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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는 천주실의] (19) 세상의 고통이 상존(常存)하는 이유

세상에 대한 ‘애착심’ 고통의 근원으로 제시, 현세에는 잠시 머물 뿐 본향은 내세(天)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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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오 리치는 세상의 고통이 상존(常存)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인간은 세상에 대한 애착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으니, 세상에 대한 애착이 고통의 근원이 된다. 고통의 근원을 알면서도 인간은 어리석은 마음에 세상을 연모하고 세상에서 그 마음을 떼어내질 못한다(世上有如此患難, 而吾癡心猶戀愛之, 不能割). 한마디로 우리 인간의 마음은 혼미하고 어리석어 고통의 근원인 세상에서 겉으로 위대해 보이는 일을 성취하고 싶어 한다. 세상 가치에 기준을 둔 인간의 일이 모두 위태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서 비롯된다.

리치는 고통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 고대의 그리스 철학자인 헤라클레이토스(Heracleitos, 흑랍, 黑蠟, 기원전 약 540-480년)와 데모크리토스(Democritos, 덕목, 德牧, 기원전 460-370년)의 말을 예로 제시한다. 세상 사람들이 헛된 일을 따르는 것을 두고 헤라클레이토스(‘만물은 유전한다’고 주장: 사물의 끊임없는 변화를 의미하는 표현)와 데모크리토스는 상반된 태도를 보였다. 리치의 설명에 따르면, 한쪽은 ‘겔라시노스’(Gelasinos, 웃는 철인)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늘 웃었고, 다른쪽은 늘 울었다. 웃는 이유는 세상 사람의 헛된 수고를 비웃었기 때문이고, 항상 울었던 까닭은 불쌍히 여겼기 때문이다. 또 리치는 다른 예를 들면서, 고통스럽고 수고스러운 세상에 태어남을 울면서 조문하던 풍습에서 이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을 축하했다는 고사(故事)를 언급한다. 물론 리치는 이런 예들이 지나치게 한 면만을 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현세의 실상을 잘 표현했다고 주장한다. 세상은 인간이 잠시 살다가 지나가는 곳이니 평안하지도 않고 만족할 수도 없다. 현세는 잠시 머무는 곳이요, 오래 머무는 곳이 아니다. 우리의 본향은 현세에 있지 않고 내세(天)에 있기 때문이다. 동물은 이 세상에 살면서 자족할 수 있지만, 인간은 결코 만족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세를 동물의 세계에 비유한다면, (내세의) 하늘은 인간이 가야 할 곳이다. 달리 말하면, 현세를 인간의 본래적 삶의 터전으로 여기는 것은 (금수의 무리가 취하는) 동물적 태도이니 하느님께서 이런 인간을 각박하게 대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以今世爲本處所者 禽獸之徒也. 以天主爲薄於人 固無怪耳) (III-1)

그렇다면 리치가 주장하는 내세의 천국론(天國論)은 다른 종교에서 말하는 것과 다른 것인가? 리치의 말에서 보듯이 유가나 불가에서도 살인을 금지하지만, 이 사실 하나만으로 두 가르침의 동일성을 주장하기에는 다른 교리의 차이가 너무 크다. 게다가 그리스도교의 가르침과 불가나 유가의 가르침의 차이를 리치가 설명하는 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불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리치의 발언은 사실 유가를 설득하고자 하는 측면에서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이러하다. 도(道)를 닦는 자는 후세에 천국에 들어가 무한한 복락을 누릴 것이고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영원한 재앙을 면하게 될 것이다.(修道者後世必登天堂, 受無窮之樂, 免墮地獄受不息之殃) 이와 같은 영복(永福)과 영벌(永罰)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은 오히려 인간 영혼의 영생과 불멸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신앙고백이라고 하는 게 낫다.


박종구 신부(예수회·서강대 종교학과 학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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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0-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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