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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100주년 특별기획 - 다시 읽는 드망즈 주교 일기] (26) 1921년 11월 3일~12월 31일

“주여, 당신 뜻 깊이 깨닫게 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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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외방전교회 총회(홍콩)에서 돌아온 드망즈 주교는 다시 ‘사목방문’을 떠난다. 사목방문은 11월부터 약 한 달간 이뤄졌으며, 이 가운데 가난하면서도 주님을 잊지 않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많은 우리나라 신자들을 만난다.

사목방문에서 돌아온 그는 곧 성탄을 맞는데, 신학교에서는 ‘가경자 김대건 안드레아’라는 연극을 마련해 김대건 신부의 시복시성을 염원하는 당시 신학생들의 열망을 느끼게 한다.

1921년 11월 3~11일

나는 유 안드레아 신부와 함께 2시30분 기차로 대구를 떠나 약목(若木)역에 도착하니 김 요셉 신부가 나와 있었다. 준비돼 있던 자동차를 타고 산길을 1시간 달려 성주읍에 도착해 거기서 말을 타고 읍내에서 약 30분 거리에 있는 산막터(경북 성주군 성주읍 성산리)에 닿았다. 공소는 기와지붕의 아름다운 집이었다.

5일, 60리라고들 하지만 실제는 80리에 가까운 먼 길을 갔다. 장재치(성주군 가천면 금봉리에서 금수면으로 넘어가는 장재고개를 말하는 듯함)에 도착했다. 거의 깎아지른듯한 가파른 길이어서 말을 타고 갈 수 없었다. 마을은 산꼭대기에 있었고 매우 가난하고 모두 교우였다.

7일, 아침에 눈이 내리는 바람에 모든 의식은 낮고 좁은 방안에서 치러져야 했다. 110명 이상이 영성체를 하고 38명이 견진성사를 받았다. 의식은 매우 길었으나 모두 참을성과 선의를 지니고 질서를 지켜주었다.

11일, 10리 길을 걸어 가실지역의 마지막 공소인 넉바위(경북 성주군 금수면 무학리)공소에 닿았다. 볼품없는 아주 작은 집이었다. 나는 여기서 아주 잘 교육받은 어린 견진자들을 만났다.

한국 나이로는 7세이고 실제는 6세인 어린 소년이 교리문답을 모두 알고 있었으며, 9세 내지 10세 된 다른 소년들은 (문답의) 풀림까지 알고 있었다. 여기도 또한 매우 가난한 곳이다. 한 어린 견진자는 정말 꼭 필요한 옷들인 누덕누덕 기운 바지와 조끼밖에 없어서 솜도 두지 않은 이 옷을 입고 추위에 떨고 있었다.

12월 12~31일

산에서 20리 길을 다시 내려와 용수(경북 영천시 괴연동으로 추정)에 도착했다. 신자들은 환영회 준비를 아주 지나치다 싶게 잘해놓았으며, 내게 하루 더 있으라고 했다. (드망즈 주교는 다음날인 13일, 영천을 거쳐 대구에 도착한다.)

25일, 예년처럼 아름다운 성탄 첨례다. 어제 신학교에서는 조과 대신에 ‘가경자 김(대건) 안드레아’라는 연극을 마련했다. 한국인들은 연극에서 거의 예외 없이 거북함을 보이는데, 학생들도 그런 결점을 없애지 못한 것 같았다. 우스꽝스럽게 해야 하는 대목에서 그렇지 못했다.

31일, 신학교에서 한 해를 마감하는 성체강복을 한 뒤 본당과 신학교 신부들이 와서 저녁을 들었다. 눈이 펑펑 내렸다. 천주여, 우리 뜻이 아닌 당신의 뜻을 더욱더 깊이 깨닫게 해주소서!


 
▲ 1921년 11월 10일 김천지역 먹방리공소 사목방문 기념.
 

 
▲ 1921년 12월 10일 영천지역 용수공소 사목방문 기념.
 

 
▲ 사제수품 25주년을 맞은 미알롱 신부를 위한 기념식 후 단체 사진촬영(1921년 6월 28일).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0-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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