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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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시대, 교회는 지금] (3) 이 땅에 사는 외국인들 (2) - 다문화가정의 여성들

“우리도 어엿한 ‘한국 사람’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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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화가정 여성들이 수원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엠마우스’에서 한국어 수업을 받고 있다.
 

▨ 프롤로그(PROLOG)

떠날 사람이 아니다. 계속 머무를 사람이다. 머물러 대한민국의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될 이들이다. 국내거주 결혼이민자 수가 16만 명을 넘었다. 그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89.7(약 15만)에 이른다.(2009년 5월, 보건복지가족부 통계) 그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 아침밥을 짓는다

2월 17일 수요일 아침 6시 40분, 알람이 울린다. 베트남에서 온 새 색시 웬티짱(26)씨는 곤히 자고 있는 남편이 깰라, 살그머니 일어나 주방으로 향한다. 맵시있게 앞치마를 두르고, 흰 쌀에 현미와 찰보리 등 잡곡을 섞어 밥을 안친다. 냉장고 문을 연다.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김치를 꺼내든다.

“제일 자신 있는 요리는 김치찌개입니다. 엄마가 요리하는 법을 알려줬어요. 먼저 김치와 돼지고기를 볶다가 물을 붓고 양념을 하지요. 엄마는 양파를 안 넣는데, 저는 양파를 넣어요. 그게 더 맛있는 것 같아요.”

‘엄마’는 다름 아닌 시어머니. 웬티짱은 시어머니를 ‘엄마’라 부른다. 아직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고요한 아침 주방에, 베트남 색시의 도마질 소리가 경쾌하다. 이제 제법 한국 음식의 입맛도 맞출 줄 안다. 가족들을 위해 아침밥을 짓는 웬티짱의 뒷모습은 영락없는 한국의 며느리요, 아내요, 주부의 모습이다.

가족들이 일어났다. 남편과 시어머니, 그리고 시아버지 네 식구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오순도순 아침식사를 한다. 김치찌개가 정말 맛있다며 연방 칭찬을 쏟아낸다. 출근 준비를 하는 남편이 말한다.

“우리 웬티짱이 최고야!”

웬티짱은 정말로 최고다. 오늘은 특명이 있다. 오랫동안 발목이 아파 고생하는 ‘엄마’ 병원 모시고 가기다.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는 시아버지도 함께다. 오전 9시, 서울 연건동 서울대학병원, 시어머니와 시아버지 사이를 살갑게 파고들어 팔짱을 낀다. 그런 웬티짱이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는 너무 예쁘단다.

“내가 이불위에 누워있으면, 웬티짱이 ‘엄마~’하면서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요. 제 어미가 그리우니 나한테 정을 붙이나봐요. 요즘 젊은 한국 며느리라면 그렇게 안하지요. 딸도 안 그런데 우리 짱이가 그렇게 예쁜 짓을 하네요.”

시어머니가 웬티짱의 볼을 부빈다. 시아버지도 넌지시 웬티짱에 대한 칭찬을 던진다.

“내가 누워있으면 와서 이불을 덮어주고 갑니다. 지극정성으로 우리를 보살펴주는 예쁜 마음씨를 가졌어요. 우리 가족에게 웬티짱이 나타나줘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고엽제 환자인 시아버지는 웬티짱을 보면 마음이 사무치기도 한다 했다. 젊은 시절 베트남 전쟁에 참여했던 시절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땐 내가 베트남 사람들을 죽이러 베트남에 갔었죠. 근데 지금 이렇게 짱이가 나타나 내 앞에서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으면….”

시아버지는 말을 잇지 못하고 짱이의 손을 꼭 붙잡는다. 진료를 마친 시어머니가 치료실에서 나오자, 웬티짱이 달려간다.

“엄마~괜찮아요? 발목이 어떻게 아파요? 저릿저릿 하세요? 초음파 검사도 하셨어요?”


 
▲ 다부지게 볼펜을 잡은 손에서 한국어 공부에 대한 열의가 엿보인다.
다문화가정 여성들에게 있어 첫째 과제이자, 마지막까지 손을 놓지 말아야 할 과제가 한국어다.
 
발목을 이리저리 주무르는 모습에서 시부모님을 공경하는 웬티짱의 진심이 엿보인다. 한국에 온지 1년 6개월 밖에 안 됐는데, 너무도 유창한 한국어 실력을 갖춘 웬티짱의 비법이 궁금하다고 하자, 시어머니가 대신 대답을 한다.

“일 다 마치고 제 방에 들어가 밤 늦게까지 불을 켜놓고 한국어 공부를 해요. 우리는 ‘공부벌레가 집에 들어왔구나’ 하고 웃지요. 나중에 통역사나, 베트남어 선생님이 되고 싶다네요. 우리 짱이 정말 부지런해요.”

오전 11시30분, 병원을 나서는 세 사람의 뒷 모습은 누가 봐도 ‘한 가족’이다.

▨ 한국생활의 시작과 끝.

오후 12시30분, 수원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엠마우스’가 붐비기 시작했다.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찾아온 다문화가정 여성들과 그 자녀들로 센터가 꽉 찼다. 필리핀, 남미, 중국, 베트남 출신 여성들도 국적별로 삼삼오오 모여 수업을 기다리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몽골…. 다양한 국적,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은 이제 한국어를 배워야만 살아갈 수 있는 한국 며느리, 한국 엄마들이다.

한국에 온 지 10년이 된 이도, 한국에 온 지 이제 갓 열달을 넘긴 이도 “가장 어렵고, 장애가 되는 것은 한국어”라고 입을 모은다. 서툰 한국어는 부부간 소통을 어렵게 하고, 고부 갈등을 초래한다. 예절 등 문화를 배울 수 있는 교육의 기회마저 가로막는다. 일을 해 경제력을 갖추려 해도 역시 한국말을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첫째 과제이자, 마지막까지 손을 놓지 말아야 할 과제가 한국어다. 이들이 바쁜 시간을 쪼개가며 한국어를 배워야만 하는 이유고, 웬티짱이 밤 늦게까지 불을 밝혀가며 한국어 공부에 매달리는 까닭이다.

오후 12시55분, 수업이 시작됐다. 현재 이 센터에 등록된 인원은 430명, 이중 한국어교실에 나오는 여성들이 90명에 이른다. 대기자들이 많지만, 한국어교실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인원은 제한돼 있다. 수업을 받는 시간동안 ‘



가톨릭신문  2010-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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