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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100주년 특별기획 - 다시 읽는 드망즈 주교 일기] (21) 1919년 9월 25일~12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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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신학생은 항해를 잘 견뎌냈으며 뱃전에 기대어 구경을 했다. 정말 완전한 고립이다. 전보를 부탁할 사람을 오게 할 방법조차 없다.”



1919년 9월 만주 펑톈을 방문한 드망즈 주교는 11월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리는 주교단 알현(앗 리미나, Ad Limina)에 참석하기 위해 배를 탄다. 그의 일기를 보면, 당시 로마로 가는 뱃길이 얼마나 길고 험한 여정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드망즈 주교와 두 신학생을 태운 배는 일본을 거쳐 중국, 홍콩, 싱가포르 등을 약 두 달에 걸쳐 여행한 후 목적지에 닿을 수 있었다. 그는 배에서 크리스마스를 맞게 된다.

1919년 9월 25일

매우 편안한 밤을 보냈다. 다행히도 침대의 덮개 위에 덧덮을 덮개가 하나 있었다. 알초콜릿과 빵, 그리고 나의 보온병에 든 뜨거운 커피로 아침식사를 했다. 대부분의 시간은 혁명을 피해온 한 러시아인과 이야기하는데 보냈다. 그는 내게 그의 나라의 사건들에 관한 흥미있는 정보들을 알려주었다. 묵텐역에 저녁 6시 도착했다. 21시간 50분이 걸린 여행이었지만 피곤하지 않았다. 역에는 슐레 주교가 나와 있었다. 자동차로 6km를 달려 교구청에 도착했다.

26일, 슐레 주교와의 대화. 신학교와 수녀원을 방문하는 등 하루를 보냈다. 오늘 아침 한 이탈리아인 군종신부와 그의 당번병이 들렀다. 그는 나폴리 출신으로 내가 로마에 오면 그를 찾아오라고 했다.

11월 25일

‘쓰시마 마루’호는 오후 8시 시모노세키만에 닿았다. 매우 힘든 횡단 끝에 2시간 늦게 도착한 것이다. 배는 역에서 어느 정도 거리에 위치한 한 부표에 닻줄을 동여 묶었다. 모두들 검역반을 기다려야 했다. 그들이 가지고 온 조그만 유리병에 좋건 싫건 각자 자기의 것을 담았는데, 검역반은 우리에게 콜레라균의 보균자가 없다고 말했다. 두 신학생은 항해를 잘 견뎌냈으며 뱃전에 기대어 구경을 했다. 저녁 8시 모두들 오늘 밤 상륙을 기대했으나, 사실 아무 일도 없었으므로 또 하룻밤을 배에서 보내야 했다. 정말 완전한 고립이다. 전보를 부탁할 사람을 오게 할 방법조차 없다.

아우구스티노(신학생)가 나를 찾으러 왔다. 같은 칸의 한 한국인 여자가 배가 아프다고 호소하므로 어떻게 해야 할 지 물으러 온 것이다. 참으라 하라고 대답했다. 선실로 보면 신학생들이 가장 힘든 칸(3등실)에서 여행을 시작한 것이 확실하다.

12월 2~4일

오늘 아침 오사카의 대성당에서 한국어 기도와 함께 한국인을 위한 미사를 지냈다. 여자 한 명을 포함해 7명이 영성체를 했다. 다른 두 교우들이 시내에 있다고 하나 시내 어디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점심 때 오사카의 모든 신부들이 모였다. 파즈 신부가 나의 두 신학생들을 데리고 왔으며 한 일본인 신부가 그들을 안내해 주었다. 저녁식사 시간에 맞춰 고베에 돌아왔다.

4일, 대주교에게서 전보가 왔다. 5시에 배를 탔다. 카스타니에 주교와 파즈 신부가 배까지 배웅해주었다. 배는 웅장했다. 7시에 출발했다.


 
▲ 드망즈 주교가 두 신학생을 데리고 파리외방전교회 대의원회의 및 교황청 정기방문(앗 리미나)차 로마에 갈 때 탔던 여객선 스핑크스호(1919년 12월).

 
▲ 샤르즈뵈프 성유스티노신학교 총장 신부(가운데)와 로마로 유학 떠나는 두 신학생(1919년 11월).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0-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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