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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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는 천주실의] (23) 사후에도 지속되는 상선벌악(賞善罰惡)

육신은 사라지더라도 소멸되지 않는 인간 영혼, 일생의 행실에 따라 하느님의 상벌 받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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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로, 리치는 인간 영혼의 불멸성을 현상적으로 제시하기 위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지적한다. 사람도 무서워하는 맹수가 죽으면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지만, 사람이 죽으면 사람은 그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 이유는 맹수가 죽으면 동물의 혼은 흩어져 사라지지만, 인간의 혼은 남기 때문이다. 사람의 본성인 영혼은 양각(良覺), 곧 인간에게 선천적으로 주어진 고유한 인식능력이 있기 때문에 두려움이 발생한다.

다섯째로, 하느님은 권선징악(勸善懲惡)의 하느님으로 인간이 살아 있을 때 받는 상선벌악(賞善罰惡)은 죽은 다음에도 지속된다. 왜냐하면, 인간의 영혼은 소멸하지 않고 육신의 사후에도 지속되기 때문이며, 그래서 하느님의 공의(公義)는 사후에도 진행된다. 악한 영혼이 사후에도 벌을 받게 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해설은 중국인의 사고와 달리 작지만 근본적인 큰 차이를 드러낸다. 중국인에게도 육신의 죽음은 군자(君子)이건 소인(小人)이건 동일하다. 그러나 군자의 일생이 소인의 일생과 다른 까닭에 군자의 죽음은 소인의 죽음과 다르게 수용된다. 소인은 죽음으로써 인간적인 모든 게 사라지지만, 군자의 일생은 도(道)를 닦은 까닭에 군자의 본심(本心)은 흩어지지 않고 소멸하지 않는다. 이러한 설명, 곧 인간에 대한 중국인의 도덕적 윤리적 설명은 인간 영혼의 불멸성을 해설하기에 아직 부족하다.

영혼의 선악은 영혼의 불멸성을 결정짓는 요소가 아니다. 영혼 자체가 정신이요 한 몸의 주인이며 육신 활동의 근원이다.(魂乃神也, 一身之主, 四肢之動宗焉) 창조주는 선악에 따라 존재자들의 본성을 바꾸지 않는다.(造物者, 因其善否 不易其性) 영혼은 악하건 선하건 영구히 존재하는 것으로 악행 때문에 소멸하지 않는다. 만약 영혼이 잘못 때문에 소멸된다면, 무화(無化)되는 것이니 환난도, 고통도, 형벌도 받을 수 없다. 오히려 죽음은 악한 영혼이 죄에서 해방되는 사태가 되지 않는가? 그렇다면 하느님의 공의는 인간에게 두려움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며, 인간의 악행은 더욱 커질 뿐이다. 그래서 리치는 중국인의 수행생활을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선한 이들의 마음과 악한 이들의 마음은 흩어지거나 없어지는 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앞에서 말한 대로 착한 사람은 마음속에 덕을 갈무리하고 악한 사람은 죄를 갈무리하기 때문에 하느님의 공의는 여전히 사후에도 작용하는 것이다.

인간의 육신과 영혼은 오직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소멸하고 영속하는 것이니 인간의 뜻대로 되는 게 아니다. 육신의 소멸성으로 인간은 육체적으로 영구히 살 수 없으며, 영혼의 상존성으로 인간은 자신의 영혼을 소멸시킬 수 없다. 다만 인간은 하느님에게서 받은 품성을 가지고 하느님께 바치는 술잔이 될 수도 있고, 오물을 담는 쟁반이 될 수 있다.(吾或以造祭神之爵, 或以之造藏穢之盤) 제사에 쓰일 귀한 술잔이 되든지 오물을 담는 쟁반이 되든지 하느님에게서 받은 인간의 귀한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천상 광명으로 빛날 수 있고, 지하의 큰 어둠이 될 수도 있다. 인간에게 두 본성의 가능성이 있어 동물처럼 될 수도 있고, 현명한 인간이 되어 고명한 인간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박종구 신부(예수회·서강대 종교학과 학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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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0-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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