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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는 천주실의] (3) 천지만물을 ‘처음’ 창제하고 주재하는 분

‘처음(始)’은 창세기의 ‘태초’ 표현하는 단어, 인간 인지력 넘어서는 신앙으로 수긍할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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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은 사도신경 첫머리에서 ‘나는 천지의 창조주를 믿나이다’로 고백한다. 말하자면 창조주 개념은 신앙의 언어에 속한다. 신앙을 전제로 할 때 창조 개념이 의미를 지닌다. 창조사상은 근본적으로 신앙에 근거한 신조이며, 그리스도교의 하느님 성격을 규정하는 결정적 요소이다. 우주만물이 모두 하느님의 작품이며, 어느 생명 하나 소홀히 다룰 수 없는 존재이자 생명인 것이다.

자칭 서양선비(西士)인 리치는 「천주실의」를 통해 하느님을 ‘천지만물을 처음 창제하시고 때때로 주재하시는 존재(始制作天地萬物而時主宰者)’라고 정의한다. 이에 앞서 중국선비(中士)의 입을 통해서는 ‘처음 하늘과 땅과 사람과 만물을 지으시고 주재하고 기르시는 존재(其始制乾坤人物而主宰安養之者)’라고 표현했다. 천지(天地)와 건곤(乾坤)을 창조한 존재가 바로 그리스도교가 고백하는 창세기의 하느님이시다.

성경의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과 만물을 창조하실 때’가 이 ‘처음(始)’이다. 시간과 공간이 존재하기 시작할 때를 가리키는 단어이다. 창세기가 천지창조를 묘사할 때 ‘태초에’(Bereshit)라고 표현한 바로 그 단어이다. 인간의 인지능력을 넘어서기 때문에 신앙이 아니면 수긍될 수 없는 영역이다. 인간이 믿지 않으면 존재를 말할 수 없는 하느님, 이런 의미에서 리치는 ‘천하에 이 사실보다 더 자명한 것은 없다(天下莫著明乎是也)’고 선언한다.

리치는 이에 덧붙여 창조를 표현하기 위해 두 가지 표현을 사용한다. 하나는 ‘제작천지만물(制作天地萬物)’ 혹은 ‘제건곤(制乾坤)’이다. 제작(制作)이나 제(制)는 서구적 의미에서 기하학적 이성(理性)을 전제한다. 또 하나 주의할 표현은 ‘하느님께서 천지를 개벽하고 사람과 만물을 강생시키신 때부터(自天主開闢天地降生萬物)’에서 보듯, 개벽(開闢)과 강생(降生)이다. 개벽(開闢)은 고대 중국신화에서 반고씨(盤古氏)가 천지를 창조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하며, 하늘과 땅이 처음으로 열린 우주의 시초를 이르는 말이다. 강생(降生)은 태어남을 일컫는 단어이지만, 형이상학적으로는 ‘위에서 아래로’ 태어난다는 의미를 지닌다. 창조의 의미가 유일신론(唯一神論)에 익숙한 서양 신학에서 ‘무(無)에서 창조’(Creatio ex Nihilo)로 이해됐다면, 한자문명권은 분명 창조를 다르게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하느님 존재와 같은 자명한 사실은 그대로 유효한가? 자명한 존재는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리치는 세 가지 예를 들어 증명할 근거를 마련한다. 첫째는 양능(良能)이요, 둘째는 만물은 하느님에 의해 위치나 운동이 정해지는 것이고, 셋째는 모든 존재는 위계적 질서 속에 존재하기 때문에 더 높은 존재가 있다는 주장이다. 첫째는 ‘배우지 않아도 할 수 있는 능력(不待學之能爲)’을 말함이요, 둘째는 하느님이 모든 운동의 최종 원인이며, 셋째는 하느님은 모든 존재의 최종 근거임을 뜻한다. 이제 하느님의 존재가 비유적으로 충분히 설명되었는가?


박종구 신부(예수회·서강대 종교학과 학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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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0-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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