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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100주년 특별기획 - 다시 읽는 드망즈 주교 일기] (18) 1918년 10월 13일~12월 31일

“루르드 성모께 영광과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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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은 동굴의 해, 대성당 확장의 해, 종전의 해였다. 천주님과 루르드의 성모님께 감사드려야 할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드망즈 주교는 ‘소세 신부를 구해 주신다면 성모 동굴을 만들어 드리겠다’는 1916년의 약속을 지킨다. 당시 소세 신부는 콜레라 증상을 보이며 ‘가망이 없다’는 진단까지 받았지만 주교의 기도대로 생명을 건졌다. 성모 동굴 때문이었을까. 1918년, 제1차 세계대전도 끝을 맺었다. 드망즈 주교는 깊은 감사를 올렸다.

1918년 10월 13일

팡파르의 연주와 거대한 군중과 이상적인 날씨 덕분에, 봉헌 동굴의 축복식은 더할 수 없이 성공적이었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께 영광과 감사.

예식의 순서는 다음과 같았다. 아침에 대성당에서 1000명가량이 영성체를 했다. 9시 팡파르가 울리자 주교가 사람들로 가득 찬 거대한 광장을 강복하면서 통과했다. 성가대가 ‘미제레레’(Miserere)를 노래하는 동안 장엄하게 성수와 동굴의 안팎을 축복했다.

이후 주교가 제의를 착용하는 동안 신학생들이 라틴어로 루르드의 아베 마리아를 불렀다. 주교미사가 동굴 제대에서 성대하게 거행됐다. (중략) 광장은 하루 종일 성모께 공경을 드리는 교우들로 가득 차 있었다. 6시30분에는 동굴과 광장에 조명이 됐고, 선교사들과 신학생들이 모이기 시작할 때 팡파르가 울렸다.

주교가 우선 1911년 서약서를 프랑스어와 라틴어로 읽고, 이 서약의 실현에 대한 의사록(議事錄)을 읽었다. 주교에 이어 세 부의 의사록에 선교사들과 한국인 신부들이 서명한 다음, 한 부는 서약의 문서와 함께 대리석 상자에 주교의 인장으로 봉인해 넣었고, 성모상의 발 밑 바위 위에 놓았다. 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의 양식을 따른 이 경당은 루르드의 아베 마리아와 ‘마니피캇’을 노래하는 성직자단과 신학생들의 방문을 받았다. 팡파르의 마지막 한 곡으로 이 모든 것이 막을 내렸다.
 

 
▲ 루르드 성모의 전구를 청한 주교의 기도가 간절해서였을까. 교구 숙원사업인 주교관·신학교 설립, 그리고 주교좌성당 증축에 앞서 빌었던 소세 신부의 건강 회복 등 기도가 이뤄지자 드망즈 주교는 감사의 뜻으로 프랑스 루르드 성모 동굴을 본딴 성모당을 세우고 1918년 10월 13일 축복식을 가졌다.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과 함께 기념촬영(앞줄 가운데가 드망즈 주교).
 

 
▲ 1918년 축복 당시의 성모당(대구시 남산동 대구대교구청 내 소재).
 


가톨릭신문  2010-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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