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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100주년 특별기획 - 다시 읽는 드망즈 주교 일기] (6) 1912년 7월 21일~11월 30일

학교·수녀원 축복 … 사목방문에도 힘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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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리아에 걸린 베르몽 신부의 상태는 날로 악화되고 있었다. 일기에 그 병의 차도를 자세히 적은 것으로 보아 드망즈 주교가 많은 걱정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어 드망즈 주교는 도쿄대교구 교구장 레이 대주교의 성성식에 참여하고 성베네딕도회 수도원장 보니파시오 신부를 만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한다.

1912년 7월 21일~8월 14일

7월 25일 거행하기로 된 레이(Jean-Pierre Rey) 대주교의 성성식을 위해 뮈텔 주교와 함께 도쿄 여행을 떠났다. 뮈텔 주교는 즉시 돌아왔다. 나는 하코다테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오사카에 들렀다. 말라리아라는 진단을 받았던 베르몽 신부는 회복돼 7월 26일 퇴원했다.

8월 22일~10월 13일

나는 대구 본당 학교를 위해 2명의 한국인 수녀를 얻었다. 소세 신부가 그 시설과 유지를 책임지고 있다. 9월 2일, 여학교와 수녀원의 건축이 시작됐고 10월 4일, 여학교와 수녀원 건물이 완성됐다.

10월 10일, 서울발 급행열차 편으로, 성베네딕도회 서울수도원 보니파시오 원장 신부가 대구에서 며칠간 지내려고 왔다. 스테파니와 데클라 두 한국인 수녀가 학교를 맡게 됐다. 이 수녀들은 대구에 관한 평판 때문에 성공하지 못할까 두려워한다.

13일, 성체강복 후 나는 보니파시오·소세 신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여학교와 수녀원에 대한 강복을 했다. 이후 행한 연설에서 나는 수녀들에게서 기대하는 것과 기대해서 안 되는 것에 대해 설명했다. 기대해서 안 되는 것은 수녀들이 모든 사람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11월 2일

5시에 미사를 드리고 6시50분 기차를 탔다. 2시30분 두계역(계룡역, 충남 논산군 두마면 두계리)에 도착해 거기서 베르모렐·베르몽 신부, 또 첫 번째 공소인 장바탕리(원문에는 ‘Tjyang-Pathtangri’로 장(場)바탕(대:垈)리를 나타낸 듯하다. 장대란 지명은 두계리의 장대와 금산군 추부면의 장대리로 보인다)에서 온 많은 교우들을 만났다. 우리는 말을 타고 그곳으로 갔다. 나는 가사벌(충남 금산군 진산면 지방리, ‘가새벌’ ‘가세발’이라고도 한다)과 안심(전북 완주군 운주면 완창리), 다리실(전북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 등을 거쳤다.

11월 30일

오후에 우리는 나바위를 떠나서 이상화 바르톨로메오 신부의 첫 번째 공소인 석동(전북 익산시 용안면 석동리)으로 갔는데 그곳은 조그만 용안면을 지나, 나바위에서 10리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석동공소 건물을 공개 오라토리움으로 강복했는데, 그 곳의 주보성인은 성 아우구스티노다. 마을과 근방에서 많은 교우들이 왔다. 춥고 눈이 내리고 있었음에도 모든 문들을 열어놓고 미사를 드렸다. 심한 감기가 걸렸다.


 
▲ 일본 도쿄대교구장 레이 대주교 성성식(1912년 7월 25일)
 

 
▲ 일본 도쿄대교구장 레이 대주교 성성식(1912년 7월 25일)
 


가톨릭신문  2010-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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