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
기획특집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나의 멘토사제] 황창희(인천가톨릭대 교수|) 신부의 멘토사제 박찬용 신부

사제 인생의 나침반과 같으신 분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유학, 부친상 등 힘겨운 시절 갈 길 인도해준 아버지 사제


 
▲ 2004년 10월 로마에서 박사학위 심사를 마친 후 박찬용 신부님과 함께 찍은 사진.
왼쪽부터 성염 전 교황청 대사, 박찬용 신부님, 필자, 당시 로마 한인신학원장 전달수 신부님.
 

    2004년은 나의 삶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 수품과 동시에 떠난 유학의 길, 그리고 그 유학의 끝 무렵 큰 고민과 절망에 빠져있었다.
 당시 나의 아버지는 당뇨 합병증으로 하루에 네 번씩 약물을 바꿔줘야 하는 인공 투석기를 몸에 달고 계셨고, 나의 유학생활 내내 여러 번 생사를 넘나들곤 하셨다. 나는 공부를 끝마쳐야 한다는 책임감과 자식된 도리를 다해야 한다는 개인적 의무감 사이에서 갈등에 직면해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나의 논문 지도교수 신부님 역시 아버지와 비슷한 당뇨 합병증으로 입원하고 말았다. 두 달 가까이 병원에 누워계시던 지도교수님과 아들 신부가 공부 끝나고 돌아오길 손꼽아 기다리는 아버지. 이런 상황에서 공부를 계속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하는 물음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2004년 4월 1일 만우절, 거짓말처럼 아버지는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임종을 지키지 못한 불효자 신부는 급히 귀국해 장례미사를 봉헌하며 참으로 많이 울었다.
 장례 후 나를 신학교에 추천해준 아버지 신부님 본당에서 며칠을 보냈다. 좌절과 절망의 순간, 난 아버지 신부님께 고민을 털어 놓았다. 이제 모든 것을 다 그만 두고 싶다고, 로마에 돌아간다 하더라도 지도신부님 역시 입원해 계셔서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신부님은 아무 말씀 없이 고개를 끄떡이셨다. 그리고 며칠 뒤 주일 교중미사 때 본당 신자들에게 엉뚱한 말씀을 하셨다.
 "사랑하는 신자 여러분, 제 아들 신부가 얼마 전에 부친상을 당해 상심이 큽니다. 그러나 오늘 여기 황 신부가 다시 로마로 돌아갑니다. 올해 안에 박사학위를 마치고 돌아올 것이니 격려의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뜻밖의 말씀이었다. 그러나 내게는 기적처럼 힘을 주는 말씀이었다. 나는 그해 10월 30일 학위논문을 마치고 귀국했다. 나는 한국에 돌아와 아버지 신부님께 서운한 감정을 토로했다.
 "신부님, 제가 고민을 있는 그대로 다 털어놓았는데 공감해 주시기는커녕 신자들에게 그렇게 말씀하시다니…."
 신부님은 한 마디로 말씀하셨다. "내가 그때 황 신부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바로 그 말 밖에 없었어."
 그분은 바로 인천교구 원로사목자 박찬용(요한 사도) 신부님이다. 그분은 내 인생의 나침반과 같은 분이다. 까까머리 중학교 시절 처음 그분을 만났고 그분의 영향으로 신학교에 들어갔으며 이제는 동료사제로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
 박 신부님은 사범학교를 나와 교사생활을 하다 늦은 나이에 신앙에 입문하셨지만 하느님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하셨다. 34년간 일선 사목현장에서 본당사제로 사시면서도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아 이따금 찾아뵐 때 마다 항상 손에서 책을 놓지 않으셨다. 또 수십 권의 저서와 번역서를 출간하시며 어느 누구보다도 하느님 말씀 연구에 일생을 바치셨다.
 대쪽 같이 곧은 성품으로 자신에겐 매사에 엄격하지만 타인에게는 한없이 자비로우신 아버지, 겉으로는 엄하게 보이나 신자들이 어려움이나 곤란한 일을 당했을 때면 미사 강론 중에도 마음이 아파 눈물 흘리시는 따뜻한 마음의 사제.
 "신부님 사랑합니다! 당신이 나의 아버지이신 것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0-04-11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5. 19

유다 1장 21절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를 기다리십시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