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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시대 교회는 지금] (4) 이 땅에 사는 외국인들 (3) - 홀로서기 중인 여성들

“이제부터는 웃는 일들만 가득하길”, 국제결혼의 기하급수적 증가 더불어 이혼율 상승, 피해 이주여성 자립할 ‘공간’ ‘일자리’ 마련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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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14일 오후 사랑의 집에서 성북구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곽정남 수녀와 사랑의 집 세 가족이 둘러앉아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마음의 쉼터-벗들의 집

매서운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3월 11일, 이주여성 쉼터 벗들의 집을 찾았다. 골목 깊숙이 자리 잡은 낡은 단독주택 앞에는 빛바랜 유모차 두 대가 놓여 있었다. 김여심 수녀(버지니아·착한목자수녀회)가 반가이 맞는다.

“이곳에 오는 이주여성들은 대부분이 가정폭력 피해여성입니다. 그 남편들은 알코올중독, 장애, 정신적 질환 등을 앓고 있거나 경제적으로 무능력한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이주여성들은 신체적, 정신적 폭력 등 온갖 피해에 시달리다 결국 집을 나오게 되지요. 남편과 시댁식구들의 무시와 차별로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받은 경우가 허다해요.”

김 수녀는 “너는 돈을 주고 사 왔으니, 나의 노예나 다름없다고 말하는 남편들도 많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으니,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일이 쉬운 일이겠습니까?”

김 수녀의 이런 우려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국제결혼은 2003년 이후 국제결혼 알선업체의 성행으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2008년 전체 결혼의 11(3만6204건)를 차지했다. 이와 함께 국제결혼의 이혼도 증가했다. 2002년 1744건이었던 국제결혼 이혼은 2005년 4171건으로 증가했고, 2008년에는 1만1255건으로 급격한 증가추이를 보였다. 2008년 전체 이혼건수에서 차지하는 국제결혼 이혼율은 9.7에 달할 정도였다.

“아무 준비도 대책도 없이 국제결혼 이민자는 쏟아져 나오고, 우리는 그 이후의 실패나 부작용에 대해선 무방비였습니다. 전국에 이주여성을 위한 쉼터는 18개에 불과합니다. 정원도 10~20명 남짓입니다. 갈 곳 없는 피해 이주여성들과 그 자녀들은 어디로 가란 말입니까?”

서울이주여성쉼터 남기신 소장도 같은 말을 한다.

“부부강간이란 말을 들어보셨나요? 일부 이주여성들은 말 못할 고통을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료법률구조공단의 도움을 받아 이혼에 성공한다고 해도 위자료 지급, 재산 분할 등의 판결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아 한 푼 없이 새 삶을 시작해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김 수녀와 남 소장은 “피해 이주여성들이 자립할 수 있는 ‘공간’과 ‘일자리’ 마련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주여성 대부분은 식당일을 하거나 가사도우미를 하며 생계를 꾸리고 있습니다. 월세 40만 원을 제하고 나면 남는 돈이 거의 없습니다. 아이를 키우며 제대로 자립하기 위해선 보다 전문적이고 안정적인 일자리와 거주공간이 필요합니다.”

■ 한 지붕 세 가족-사랑의 집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자녀와 함께 자립하고자 애쓰던 ‘한 부모 다문화가정’에 사랑의 손길이 닿았다. 딸과 함께 홀로서기에 나선 조선족 결혼이주여성 김혜선(가명)씨와 필리핀 이주여성 마리아(가명)씨, 우간다 이주여성 캐서린(가명)씨는 교회의 도움으로 운영되는 그룹홈 ‘사랑의 집’에 입소했다. 세 가정 모두 마음의 상처를 딛고 일어나 경제활동을 하며 자립을 꿈꾸는 가정이다.

3월 14일 일요일 오후, 각자 생계를 꾸리느라 좀처럼 한 자리에 모이기 어려운 한 지붕 세가족이 모처럼 둘러앉았다. 사랑의 집 운영을 맡고 있는 성북구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 곽정남 수녀(유스티나·살레시오수녀회)도 함께였다. 곽 수녀의 곁으로 아이들이 모여들고, 혜선씨와 마리아, 캐서린씨도 동그랗게 둘러앉는다.

“수녀님, 일을 하고 싶어요. 영어 강사나 통역사가 되고 싶어요. 그렇지만 지금은 미싱사나 가사도우미 같은 일 밖에 들어오지 않아요.”

“저는 언젠가 식당을 꾸리고 싶어요. 중국에 있을 때 호텔에서 몇 년간 일한 경력도 있고, 지금도 식당일을 돕고 있거든요. 언젠가 전문적인 일을 하고 싶어요. 그래서 가게도 내고요.”

수녀님과 둘러앉아 푸른 미래를 꿈꾼다. 아이들은 세상 근심 모르는 듯 장난을 치며 마루를 뛰어다니고, 엄마들은 모처럼 만의 휴식에 웃음꽃이 핀다.

임신 5개월째 자신의 배를 걷어차던 남편, 출산하러 간 병원에서까지 소주를 마시던 남편, 몽둥이로 얼굴을 때리던 남편, 재떨이를 던지던 남편은 이제 잊었다. 차별과 무시와 온갖 폭력이 난무하던 지옥 같던 그 시절은 이제 과거다. 한 지붕 세 가족은 이제 희망을 꿈꾼다. 한달에 10만 원, 작은 돈이지만 저축을 한다. 갈 길은 아득히 멀지만 아이의 웃음, 그것이 미래다. 둘러앉은 한 지붕 세 가족 뒤로 두 손을 모은 성모님이 미소 짓고 있다.


 
▲ 마리아씨가 딸 수진 양(8)의 공부를 돕고 있다.
 
 
임양미 기자 (sophia@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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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0-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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