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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는 천주실의] (16) 이(理)·태극(太極)과 본질적으로 다른 천주

중국의 형이상학적 사유 자연철학 범주에서 해석, 실체인 천주와 달리 속성에 불과한 이·태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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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理)를 관념적 개념으로 치부하는 리치의 해석에 중국선비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리치가 관념적 이(理)를 해설하기 위해 예시한 수레바퀴의 제작여부에 대해 중국선비는 적절한 비유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리치는 이의에 대해 다시 수레의 이(理)를 자연적 실체 개념에 빗대어 수레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이유를 들어 이(理)가 헛된 개념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리치가 생각하는 자연철학적 사유가 중국의 형이상학적 사유와 어긋남을 보게 된다. 자연철학적 사유 틀에서 볼 때 이(理)는 절대로 이에 상응하는 개념을 찾을 수도 없고 해설도 불가능하다. 창조주 사상은 신앙 고백적 차원에서 언급될 수 있는 것이지 자연과학적 차원에서 언급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최근 영국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곧 출간될 자신의 저서 「거대한 설계(The Grand Design)」에서 우주창조에 대한 견해를 밝히면서 무신론적 태도를 보였다. 창조는 신(神)과 관계없이 중력의 법칙에 따라 발생한 사건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런 자연과학적 태도는 호킹의 말대로 경험세계에 대한 관찰과 인간 이성에 기초한 성격에서 출발한다. 완전한 물리학 이론을 발견하는 순간 신(神)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여기서 출발했다. 사실 물리세계에서 확인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 종교의 신앙고백은 자연과학적 관찰에 갇힐 수 없다. 이론은 늘 보강되어야 할 이론으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와, 리치가 이(理)의 성격을 아리스토텔레스의 삼혼설(三魂說)에 근거해 규정하는 사실을 들어보자. 생혼(生魂-식물혼), 각혼(覺魂-동물혼), 영혼(靈魂)을 분류해 인간은 영혼을 지니고 있으니 인간만이 인간을 낳을 수 있다. 그러나 이(理)는 이성능력도 지각능력도 없으니 이성능력이나 지각능력을 만들어 낼 수 없다(理無靈無覺, 則不能生靈生覺). 이(理)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면 무형적인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이(理)에 이성능력이나 지각능력이 없다는 주장에 대해 어찌 반대할 수 있겠는가? 중국선비의 입을 빌려 질문을 던지게 하지만, 태극(太極)이나 이(理)를 자연철학적 범주에 가두고 있다면 여전히 어긋난 질문과 답변으로 진행될 뿐이다.

리치의 생각을 좀 더 들어보자. 천주는 형체도 없고 소리도 없으나 형체와 소리가 있는 천지만물을 만들 수 있다(天主無形無聲 而能施萬象有形有聲). 그러나 천주는 이(理)나 태극(太極)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이 다름을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에 의지해 리치는 설명을 계속한다. 이 설명에 따를 때, 천주와 이(理)의 차이는 아마도 이(理)를 이해하는 방식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이(理)가 천지만물에 내재해 있다고 한다면, 천주는 천지만물이 헤아릴 수 없는 고귀한 품성을 지니고 있다는 주장이다. 하느님의 초월성을 이해하고 있던 세상에서 이(理)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용어에 따르면 속성에 준할 뿐이고, 천주는 실체의 범주에 속한다. 천주는 오직 한 분으로 천지만물에 깃들어 있는 수많은 이(理)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 위에 리치는 천주의 유일성을 상서(尙書)와 예기(禮記) 등을 인용해 상제(上帝)와 천주를 동일시하여 자신의 주장을 논증한다.


박종구 신부(예수회·서강대 종교학과 학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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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0-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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