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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시대 교회는 지금] (5) 이 땅에 사는 외국인들 (4) - (주)S&H 근무 이주노동자들

“우리는 함께 일하는 ‘동료’입니다”. 힘든 일도 성실히 하는 이주노동자, 동료로 인정하며 인격적 대우하니 서로에게 위로·도움 되는 ‘윈-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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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노동자들을 동료로 대하며 함께 일하는 (주)에스엔에이치 사원들이 힘차게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 사장님 좋아요

3월 11일 수원시 권선구 입북동 소재의 (주)에스엔에이치(대표이사 민상기) 수원공장에 아침부터 봄비가 내린다. 비둘기색 컨테이너 건물의 문을 열고 들어서니 기계 소음과 함께 기름 냄새가 ‘훅’ 코를 파고든다. 햇빛이 잘 드는 밝은 실내에 먼지 하나 날리지 않는 쾌적한 작업 공간. 1인당 2평이 넘는 널찍한 공간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얼굴에 마스크, 손에는 장갑, 익숙한 남색 작업복을 입은 이주노동자들이 기자를 보며 활기차게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저는 필리핀 사람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베트남 사람입니다.”

이름보다는 국적이 앞서는 자기소개. 이름을 묻자 표정이 밝아진다.

“제 이름은 페피토(34)입니다. 필리핀 친구들은 저를 피트(PETE)라고 불러요. ‘베드로’란 뜻입니다.”

‘필리핀 사람’ 페피토는 2006년 8월, 일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 어머니, 아내, 두 아들과 두 딸을 뒤로 하고 한국행을 택한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홀로 떨어진 낯선 땅, 대한민국 경기도 남양.

“언어, 음식, 겨울이라는 날씨…. 모든 것이 낯설고 힘들었습니다. 주위를 보면 산밖에 없었고,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그러나 페피토는 열심히 일했다. 가구·건축용 유리제작 공장이었다. 뜨거운 열기와 유리조각이 난무하는 위험한 공장, 일요일에도 제대로 쉴 수 없는 많은 작업량과 열악한 보수에도 불구하고 페피토는 일했다. 교통비와 숙식비를 제외하고 월급의 80~90는 모두 본국에 송금해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졌다.

“한국에 오면 필리핀에서보다 3~4배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어요. 3D 업종이라 힘들긴 하지만 가족들을 생각하면서 참습니다.”

2008년 1월 수원 엠마우스 최병조 신부(수원교구 이주사목위원장)의 소개로 (주)에스엔에이치에 입사한 페피토는 “이보다 더 좋은 직장은 없다”고 말한다.

“사장님 좋아요. 월급도 제 때 정확히 계산해서 주고요. 기숙사도 마련해주고요. 무엇보다도 저희들을 존중해줘요. 한국 동료들과도 한 테이블에서 밥을 먹으며 허물없이 지낼 수 있는 회사를 찾기란 쉽지가 않거든요.”

‘베트남 사람’ 팜넝디엔(27)도 맞장구친다.

“예전에 다니던 공장에서는 월급도 제때에 안 주고, MCT(Machining Center:보링머신 ·밀링머신·드릴링머신을 하나로 한 복합공작기계) 같은 중요한 작업은 맡기지도 않았어요. 단순 반복 업무만 시켰어요. 여기 사장님 우리한테 높임말 해주고 믿어줘서 좋아요.”

‘베트남 사람’ 누엔만킁(27)은 사장님을 비롯한 한국인 사원들과 함께하는 회식자리가 가장 즐겁다고 했다.

“한국에 온지 1년 됐어요. 어려운 작업도 배울 수 있어 좋아요. 직원들과 ‘형’ ‘동생’ 하며 함께 술 마시고 노래방에 가기도 하고 행복해요. 삼겹살과 소주, 맛있어요.”

(주)에스엔에이치 수원공장에서 일하는 10명의 이주노동자는 모두 다 5년의 합법 체류 기간이 끝나고 나면 본국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다시 오고 싶다”고 했다.

“사장님 고맙습니다. 가족처럼 친구처럼 대해줘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인정해줘서 고맙습니다.”

■ 환대받는 친구들

“이 친구들은 우리에게 고맙다고 하지만, 사실 고마운 것은 우리입니다.”

조복민(미카엘) 상무가 입을 연다.

“창업한지 얼마 되지않은 공장이라 미래도 불투명했고 작업환경도 열악해, 우리 공장에서 일하려하는 한국인 근로자를 찾을 수가 없었죠. 공장은 돌려야 하는데 일손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붐팽시라는 태국 근로자가 일자리를 구한다며 공장을 찾아왔어요. 아직도 2000년 추웠던 그 겨울날을 잊지 못합니다.”

조 상무는 붐팽시와 그가 데려온 4명의 이주노동자 덕분에 회사를 운영할 수 있었다고 했다. “업무 강도도 셌고, 그에 비해 보수는 많은 편이 아니었지만 회사를 믿고 열심히 일 해주는 이주노동자들이 고마워 더 잘 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이후 10년 간 (주)에스엔에이치에는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이 끊인 적이 없다.

“요즘에는 이주노동자들도 회사를 선택합니다. 고용 조건을 꼼꼼히 비교한 후에 지원을 하지요. 우리같은 중소기업의 경우 이주노동자들의 노동 없이는 운영이 어려워요. 열심히 일 해주는 이 친구들에게 오히려 우리가 고맙지요.”

조 상무는 “이주노동자들은 우리나라 산업의 근간”이라고 말했다.

“그들이 없으면 영세사업장이나 3D 업종에서 일할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한국인이라면 그런 사업장의 경우 몇몇을 제외하곤 한달도 채우지 못하고 일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아요.”

조 상무는 “이주노동자들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생각하면 쉬워진다”고 했다.

“월급 제때에 정확하게 주고, 숙식 제공하고, 가족처럼 친구처럼 대하고, 그들의 능력을 인정하고 믿어주면 일의 능률도 더 좋아지고, 그것이 곧 회사의 경쟁력이 됩니다. 그것이 저와 저희 사장님의 경영원칙이고요.”

국내최초 국내산 자동차 터보차저(turbocharger)를 개발, 생산하고 일본수출용 광통신부품을 제작하는 정밀기계부품가공업체 (주)에스엔에이치는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믿음’과 ‘신용’으로 회사를 이끌어 왔다.

“이주노동자만이 우리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이 친구들이 필요합니다. 다 똑같은 우리 공장 식구들이고, 우리 회사 동료입니다.”

오후 1시30분, 점심식사를 마친 (주)에스엔에이치 사원들이 단체사진을 찍기 위해 모였다. 굵어진 빗방울에도 아랑곳없이 얼굴에 함박웃음 가득하다.

“하나, 두울, 셋!”

숫자를 세자 사원들이 큰 소리로 외친다.

“에스엔에이치 파이팅!”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116만 명의 외국인 중 70만 명에 이르는 이주노동자들, 임금체불과 산업재해, 과중한 업무, 온갖 차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를 찾아 땀 흘려 일하는 그들의 움츠러든 어깨를 펴 줄 ‘좋은 사장님’들이 이들의 ‘파이팅’을 듣고 많이 등장해주길 희망한다.



가톨릭신문  201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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