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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예술가편(9) /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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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흐의 대표적인 대규모 성악곡으로는 마태오 수난곡, 요한 수난곡,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등이 있다.
“음악으로 하느님 영광 찬미”

교회음악 창작에 혼신 다해 바로크 음악 집대성 하기도

독일의 작곡가 막스 레거(Max Reger, 1873~1916)는 “바흐는 모든 음악의 시작이며 끝”이라고 말했으며 프랑스의 작곡가 드뷔시(Cchille Claude Debussy, 1862~1918)는 바흐를 일러 “음악의 사랑스런 신”이라고 불렀다.

심지어 “신은 죽었다”고 부르짖었던 니체 조차 “일주일에 세 번씩 마태오 수난곡을 들은 후에 스스로가 선교사의 천직을 받은 것처럼 느꼈다”고 고백했으며, 가장 비바흐적으로 보였던 바그너까지도 바흐를 일러 “역사상 가장 놀랄만한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며 그의 음악은 “음악사상 가장 놀랄만한 기적”이라고 경의를 표시했다.

독일의 작곡가로서, 수많은 종교음악과 기악곡을 남긴 바로크 시대의 위대한 작곡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는 이렇듯 모든 시대의 위인들로부터 극찬을 받았던 탁월한 음악가였다.

그는 오페라를 제외한 당대의 거의 모든 음악의 영역에 손을 댔고, 거기에 작품 생활 초기부터 만년에 이르는 50년 동안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엄청난 음악의 성과를 거두었던 위대한 음악가였다.

바흐는 1685년 3월 21일, 아이제나흐(Eisenach)시의 현악기 연주자였던 아버지 요한 암브로시오와 어머니 엘리사벳의 네 아들 중에서 막내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음악적 분위기의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음악적 재능을 보여주었다.

1694년 잇달아 양친을 잃고 맏형을 따라 오르도르프로 이주한 바흐는 그에게 오르간을 배웠다. 그의 삶은 대개 그가 살던 지역을 따라 제1기(1703~1722년)와 제2기 (1723~1750년)로 나뉜다. 제1기는 그가 중소도시의 교회 오르간 주자로 활동하던 시기, 그리고 쾨텐의 궁정 악장으로 활동하던 때이고 제2기는 라이프치히의 칸톨(음악교사)로 활동하던 시기로 이는 다시 전기와 후기로 나뉜다.

전기인 1740년까지 바흐는 칸톨로서 교회 음악의 창작에 혼신을 다해 수많은 교회 성악곡들을 작곡했으며, 후기에는 자기 예술의 완성을 위해 스스로와 치열한 투쟁을 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것은 1750년 6월. 그의 사망 후 50여년 동안 그의 음악은 빛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1819년 멘델스존의 마태오 수난곡 상영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그에 대한 음악적 재평가가 시작됐다.

바로크 음악을 총 집대성한 그의 음악은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그의 음악에 대해서 한마디로 요약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하지만 굳이 그의 음악에 대해서 음악사적인 해설을 해야 한다면 우선 바로크 음악의 종합이라는 측면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당대의 여러 음악 양식들을 ‘융합’한 인물로 헨델처럼 여러 양식을 ‘조화’시킨 것과는 현저하게 다른 특징을 보인다. 독일의 전통적인 대위법 예술 가운데에서 성장했지만 그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이미 당시 독일 궁정문화에 침투하고 있었던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새로운 음악 양식을 끊임없이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를 다만 한 시대 음악 양식의 종합이라는 면으로서만 조명하는 것은 단편적인 견해이다. 그는 확실히 의식적인 음악의 혁명가는 아니었지만 그의 음악적 용해와 융합의 과정에서 새로운 요소들이 싹터온 것을 후대의 음악사가들은 발견할수 있었다.

그는 엄청난 작품들을 남겼다. 성악곡에는 교회 칸타타, 세속 칸타타, 수난곡, 오라토리오, 미사, 마니피캇, 모테트, 가곡 등 다양한데,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수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 칸타타이다. 초기의 칸타타는 모테트풍 스타일을 계승하고 있으나 나중에는 오페라풍의 아리아나 레치타티보가 등장하고, 라이프치히 시절 초기에는 코랄 칸타타가 많이 제작됐다.

대표적인 대규모 성악곡으로는 마태오 수난곡, 요한 수난곡,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등이 있다.

한편 기악곡에는 관현악곡, 협주곡, 실내악곡, 건반악기곡 등이 있는데 어느 분야에서든 바흐는 바로크 음악의 총결산이라고 할 수 있는 걸작들을 많이 남겼다. 관현악 모음곡 제2번, 6곡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오르간을 위한 토카타와 푸가 d단조, 오르간 소곡집 599~644, 클라비어(쳄발로)를 위한 프랑스모음곡,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등이 각 분야에서 유명한 곡의 예로 꼽힌다.

그리고 말년의 ‘음악적 헌정’이나 안질로 장님이 된 탓에 완성시키지는 못한 ‘푸가의 기법’은 바흐의 대위법 예술의 정점을 보여주는 대작으로 대부분 악기를 지정하지 않은 추상적인 성격을 지니고, 일반적으로는 특수작품으로서 별개로 분류된다.

바흐는 음악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음악은 하느님께는 영광이 되고 인간에게는 기쁜 마음을 갖게 한다.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고 마음을 신선하게 하는 힘을 부여하는 것은 모든 음악의 목적이다.” 그에게 음악은 하느님 영광의 찬미였다. 그래서 그에게 교회 음악과 세속 음악은 서로 대립하지 않았고, 하나의 목적을 위한 같은 바탕 위에 놓여 있었다.

 
박영호 기자 young@catholictime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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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06-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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