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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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영성과 전통의 재발견] (1) 교회에 새 생명 불어넣은 "영성의 샘"

간추린 수도원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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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톨릭교회 2000년 역사 속에 흐르는 영성의 맥(脈)은 실로 장대하다.

 대표적인 것이 수도원 전통이다. 초세기 이집트 사막 은수자들의 고행과 금욕에서 발원한 수도원 영성은 찬란한 그리스도교 문화를 꽃피웠는가하면, 교회가 위기와 혼란에 처했을 때는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 넣어주었다.

 그 맥은 오늘날 교회 담장 너머 세속의 정신세계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과학물질문명의 풍요 속에서 정신적 공허를 느끼는 현대인들, 그리고 세속화와 영성의 빈곤에 시달리는 개신교가 가톨릭 수도원 전통을 다시 보기 시작한 게 그 예다.

 어디 그 뿐인가. 하느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에 대한 공경과 `모든 이에게 모든 것`(Omnibus Omnia)이 되기 위해 피 흘린 복음선교 정신도 가톨릭의 자랑스러운 영성이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와 함께 유럽의 성지를 순례(11월 14일∼24일)하며 가톨릭 영성과 전통의 맥을 캐들어간다.


 "진주 따는 사람이 옷을 벗고 물속에 뛰어들 듯이, 모든 것 벗어버린 수도승은 한평생 자기 안에서 그 진주-그리스도를 찾아 나선다. 그렇게 그분을 찾고 나면, 그분 외에는 세상 어떤 것도 구하지 않는다."(토리노의 이사악)


 
▲ 3세기 전후 이집트와 소아시아 지방에서 시작된 수도원 운동은 5세기경 서방으로 건너간 이래 가톨릭 영적 쇄신의 중추 역할을 해왔다.
사진은 터키 아나톨리아고원 카파도키아에 남아 있는 기암괴석의 성당과 수도원 터.
수도자들은 3세기부터 이 같은 고원과 사막에 은둔하며 하느님 뜻을 찾았다.
 
 
  상업영화 기획자 입장에서 보면, 2년 전 개봉된 다큐멘터리 영화 `위대한 침묵`은 망하려고 작정을 하고 만든 영화다. 적어도 1분에 한 번씩은 웃게 만들어주는 대사도 없고, 탄성을 자아내는 현란한 화면도 없다.

 이 다큐는 알프스 산기슭에 있는 카르투시오 봉쇄수도원의 일상을 담은 작품이다. 영상과 음향이라고 해봐야 수사들의 기나긴 침묵과 책장 넘기는 소리, 가난한 수사의 방에 잠시 머물다가는 햇살, 그리고 기도시간을 알리는 종소리뿐이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많은 관객이 이 정지한 듯한 시간과 미세한 움직임에 감동했다. 관객들은 저마다 수사들이 침묵 속에서 던지는 질문을 마음에 담아갖고 극장을 빠져나왔다. 그럼에도 수사들의 침묵과 고독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그들은 왜 스스로 창살 없는 감옥으로 걸어 들어간 것일까. 그들의 얼굴에서 피어나는 평온의 정체는 무엇인가.
 
 #주님을 더 충실히 따르고자

 `위대한 침묵` 속 수사들 모습은 수도생활의 원형에 가깝다.

 수도원 역사는 3세기를 전후해 이집트 나일강 상류지역 사막에서 나타난 은수자들의 삶에서 시작된다. 그들이 세상을 등지고 사막의 금욕과 은둔을 택한 이유는 오로지 한 가지, 복음을 더 충실히 따르고 싶은 열망 때문이었다. 세상은 너무 소란스러워서 하느님 뜻을 찾는 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홀로 오두막, 무너진 성채, 동굴 등지에서 기거하며 기도와 명상에 잠겼다.

 수도자를 뜻하는 라틴어 모나쿠스(monachus)가 `혼자`라는 의미이고, 수도원 건물을 지칭하는 라틴어 클라우스트움(claustrum)이 `단절된 장소`를 뜻하는 게 이런 이유에서다.

 이런 은둔생활은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등지로 빠르게 확산됐다. 은수자들 가운데 성 안토니오(251∼356)와 성 파코미오(290∼346)는 기억될만한 인물이다. 성 안토니오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고 기도와 노동으로 살아가는 이상적 수도생활의 토대를 만들어 `수도승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성 파코미오는 홀로 떨어져 살던 은수자들을 한 울타리로 불러 모아 공주(公住)생활의 첫 장을 열었다.

 이들의 이상은 사도행전 4장에 기록된 초기 예루살렘 공동체, 즉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영적으로 하나가 되는 공동체였다. 또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태 19,21)는 복음을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이상을 실현하려면 수도자들은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쳐야 했다. 또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따르려면 매일 참회하면서 고행을 해야 했다. 그래서 시리아 같은 지역에서는 수도승들이 쇠사슬에 묶여 지내거나 높은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서 생활하는 등 극단적 고행을 자처하기도 했다.
 
 #성 베네딕토, 서방교회 수도원의 주추

 동방교회의 은둔과 금욕의 수도생활 형태가 서방교회에 알려진 것은 4∼5세기인데, 그 중심에는 누르시아의 성 베네딕토(480∼547?)라는 이탈리아 사람이 있다. 그가 만든 수도규칙서는 서방교회 모든 수도규칙의 표준이 되었다. "서방교회 수도원 역사는 베네딕토 수도원 역사"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는 `유럽의 수호성인` 또는 `서방교회의 아버지`로 불린다.

 베네딕토 생애 당시 유럽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천하를 호령하던 로마제국이 서로마(라틴)제국과 동로마(비잔틴)제국으로 갈라진 데 이어 서로마제국은 476년 게르만족 침략으로 멸망했다. 그러자 제국 변방에 있던 이민족들이 이동해와 도처에서 약탈과 살육을 자행했다. 로마교회 역시 이민족들의 이단 교리와 친 비잔틴 세력 반발로 흔들렸다.

 이처럼 불안정하고 불신이 팽배했던 시기에 베네딕토는 수도자들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지 않고 한 곳에 머무는 정주(定住)생활의 수도회를 창설했다. 그는 특히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는 가르침으로 기도와 노동을 수도생활의 양축으로 삼았다. 이 가르침은 오늘날 수도회들에도 절대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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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1-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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