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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는 천주실의] (11) 서양의 유가(儒家) 선비 마태오 리치

지식사회 주류 유가 선택, 도가와 불가 사상 비판, 무(無) 공(空) 사상 이해, 문자적 이해 차원에 그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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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가 직면하지 않을 수 없었던 삼가(三家)는 노자를 주종(主宗)으로 하는 도가(道家)와 인도에서 전파되어 온 불가(佛家), 중국 본래의 유가(儒家)였다. 노자의 도덕경엔 무(無)와 도(道)가, 불교의 반야사상 계열 경전엔 공사상(空思想)이, 공자를 종조(宗祖)로 받드는 유가에서는 유(有)를 종(宗)으로 삼는 태극사상(太極思想)이 주류였다. 이 중에서 리치는 당시 유럽의 중세적 사유에서 이해하기 어려웠던 도가와 불가는 처음부터 문제 삼지 않았다. 게다가 도가와 불가는 유학의 본류가 송명이학(宋明理學)으로 불리던 시기엔 중국의 지식인 사회에서도 방외에 머물렀다. 리치도 처음 승복을 입고 중국사회에 접근했다가, 불가가 지식인 사회의 주류가 아님을 알고 유가의 선비 옷으로 바꿔 입은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오늘 우리가 보고 있는 마태오 리치, 즉 이마두(利瑪竇)의 초상이 전형적인 유가의 선비란 사실은 바로 이런 점에 기인한다.

그러므로 ‘리치가 불가와 도가의 사상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을까’란 질문은 논외로 할 수밖에 없다. 종교적 이상과 역사적 상황이 전혀 다르게 전개되어온 동양의 사상을 통섭할 수 있기엔 아직 시기상조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리치는 도가나 불가를 형제적 관점에서 파악하고 이치로 깨우쳐 주어야 한다는 열정적 주장을 감행했다. 유교는 이들의 주장을 유감스럽게 여기고, 미워하거나 오랑캐들처럼 배척하고, 이단으로 물리치기만 했다고 지적했다. 리치의 주장에 따르면, 논리적 오류를 지적해 설득하는 것이 잘못을 비판하고 무시하는 것보다 더 유효했던 것이다.

리치는 서양의 유가처럼 도가와 불가의 기본 개념인 ‘무(無)’와 ‘공(空)’을 비판하지만, 이해의 한계만을 드러낼 뿐이다. 아직 설익은 동양사상에 대한 비판의 밑바닥에는 앞서 언급했던 서양 중세의 철학적 지식이 자리한다.

‘이제 공(空)이니 무(無)니 하는 것은 절대로 자체 속에 아무것도 가지고 있는 게 없다. 어떻게 형상(性, form)과 질료(形, matter)를 부여하여 물체가 되게 할 수 있는가?’(今曰 ‘空’, 曰, ‘無’者 絶無所有於己者也, 則胡能施有 ‘性’ ‘形’ 以爲物體哉). 리치에게는 문자 그대로 없는 것(無)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더구나 존재하지 않는 것의 내용은 말할 수 없다. 따라서 “‘공(空)’과 ‘무(無)’는 개체들의 운동인(作者), 형상인(模者), 질료인(質者), 목적인(爲者)이 될 수 없다”(旣謂之‘空’‘無’ 則不能爲物之作者, 模者, 質者, 爲者)는 주장이 성립한다.

리치는 도가의 무(無)와 불가의 공(空)을 사상적 기반 위에서 이해하기보다 문자적 이해의 차원에 머물렀다. 리치가 도덕경의 사유와 반야심경의 드넓은 세계를 한 구절이라도 열린 마음과 긍정적 시선으로 바라보았다면, 일방적인 유가적 시선만을 고집하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다만 리치의 한계를 긍정적으로 이해하는 입장에 선다면, 리치의 설득 대상이 유가의 선비였기 때문에 다른 사유세계는 돌아볼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박종구 신부 (예수회·서강대 종교학과 학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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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0-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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