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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는 천주실의] (24) 눈에 보이진 않아도 존재하는 인간 영혼

오상(五常), 바람 등 볼 수 없지만 존재하듯, 불멸하는 영혼의 존재 인간의 이치로 알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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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구 신부
 

인간 영혼의 불멸성을 설명하기 위해, 리치는 구체적인 예를 중국인들이 조상의 영혼들을 섬기는 의식에서 찾는다. 동시에 불멸성을 설명하기에는 우회적인 방법이지만, 인간의 영혼을 귀신의 범주에 넣는다. 사실상 리치가 인용하는 고대 경전의 이야기들은 정치적 통치 차원에서 언급된 이야기들이지만, 리치는 교묘하게 인간의 영혼과 귀신 존재의 실재성 차원으로 이야기를 해설해 나간다.

예를 들면, 리치의 해설은 이러하다. 옛날에 천자(天子)나 제후(諸侯)가 귀신에게 제사를 지내면서 마치 그들이 위에 있는 듯이, 좌우에 있는 듯이 공경했으니(敬之如在其上 如在其左右) 어찌 이런 일을 거짓으로 꾸며 속였겠는가? 또 세상을 떠난 이들을 섬기거나 기억하는 의례적(儀禮的) 행위는 종교적 차원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인간의 실존적 현실을 의미 있게 하지 않는가? 그러므로 리치의 주장은 세상을 떠난 선조들의 영혼이 후손들의 삶에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육체적 소멸을 넘어 산 자나 죽은 자들의 영혼은 완벽한 소통 혹은 친교의 차원은 아닐지라도 살아 있는 이들과 관계를 유지한다. 성리학의 대표적 인물인 주자(朱子)나 그 선배인 정호(程顥)도 귀신의 존재 유무에 대해 긍정적이었다. 다만 설명방식이 서사(西士)인 리치가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다. 주자학은 인간의 기(氣)가 사라지면, 혼(魂)은 하늘로 올라가고 백(魄)은 땅으로 돌아간다고 설명하기 때문이다. 이(理)나 기(氣)를 혼(魂)의 기운과 백(魄)의 기운으로 이해한 주자학과 달리, 리치는 이것들을 영(靈)의 실체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어쨌든, 귀신의 존재에 대해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없으면 없고, 있으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바보 같은 태도가 아니겠는가? 귀신은 색깔도 형체도 없는 존재인데 어찌 육신의 눈으로 보려고 하는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귀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면, 어리석지 아니한가? 누가 세속의 눈으로 추상적인 오상(五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부자유친(父子有親), 군신유의(君臣有義), 부부유별(夫婦有別), 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의 유교의 다섯 가지 덕목)을 볼 수 있겠는가? 또 누가 산 사람의 영혼을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있으며 바람을 볼 수 있겠는가?(誰能以俗眼見五常乎? 誰見生者之魂乎? 誰見風乎?) 눈으로 볼 수 없으니 확인할 수 없고, 눈의 확인은 이치로 따지는 것만 못한 게 분명하다.

어리석은 자는 자기 눈에 태양은 옹기바닥만할 뿐이며, 곧은 나무 막대기를 물속에 넣고 굽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치로 생각한다면, 태양의 크기는 세상보다 더욱 크고, 나무 막대기는 여전히 곧을 뿐이다. 인간의 이치(理致)는 감추어져 있는 것을 추리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꿰뚫어 알아야 한다. 그것은 마치 지붕 꼭대기에서 연기가 올라오는 것을 보면 집 안에 반드시 불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천지만물이 눈앞에 펼쳐 있는 것을 보면서 천지만물의 주재자(主宰者)를 생각할 수 있는 것과 같다. 그렇다고 귀신의 존재가 충분히 설명되었거나 증명되었는가?


박종구 신부(예수회·서강대 종교학과 학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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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0-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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