 낙오되는 데 대한 엄청난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자신의 목숨까지 버리는 극단적 선택을 생각하게 된다.

 죽음의 그림자가 우리 사회 전체를 뒤덮고 있다. 얼마 전 여고생이 엄마에게 유서를 남기고 베란다에서 투신했다. 유서는 "이제 됐어?" 단 네 글자였다. 엄마가 요구한 성적에 도달한 직후 아이는 죽었다. 그 아이는 다른 부모들이 부러워하는 외고에 다니고 있었고, 그 학교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거둔 학생이었다.
 인간 생명은 뛰어난 성적, 잘 생긴 외모, 풍요한 부, 찬란한 명예 등 그 어떤 가치와도 비교할 수 없다. 존재 자체로 최고의 존엄함을 지닌다. 하느님을 닮은 모습으로 창조됐기 때문이다.
정리=남정률 기자 njyul@pbc.co.kr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0-07-25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5. 19

1요한 4장 12절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