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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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문화] ⑤ 생명학의 방향

생명 존재 의미 드러낼 학적 체계 정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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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존중 문화를 위해 생명의 의미와 가치를 못보는 생명과학에 대한 맹종과 함께 우리 문화 안에 만연한 물질만능주의와 폭력성을 내포한 문화적 흐름에 대해 비판해야 한다. 그러나 생명을 위해 다만 생명을 위협하는 죽음의 문화에 대항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왜냐면 이러한 현상 배후에는 스스로 가치중립적이라는 미명하에 생명 가치와 의미를 성찰하지 않으려는 과학주의적 학문과 자연을 사물적으로만 이해하는 오류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학문적 경향은 17세기 이래 유럽에서 형성된 이른바 근대 학문의 일반적 특성이다. 그러기에 생명 문화를 타당하고 적절하게 정립하며, 생명이 생명으로 존중받는 문화를 형성하려면 근본적으로 여기에 대한 반성이 요구된다. 그와 함께 생명을 이해하고 생명의 정당한 가치를 드러내는 학적 체계를 정립하는 작업이 필요해지는 것이다.

 사실 근대 학문은 자연에 대한 이해가 전환되면서 가능해졌다. 그 이전 학문은 자연을 통해 창조 의지와 의미를 읽어내는 활동으로 기능했다. 그러나 근대에 이르러 인식론적 관점이 확산되면서 자연은 인식 대상적 물체로 격하되기에 이른다. 그 결과 가운데 하나가 오늘날 만연한 과학주의나 자본주의적 오류다. 자연에 담긴 생성하는 힘과 창조 의미는 사라지고 다만 인간의 실용적 목적을 위한 대상으로 전락한 자연 이해는 결국 생명조차도 이러한 차원으로 격하시키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생명은 결코 인간의 실용적 대상이나 학적 대상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 생명은 우리 자신의 것이며, 우리가 바로 생명 자체인 것이다. 생명을 대상으로 만드는 곳에 인간 역시 대상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러한 문화적 흐름은 그 뒤에 자리한 근대의 학문체계에 대한 반성과 함께 시작될 것이며, 생명존중의 문화는 자연과 생명을 새롭게 이해할 학문적 틀이 생겨날 때 가능해질 것이다.

 이 문제는 학문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낯설고 무관한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학문적 작업과 그에 따라 주어지는 진리에 대한 이해 없이 한 사회나 문화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없다. 여기에 학문의 몫이 자리한다. 그래서 생명학이란 이름으로 생명을 새롭게 이해하는 학문, 근대적 과학주의를 넘어 생명 존재 의미와 신비를 그 자체로 드러낼 수 있는 학적 체계를 모색하는 것이다.

 생명학은 생명과학의 객관적 지식과 이를 성찰하고 의미를 드러내는 존재론적 관점을 요구한다. 생명을 이해하고 그 가치를 존중하며, 생명의 의미를 올바르게 드러내려면 생명에 대한 객관적 지식이 반드시 필요하다. 대상에 대한 객관적 지식 없이 이뤄지는 선언적이며 신념에 가득찬 지식은 역사에서 보듯 언제나 거짓과 오류로, 나아가 야만과 폭력으로 작동한다. 진리는 사실과 사실에 대한 성찰에서 주어진다. 생명의 진리 역시 그러하다.

 그와 함께 생명학은 생명에 대한 존재론적 결단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생명의 의미와 목적, 생명의 신비에 대해 우리의 존재로써, 우리 존재의 근본에서부터 결단하는 의미 결정을 말한다. 그것은 철학적이며 신학적 관점과 밀접히 연관된다. 생명과학은 생명을 이해하고 생명의 의미를 수용하는 태도와 함께 한다. 그러기에 생명 의미를 드러내고, 그 목적과 가치를 성찰하는 우리의 존재론적 태도가 생명과학 지식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러한 생명학은 생명 원리에 형이상학적 성찰에 따라 이뤄진다. 현재까지 연구결과에 따르면 지구의 모든 생명은 공통 기원을 지닌다. 생명은 35억 년 이상 기나긴 삶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생명 원리는 이러한 동일 기원과 생명의 공동성, 공존재란 사실에 기반한다. 관점은 다르지만 생명과학자들도 생명이 공생명이란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그와 함께 지구상 모든 생명은 역사의 결과물이기에 생명의 역사성을 성찰하는 작업 역시 생명학을 위해서는 중요한 원리가 된다.

 마지막으로 생명학을 위해서는 생명의 의미를 성찰하는 철학적 작업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생명이 자신을 초월해 그 이상의 세계로 나아가는 과정을 성찰하는 형이상학적 작업이 포함돼야 할 것이다. 왜냐면 의미성찰 작업은 자신의 영역을 넘어 초월해가는 과정 자체를 바라보지 않을 때 의미를 지니지 못하기 때문이다. 생명은 생리적이지만 의미적이고 존재적이면서, 동시에 초월적이기 때문이다. 초월성 없이 생명은 이해되지 않는다. 생명학을 위한 이러한 형이상학적 작업이 생명의 의미와 가치를 드러내고 생명의 신비를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생명 존중 문화와 생명을 생명이게 하는 인간 행위는 이러한 형이상학적 원리를 필요로 하며, 그에 근거해 실천적 행동을 담보하는 생명윤리학이 정립될 수 있다. 생명학은 생명윤리와 생명문화의 근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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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2-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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