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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100주년 특별기획 - 다시 읽는 드망즈 주교 일기] (24) 1920년 9월 10~10월 3일

미국 곳곳서 ‘새 교구’ 위한 성금 모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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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의 일정을 마친 드망즈 주교는 이어 미국대륙으로 건너간다. 대서양 횡단 정기선 ‘로렌느’호를 탄 그는 휘몰아치는 폭풍우를 견디며 미국에 도착했다.

미국을 ‘신대륙’이라고 표현한 드망즈 주교는 많은 개신교 목사들과 신자들을 마주치기도 했는데, 미국에 도착해 영어강론을 직접 하며 성금을 거둔다. 브로드웨이에서 지하철을 타며 ‘휘황찬란한 광경’이었다고 표현한 그의 말을 통해 당시 ‘미국’의 모습을 알 수 있다.

1920년 9월 10~12일

오늘 아침 바다가 약간 잠잠해져서 미사를 드렸다. 아침을 먹자마자 바람이 다시 불었고, 여전히 거친 날씨이기는 했지만 지난밤 폭풍우의 연속일 뿐이었다. 우리는 신대륙에 가까이 와 있는데, 이 근처는 언제나 위험한 지역이다.

우리는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자주 이용하지 않는 추운 해로(海路)를 택했다. 첫째는 온갖 종류의 표류물을 휩쓸어가는 멕시코 만류를 피하기 위해서고, 다음은 많은 선박들, 타이타닉(Titanic)호의 파선의 원인이 된 떠다니는 빙산을 피하기 위해서다.

봄에는 빙산들이 바로 우리가 지나가는 길 위에 떠있고 여름이 끝날 쯤에는 더 남쪽에 떠 있는데, 그것들과 움직이지 않는 빙산의 사이인 이곳으로 지나가는 것이 좀 더 신중한 선택이다.

11일, 오늘 아침 나는 뉴욕의 장로교회 사람들을 보았다. 배는 비와 바람 때문에 방향을 바꾸었다. 다음날, 8시30분 미사를 드리고 간단한 강론을 했다. 사람들이 많았고, 9시30분 개신교 예배에 자리를 내주기 위해 모든 의식을 상당히 빨리 끝냈다. 메리놀(Maryknoll)에 전보를 치고 또 여러 통의 편지를 보냈다.

9월 15일~10월 3일

9시30분 자동차를 타고 메리놀을 떠났다. 레인 신부가 30마일 떨어진 곳까지 배웅해 주었고, 메리놀에서 뉴욕까지 도로는 아주 훌륭했다. 우리는 우선 던 주교를 만나러 갔는데, 그는 무척 친절했지만 내가 모금을 하는 것을 도와줄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중략)

저녁식사 후 나는 퀘벡 주교관의 비서관이자 이곳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캐나다인 참사회원과 캐나다인 신자와 함께 2시간 동안 산책을 했다. 5번가와 브로드웨이 리버사이드스트리트를 구경했고 지하철을 탔다. 휘황찬란한 광경이었다.

10월 3일, 오늘 아침 11시30분 프랑스 성당인 생 뱅상 드 폴(St.Vincent de Paul) 성당 미사에서 강론을 했다. 주임신부 저택에서 점심을 먹고, 오시닝 행 열차를 타기 위해 중앙역으로 갔다.

역에서 나는 메리놀로 돌아가는 데스바(Desvar) 신부를 만나 그와 함께 여행했다. 우리는 함께 긴 드라이브를 했고 메리놀로 가서 성체강복을 했다. 현재 메리놀에 있는 인원수는 다음과 같다.

대신학생이 65명이고, 부제와 차부제가 54명, 수사가 15명인데 수사들은 메리놀과 세랑톤(Seranton), 샌프란시스코 3곳에 있다. 세랑톤에는 철학과 학생 82명과 선교사들을 합쳐 모두 230명이다. 짧은 시간에 이런 성과를 거두었으니 경이로운 일이다.

 
▲ 유럽 일정을 마치고 미국에 도착한 드망즈 주교(1920년 9월).
 

 
▲ 1920년 10월 24일 미국 피츠버그 방문 당시의 드망즈 주교(왼쪽에서 두 번째).
이날 주교는 주일 하루 여섯 번 이상 영어로 강론한 것에 대한 고충을 일기에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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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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