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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100주년 특별기획 - 다시 읽는 드망즈 주교 일기] (5) 1912년 5월 26일~6월 30일

사제 양성에 대한 소명 절실히 느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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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포, 소촌, 부산, 김천 등을 사목 방문한 드망즈 주교는 일본인들을 많이 만났다. 그는 부산에서 야마구치라는 일본인 어린이에게 영세와 견진성사를 주었음을 밝히며, ‘신학교에 들어가길 희망하는 이 어린이에게 사제품까지 주게 된다면 흔한 일이 아닐 것’이라고 적는다.

나바위에서도 그는 역시 일본인 신자들을 만났으며, 하코다테에서 온 위트 신부가 성사를 주기도 한다. 이렇듯 드망즈 주교의 일기에는 당시 한국의 모습과 교회의 풍경들이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1912년 5월 26~30일

한국인 신부들의 피정이 끝났다. 리뇔 신부가 청년들과 여교우들에게 강연을 했다. 일본 하코다테의 위트(Hutt) 신부가 저녁에 도착했다.

5월 30일, 본당의 학생들이 소풍을 갔다. 나는 위트, 무세, 김요셉 신부 등과 함께 소풍에 참여했다. 저녁 8시에 돌아왔다.

6월 1일 토요일

나는 오늘 아침 가장 학업이 앞선 우리 신학생 주 바오로에게 삭발례(성직 희망자의 머리털을 깎는 예식)를 주었다. 그는 삭발례 때문에 어제 용산에서 왔다. 나는 이 의식으로써 꼭 표명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

만약 대구교구를 구성하는 남부지방에서 사제성소를 위한 의무를 다했더라면, 우리의 적은 신학생들 중에서 가장 학업이 앞선 학생이 삭발례자 밖에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6월 3~13일

나는 나바위에서 위트 신부를 데리고 피정을 했다. 위트 신부는 일본인 신자들에게 성사를 주었다.

부주교인 베르모렐 신부의 집으로 나를 만나러 왔던 베르몽(Bermond·목세영·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한국 선교사로 1912년 당시에는 전북 완주군 승치리의 되재본당(현 고산본당)에 파견돼 사목하고 있었다) 신부가 지친 채로 내게 왔다. 그의 피로가 갈수록 더하는 듯해 대구로 데리고 왔다.

11일은 나의 주교 성성식 1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훌륭한 축일이었다. 위트, 무세, 소세, 줄리앙, 카넬, 투르뇌, 김 요셉, 김 아오스딩 신부 등이 함께 참석했다.

그런데 의사에게 진찰을 받은 베르몽 신부가 자리에 누웠다. 일본인 의사는 베르몽 신부를 진단했고, 드디어 그의 병명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의 병은 ‘말라리아’다.

6월 30일 주일

베르몽 신부는 의사가 그에게 말한 것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특히 그는 자신이 따르고 싶은 처방만 믿고서 불확실했음에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먹을 수 있다는 허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것은 잘못된 것이었다.

식이요법을 중단하자 병이 재발한 것이다. 의사는 다시 그를 치료하기 위해 병원으로 보내라고 말했다. 나는 비를 청하는 기도를 지시했다.
 

 
▲ (현 전주교구) 나바위본당서 만난 일본인 신자들에게 견진성사를 준 후 함께 기념 촬영.
 

 
▲ 일본 하코다테에서 사목하고 있는 위트 신부(왼쪽)가 대구를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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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0-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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