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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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영성과 전통의 재발견] (2) 기도하고 일하며 영원을 구하는 수도승들

독일 성 오틸리엔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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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라, 아들아. 스승의 계명을 경청하고 네 마음의 귀를 기울이며 어진 아버지의 훈시를 기꺼이 받아들여 보람있게 채움으로써, 불순종의 나태로 물러갔던 그분께 순종의 노고로 되돌아가거라."(「베네딕토 규칙」 머리말 1-2)


 
▲ 수도원의 새벽 시간전례(성무일도). 수도승들에게 기도와 성독(聖讀)은 수도생활의 전부나 다름 없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가 민망할 정도록 엄숙하고 경건하다.
 
 
 "땡그렁" "땡그렁"

 종소리에 눈을 떴다. 시계를 보니 새벽 5시다. 카메라를 챙겨 성당으로 향했다.

 성 오틸리엔수도원의 새벽은 고요하고 신비롭다. 목초지 벌판 한가운데 있는 숲을 에워싼 새벽안개와 명징(明澄)한 소슬바람 때문에 더 그렇게 와 닿는 것 같다.

 침침한 전등 불빛 아래서 시편을 노래하는 검은 수도복의 수도승들. 그들의 기도소리가 시차가 뒤죽박죽된 여행자의 몽롱한 정신을 깨운다.

 성 베네딕토는 기도(시간전례)를 `하느님의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무것도 하느님의 일보다 낫게 여기지 말라"고 가르쳤다. 이 세상에 하느님의 일보다 나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믿는 수도승들, 그들은 하느님을 찾는 사람들이 아니라 이미 찾은 사람들로 보일 따름이다. 세상의 소란은 하느님을 제쳐두고 다른 곳에서 더 나은 것을 찾아 헤매는 어리석음에서 비롯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스친다.

#한국에 베네딕토 영성 전파

 성 오틸리엔수도원은 독일 바이에른주 주도(州都) 뮌헨에서 차로 1시간 정도 서쪽으로 달려야 닿는다. `서방 수도회의 아버지` 성 베네딕토의 수도전통을 따르는 수도원이다. 10년 전까지 수도원에 물레방아가 있었을 만큼 독일 농촌의 목가적 분위기가 곳곳에 배 있다. 특히 100여 년 전 이곳 수사들이 한국에 건너가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을 세운 터라 한국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수도원 김나지움(기숙형 인문계 중고교) 교사인 블로머 마우로 수사는 "우리가 선교박물관에 있던 겸재 정선 화첩을 몇 년 전 한국에 반환했다. 나도 지난 3년간 두 번이나 한국에 다녀왔다"며 친근감을 표시했다.

 성 베네딕토회는 서방교회 수도원 역사의 중심에 있다. 성 베네딕토가 6세기에 저술한 수도 규칙서(Regula Benedicti)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대표 규칙서가 되어, 오늘날과 같은 수도생활 형태를 정착시키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 그의 규칙서를 빼고는 수도원 역사를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베네딕토 수도정신을 전해주는 일화 한 토막.

 베네딕토가 몬테카시노(이탈리아)로 자리를 옮겨 새 수도원을 짓고 있을 때, 마르티노라는 은수자가 근처 외딴 동굴 벽에 몸을 사슬로 묶고 고행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베네딕토가 달려가서 말했다.

 "만약 그대가 진실로 하느님의 종이라면 쇠사슬로 자신을 묶지 말고 그리스도로 묶으시오."(교황 그레고리오의 「대화집」에서)

 그리스도께 묶이는 삶, 이를 위해 수도승들은 일정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기도와 노동 속에서 하느님을 찾는다. 이리저리 옮겨다니지 않고 한 곳에 정주(定住)해야 생활의 중심이 잡히고, 이웃 형제가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련자들은 `정주 안에서 항구함`을 가장 먼저 서약한다.

 사람들은 수도 규칙서라고 하면 제약, 통제, 억압이라는 단어부터 떠올린다. 그릇된 편견이다. 고전(古傳)의 가치가 시대를 초월하는 호소력에 있듯이, 베네딕토 규칙서는 중세시대뿐 아니라 현대사회에도 변함없는 영적 울림을 준다. 중세시대에나 통할 법한 규칙이라면 왜 21세기 사람들이 1500년 전 영성을 찾겠는가.

 #겨자씨에서 자라난 서양문명

 한 예로 손으로 하는 노동을 중시하는 베네딕토회는 서방세계에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는 정신을 심어줬다. 중세시대 수도원은 경제생활 단위나 다름없었다. 또 지식과 문화의 창고였다. 실제로 수도승들은 농업ㆍ교육ㆍ예술 등 다방면에서 열매를 맺었다. 그 열매는 훗날 시민사회 형성의 힘이 됐다. 영국 역사학자 토인비는 이를 "겨자씨(베네딕토수도원)에서 서양문명이라는 큰 나무가 자랐다"는 말로 함축했다.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간과하고, 중세 수도원 하면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서 느껴지는 음습한 분위기부터 연상한다.

 마우로 수사는 `기도하며 일하라`는 수도원 모토에 대해 "우리의 노동에는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찬양의 의미가 포함된다"며 "하지만 일이 99 진척됐더라도 기도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리면 스승의 가르침대로 더 중요한 하느님의 일을 하러 미련 없이 일어선다"고 말했다.

 일중독에 빠져 사는 현대인들, 그리고 활동에 몰두한 나머지 일과 기도의 순서가 뒤바뀐 생활을 하는 종교인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말이다. 일 자체는 목적이 될 수 없다.


 
▲ 수도승이 초겨울 정취가 물씬 풍기는 수도원 경내를 산책하고 있다.
성 베네딕토회 수도승은 기도와 노동, 침묵 속에서 하느님을 찾는 구도자다.
 
 
 베네딕토 규칙에는 흥미로운 대목이 많다. 하다못해 수도원 문지기에까지 하느님을 만나는 길을 알려준다.

 "누가 문을 두드리거나 가난한 사람이 외치거든 즉시 `하느님 감사합니다`하거나 `축복하소서`하고 대답하고,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온갖 양순함과 사랑의 열정으로 재빠르게



가톨릭평화신문  2011-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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