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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100주년 특별기획 - 다시 읽는 드망즈 주교 일기] (23) 1920년 4월 26~6월 15일

뜻밖의 비보에도 목자 역할 충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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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르즈뵈프 대구 신학교 총장 신부가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선종했다. 프랑스에 있던 드망즈 주교는 도착한 전보를 받고 ‘끔찍한 소식’이라며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페네 신부를 신학교 총장으로 임명하고 로마로 건너간다. 성녀 쟌 다르크의 시성식에 참가하는 등 다양한 업무를 소화한 그는 다시 프랑스로 간다.

1920년 4월 26~27일

오늘 아침 생 디에에서 7시33분 기차를 타고, 5시15분 파리 동부역에 도착했다. 뤼 뒤 박에 도착해서 나는 전날 도착한 전보를 받아보았다. “샤르즈뵈프 사망. 베르모렐.” 날짜는 없었다. 이 무슨 끔찍한 소식인가! (중략)

27일, 나는 다음과 같은 전보를 보냈다. “대구 성당 베르모렐에게, 페네를 신학교 총장으로 임명함. 드망즈.” 이 전보를 치는데 4.17프랑이 들었다. 오후에 나는 은행에 갔고, 이어 트리용 신부를 만나러 갔다. 짐은 로베르 신부가 실어갔고,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역으로 갔다. 9시53분 리용역을 떠났다.

5월 7~16일

우리 모두는 7시30분 경리부에서 예복과 주교 수단을 입고서 자동차 두 대에 나눠 타고 추기경 회의실로 떠났다. 사람들은 차례대로 자리를 잡았다. 교황께서 입장하시는 동안 추기경들이 모자를 벗고 있는 것이 보였다.

교황께서는 세 개의 가로장을 붙인 십자가를 앞세우고 시종들과 스위스 근위병들의 수행을 받으며 입장하셨다. 성하께서 단순한 주교관과 긴 붉은 망토를 걸치고 교황좌에 앉으시니 모든 수행원들이 물러갔고, 추기경과 총대주교, 대주교와 주교들만이 남았다.

교황께서 ‘베니 상떼’(Veni Sancte)를 시작하셨다. 이어 추기경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서있는 가운데 교황께서는 ‘복자 가브리엘과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 쟌 다르크 등의 시성식을 거행해도 좋은가’에 대해 의견을 묻는 연설을 하셨다. (중략) 16일, 오늘 아침 성녀 쟌 다르크의 시성식이 행해졌다. 의식진행 시간은 지난 목요일보다 한 시간 짧았다. 5만5000장의 입장권이 발부됐다.

6월 11~15일

오늘 저녁 우리는 마지막 회의를 가졌는데 42번째 회의였다. 10번의 위원회까지 50번 이상의 회의가 열렸다. 곧 이어 성체현시가 있었고, 저녁을 들기 전 감사의 성체강복을 했다.

12일, 아침 우리는 교황을 알현했다. 곧 이어 레이 주교와 로베르 신부와 함께 나는 티베르기앙 주교의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우르바노 대학을 갔지만, 우리 한국인 신학생들이 5시부터 7시까지 강의중이어서 만나지 못했다. 그들은 저녁 6시30분부터 7시 사이에 시리아인을 데리고 나에게 작별인사를 하러왔다.

15일, 5시15분 우리는 리용 근처에 도착했고 직원이 우리를 깨웠다. 8시30분 리용역에 도착해 신학교에서 우리는 바리용 주교를 만났다. 아주 많은 우편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중에는 샤르즈뵈프 신부의 사망에 관한 상세한 편지가 들어있었다. 그는 피정 셋째 날 미사 도중 뇌출혈로 즉사했다고 한다.


 
▲ 1920년 6월 11일 로마에서 파리외방전교회 대의원회의를 마친 후 극동지역 주교들과 함께 기념촬영.
뒷줄 왼쪽에서 두번째가 드망즈 주교.
 

 
▲ 1920년 7월 18일, 프랑스 파리 근교 그레지용에서 옛 군인들을 위한 미사에 참석한 드망즈 주교(맨 왼쪽).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0-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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