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
기획특집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대구대교구 100주년 특별기획 - 다시 읽는 드망즈 주교 일기] (49·끝) 연재를 마치며 - 드망즈 주교 일기 속 교회사 장면

오직 하느님만 믿고 따른 복음화 여정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주교님이 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1911년 4월 23일)

교구와 함께해온 인생이었다. 한국에 파견된 지 13년 만에 뮈텔 주교(당시 조선교구장)에게 축하인사를 건네받고 시작된 주교 직분. 대구교구의 설정과 동시에 남방교회의 역사를 시작하는 찰나이기도 했다. ‘드망즈 주교 일기’를 끝맺으며, 그의 생각과 말을 통해 보는 교회사 장면들을 담아본다.


 
드망즈 주교 서품식
1911년 6월 11일 주교 서품식을 마치고 서울 명동대성당을 나서고 있는 드망즈 주교.
이날 첫 교구장을 만나기 위해 대구 지역에서 상경한 신자들로 성당 밖은 인산인해였다고 전해진다.


■ 절실한 믿음으로 기도하는 할머니

“영호공소에서는 성사집전을 했다. 좋은 마을이다. 남편이 순교자였고, 한국에 신부가 있다는 것을 모른 채 40년 이상을 살아온 섬 출신의 할머니는 마을에서 몇 년 전 천주교 물건들을 보고 교회로 돌아왔다. 그녀는 다블뤼 주교로부터 견진성사를 받은 이후 처음 성사를 받았다고 한다.”

- 1913년 11월 18일

교구장의 임무를 다하기 위해 사목방문을 다니던 길에는 언제나 감동을 주는 한국인 신자들이 있었다. 드망즈 주교는 인상 깊은 신자들의 모습을 적어놓았는데, 영호공소(현 경남 합천군 삼가면)에서 만난 할머니의 이야기와 사진을 옮겨놓는다. 경상도와 전라도, 길 위에서 만난 양떼들에게는 목자의 위로를 건네고, 성경의 한 장면처럼 모여든 군중 속에서는 연설을 했다. 그 가운데는 외교인과 개신교인들도 섞여 있었다. 주교의 연설은 계속됐고 복음화의 여정은 이어졌다.


 
▲ 영호공소 방문 중 만난 한 할머니.
두 손을 모은 모습에서 절실한 신앙 의지를 엿볼 수 있다.
 


■ 1차 세계대전으로 선교사 징집

“유럽의 사태가 불길하다. 전쟁(1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것인가? 소집을 알리는 영사의 편지를 받았다. 나는 즉시 전보를 보내고 선교사들이 해야 할 일을 물었다. 동원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떠나야 한다는 회답을 받고, 제21호 회람을 작성해 발송하고 부주교를 불렀다.”

- 1914년 8월 4일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유럽은 혼란에 빠졌다. 해외에 파견된 선교사들은 모두 징집됐고, 그 명단 가운데는 드망즈 주교도 포함돼 있었다. 그는 일본 시모노세키에서 프랑스 정부가 제공한 아마존 호를 타고, 배 안에서 미사를 집전한다. 상하이, 홍콩까지 갔던 그에게 돌아온 것은 징집유예 통보. 한국으로 돌아오며 그는 “하느님의 뜻대로 이뤄지시기를” 이라고 말한다.

■ 일제강점기 종교계에 대한 압박

“주교 직책을 무시하고 선교사와 총독부 사이에서 일을 처리하려는 ‘포교규칙’ 문제로 서울의 총독, 뮈텔 주교와 서신 교환을 계속하고 있다. 그 적용이 시급해져 즉시 항의해야 한다.”

-1915년 10월 2일

일기에서는 일제강점기 아래 놓인 우리나라의 모습이 자세히 묘사돼 있다. 당시 종교계 또한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데 그 중심이 되는 것이 ‘포교규칙’이다. 선교에 대한 여러 가지 사항을 금지해놓은 규칙에는 ‘총독이 주교를 폐위시킬 권한’까지 포함돼 있다.

■ ‘대구교구 첫 사제’ 주재용 신부 서품

“서품식은 노래로, 미사는 독송미사로 거행됐다. 이 새 교구 ‘최초의 사제서품식’에 참석하기 위해 교구 전역에서 모여든 교우들은 대단한 무리를 이뤘다.”

- 1918년 2월 23일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1-04-03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5. 2

이사 26장 12절
저희가 한 모든 일도 당신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신 것입니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