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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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건축을 말한다] (16) 제4화 한국 교회건축의 오늘-성당 건축의 외부공간

마당, 세상과 소통하는 지붕 없는 또 다른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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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길에 면해 있는 서울 수서동성당은 도로와 성당 사이를 잘 가꿔 외부 공간이 좁다는 단점을 극복했다.
 

 
▲ 므와삭의 생피에르수도원 성당 팀파눔과 마당.
 
마당이 없는 한옥을 생각할 수 있을까. 사랑채와 안채에 딸린 크고 작은 마당, 그리고 그것을 두르고 있는 담장이 건물과 나무와 어우러질 때 한옥은 그 멋과 기품을 다할 수 있다. 어디 한옥뿐이랴. 건축물 주변에 이렇다 할만 한 여유 공간, 곧 마당이 없으면 건축물은 생기를 잃고 친구가 없는 외톨박이와 같은 건물이 되고 만다. 어떤 건축물도 그것을 두르고 있는 외부공간인 마당을 따로 떼고 생각할 수 없다.

 건축물은 바깥과의 적절하고 지혜로운 만남이 있어야 한다. 손님에게 차를 대접할 때 찻잔만 내지 않고 반드시 찻잔받침에 받치고 드린다. 건축물에 비유하자면 찻잔은 건축물, 외부공간은 찻잔받침과 같다. 하물며 성당은 하느님 백성을 불러 모으기 위한 집이다. 개인과 사회의 진정한 인간화라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으로 보자면, 성당 외부공간은 사회를 인간화하는 구체적 방법이다. 그러니 성당건축에 외부공간이란 세상과 지역에 대해 말하고 받아들이는 성당건축의 중요한 모습이다.

 로마네스크나 고딕 성당 앞마당은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이 늘 만나는 자리였다. 이 시대 성당 전면에는 팀파눔(tympanum)이라는 아주 큰 문이 있는데, 문 위에는 영광의 그리스도, 심판하시는 그리스도와 함께 천사와 성인이 조각으로 새겨져 있다. 이것은 입구에 깊이를 주기 위함이었지만, 실은 도시에 교회 가르침을 전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이 문 앞은 마을 사람들 생활무대였고, 실제로도 이 문과 벽 앞에서 교회와 관련된 사극이 많이 공연되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로마네스크나 고딕 성당 마당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성당 마당보다 훨씬 도시생활에 밀접한 것이었으며, 끊임없이 메시지를 전하려는 교회 노력이었다.

 가톨릭교회처럼 외부공간을 중요하게 바라본 종교는 없다. 교회가 외부공간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 알려면 성 베드로대성전과 그 앞 광장을 보면 된다. 이 광장에서 수많은 신자들이 함께한 가운데 교황께서 집전하시는 장대한 미사를 보았을 것이다. 베르니니가 설계해 12년 만에 만들어진 이 광장은 장대한 기둥 284개로 둘러싸여 있다. 그러니 외부 광장이 없는 성 베드로대성전을 생각할 수 없다. 이 광대한 외부공간은 대성당 앞의 넓은 터가 아니라 대성당의 연장이고 지붕이 없는 또 다른 성당이며, 성당과 바깥쪽 도시를 이어주는 곳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땅값도 비싸고, 괜찮은 도로에 면하기도 어려워 충분한 외부공간을 가진 성당이 지어지기에 적당한 땅을 얻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밀집 주거지역을 비집고 들어가 짓는 경우도 있고, 상가를 리모델링해 성당으로 써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좋은 외부공간을 가진 성당을 찾기가 쉽지 않다.

 마당에서 이뤄지는 활동은 아주 많다. 미사가 끝나면 많은 사람들이 서로 인사하는 곳, 신부ㆍ수녀님들이 흩어지는 신자에게 다정하게 말을 건네고 격려해주는 곳, 어려운 성당에서 도와달라고 가지고 온 물건을 사주는 곳, 성모의 밤을 지내는 곳, 성지주일에 성당으로 들어서기 전 성가대가 찬미를 시작하는 곳, 성모상 앞에 서서 전구를 청하는 곳…. 마치 주택 거실처럼 이 모든 활동이 이뤄지는 곳이 성당의 외부공간이다.

 성당건축은 비록 좁은 곳에 지어지고 주변이 변한다 해도 더욱 아름답게 시간을 간직하며 그 지역 모습을 드러내줘야 한다. 먼 곳에서 바라봐도 `아, 저곳은 성당이구나!` 하는, 편안하고도 기댈 수 있는 감정을 은연중에 불러일으키며 지역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 그러려면 건축물의 아름다운 외관만으로는 안 된다. 아름답고 편안한 외부공간이 있어야 성당건축은 지역에서 사랑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도 특히 도시에 지어지는 우리 성당건축은 이러한 외부공간을 잃어버린 지 오래 됐다. 가장 큰 원인은 넓은 땅을 얻기 어려워 대지 면적을 건축물로 거의 다 덮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성당일수록 `오래된 성당` 이미지를 과도하게 표현하려고 거대한 원형, 첨탑, 폐쇄적 벽돌 벽으로 주변을 압도하는 경우가 많고, 높은 계단이 도로에까지 나와 있게 된다. 지형 경사가 심한 경우는 토목에서 정한 높은 축대를 무정하게 그대로 쌓아올려 주변과 심하게 단절되기도 하고, 성당 마당을 들여다보게 한다고 흔히 있는 기성제품인 초록색 철망같은 것으로 담장을 만들어 성당 마당의 격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이것은 아름다운가 아닌가 하는 문제를 넘어, 이웃 주민과 소통하는 성당인가 아닌가 하는 성당건축의 정체성에 관한 것이라는 점에서 신자 모두가 늘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럼에도 외부공간이 아름다운 성당은 많이 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우리나라에서 외부공간이 가장 아름다운 성당은 단연코 공세리성당이다. 오래전에 지어져 성당 앞으로 턱 하니 가로막은 큰 나무들과 그 앞의 마당. 필자에게는 이 성당이 늘 마음에 그려진다. 서울 우면동성당도 뒤의 숲과 어울려 아름답다. 그러나 성당이 대지에 비해 작고, 위치가 지역 한가운데 있지는 못한 것이 조금 흠이다.

 이에 비하면 서울 수서동성당은 큰길에 길게 면해 있어 성당 전체 모습을 잘 드러내고 있다. 도로에서 거의 같은 높이로 성당 건물로 자연스럽게 들어가게 되어 있어 편하게 느껴진다. 성당 옆에는 필경재라는 한옥을 둘러싸는 아름다운 담장이 있는데, 이 전통적 담장을 이용한 외부공간을 만들고자 건물을 배치한 고심이 엿보인다. 성당과 필경재 담장 사이에 남겨진 아주 좁은 공간에 성모상을 두고 조경수로 잘 가꿨다. 좁지만 아름답고 정취가 있어서 이 성당만이 갖고 있는 아주 값진 마당이 됐다. 또 대지 서쪽은 전주 이씨 광평대군파 묘역의 전통 담장과 면하고 있어서 `한국



가톨릭평화신문  2012-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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