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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는 천주실의] (18) 인간에 대한 탐구

성리학의 이(理) 거부하고 ‘하느님 개념’ 강조, 천주론(天主論) 마무리 후 인간에 대한 논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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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오 리치는 이(理)가 천지(天地)와 천지간(天地間) 만물의 주재자가 될 수 없음을 강력히 피력했다. 그리하여 최고 정신성을 나타내는 하느님의 본성에 반하는 표현으로 이(理)를 거부한 것이다. 특별히 성리학(性理學)에서 말하는 이(理)를 극력 거부함으로써 이(理)의 위치를 각하시켰다. 이와 같이 리치가 천지(天地)를 형이하학적 존재로 파악할 때(但知事有色之天地)(II-2-16), 그의 비판은 더욱 날카로울 수밖에 없었다. 만약 우리가 충분히 지혜롭다면, 유형의 천지를 보고 ‘형체는 없으나 하늘보다 앞서 있는 존재’(以尊無形之先天)를 받들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물론 리치의 견해는 당대의 신학과 철학적 사유의 기반을 고려하면 당연한 사유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리치는 이 논의를 통해 천주론(天主論)이라 말할 수 있는 논술을 짧게 두 편으로 마감한다. 달리 말하면, 중세신학의 전통에서 의미하는 ‘하느님 개념’을 성리학적 서술방식을 통해 이해시키고자 했던 대화의 산물이 되었다.

리치는 첫 번째 두 편에서 천주(天主)를 논하고 난 뒤, 비로소 그리스도교의 관점에서 하느님의 창조물인 인간 탐구를 시도한다(상권 3편). 그는 중국 선비의 입을 통해 동양의 사생관(死生觀)을 이렇게 요약 기술한다. 인간의 삶은, ‘군자는 마음을 수고롭게 하며 소인은 몸을 수고롭게 한다(君子勞心, 小人勞力 孟子, 藤文公 上)’로 요약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동양적 인간관의 궁극적 목표가 성인(聖人)이 되는 길이라면, 모든 사람(군자이건 소인이건)은 노심초사(勞心焦思)할 수밖에 없다. 현세의 고통과 번뇌를 극복하여 성인이 되는 길, 곧 ‘마음으로 애쓰고(勞心), 몸을 사용하여 애쓰는 것(勞力)’ 모두 세상의 삶이 쉽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인간은 세상의 삶을 어렵게 살아가는 동안에 마침내 죽음에 이르게 되니 그 삶은 죽음으로 마감하게 된다. 중국의 선비는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현세의 도리도 미처 깨닫지 못한다면, 이런 도리를 초월하는 다른 도리는 어떻게 깨달을 것인가? (然則人之道, 人猶味曉, 況于他道?)(III-1)

더구나 한 인간의 삶을 일반적 차원에서 간단히 기술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실제적으로 사회적 차원의 삶은 더욱 복잡하다. 이런 문제에 대해 모든 종교가 각자 정도(正道)를 외치고 있지만, 세상은 더욱 혼탁하고 어지럽다. 윗사람들과 아랫사람들이 서로 능멸하며 업신여기고, 군주와 신하, 형과 아우, 부모와 자식, 아비와 어미가 서로 갈리는 세상에서 사람들 모두가 서로 속고 속이니 진실을 회복하기가 무척이나 어렵다. 이렇듯이 고통이 한 개인을 지배할 뿐만 아니라 천하를 휩쓸고 있으니, 하느님은 어찌하여 이런 환난의 세상에 인간을 태어나게 했으며, 참으로 하느님의 인간사랑은 짐승사랑보다 못한 것은 아닌가?(不知天主何故生人于此患難之處, 則其愛人, 反似不如禽獸焉) 고통에 대한 종교의 해법은 늘 현실과 모순된 것처럼 보이니 참으로 알 수 없다.

중국선비가 고백하듯이 인간의 고통은 실존 차원에서 제기될 수밖에 없는 심각한 질문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고통의 문제는 인간의 삶에서 가장 본질적이어서 모든 종교는 나름대로 각자의 답변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어떤 종교의 신앙을 고백하는 어느 누구도 고통의 문제를 해결했다고 장담할 수 없는 게 우리의 체험이다. 고통은 인간 실존의 모든 차원에서 경험되는 현상으로 특정 종교의 응답으로 해소될 수 있다고 장담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 만큼 인간의 삶에서 고통의 문제는 지극히 심각한 주제이며 대답하기 지난한 문제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고통에 대해 중국선비가 던진 질문에 리치가 제시한 답변은 어떠한가?


박종구 신부(예수회·서강대 종교학과 학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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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0-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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