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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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영성과 전통의 재발견] (3) 세상은 돌지만 십자가는 서 있다

프랑스 카르투시오회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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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에서 용기 있는 사나이들은 자신의 마음을 모아 열성을 다하여 성덕을 쌓고, 천국의 열매로 자신을 살찌워 간다네. 여기서 사람들은 맑고 밝은 눈을 뜨게 되어 사랑의 신랑과 하느님을 명백히 본다네."(카르투시오회 설립자 성 브루노가 친구 라돌프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 `세상은 돌지만 십자가는 서 있다.`
1957년까지 수사들이 생활한 옛 수도원(현 박물관) 전경.
 대문 기둥 지구본 위에 서 있는 철제 십자가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 고독의 깊이를 도무지 모르겠다. 그들이 1000년 세월을 지켜온 침묵의 무게를 가늠할 길이 없다.

 다큐멘터리 영화 `위대한 침묵`(감독 필립 그로닝)을 볼 때, 철학자 하이데거가 말한 "어두운 대지에 뿌리를 박고, 광활한 하늘에 자신을 열어둔 들길 옆 떡갈나무 같은 인간"이 바로 영화 속 카르투시오회 수도자들을 가리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이데거는 "인간은 그런 떡갈나무 같아야 영원한 생명력을 갖는다"고 했다. 뿌리를 드러낸 채 이리저리 바람에 흔들리며 살아가는 세인의 눈에 카르투시안들은 떡갈나무처럼 보였다.

#나이 50에 은수자가 된 브루노
 프랑스 남동부 그르노블에서 48㎞ 떨어진 알프스 산속 그랑드 샤르트뢰즈수도원 가는 길.

 버스는 산자락을 굽이굽이 돌다 맞은편에서 목재를 싣고 내려오는 트럭이 나타나면 옆으로 비껴 간신히 길을 내줬다. 알프스 산맥에서 내려오는 물은 협곡을 타고 거침없이 평야로 내달린다. 우리나라 지도에서 서울을 파리라고 치면 샤르트뢰즈는 경북 청송쯤에 있다.

 성 브루노(1032?∼1101)는 초로의 나이 50에 왜 이토록 고독한 길에 올랐을까. 1000년 전 이 길은 세상과의 단절이요, 폐쇄의 철문이었을 것이다. 덕망 높은 교육자였던 그는 랭스의 대주교 자리를 마다하고 완전한 고독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싶어 동료 6명과 샤르트뢰즈 전나무숲으로 들어갔다.

 그는 교황 그레고리오 7세의 개혁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한 성직자였다. 성직매매와 성직자들의 부패, 수도원 세속화를 비판하면서 쇄신을 부르짖다 신변 위협을 느껴 고향 쾰른(독일)으로 피신한 적도 있다.

 특히 수도원들은 클뤼니 개혁운동에 힘입어 본 모습을 찾아가는가 싶더니 다시 세상일에 관여하면서 부유해지고 비대해졌다. 브루노는 누군가 나서서 수도원 본래 이상을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대주교 수락 요청을 뿌리치고 철저한 은수자의 삶을 선택했을 것이다. 이 시기에 카르투시오회와 시토회 등 침묵과 은둔의 엄격한 수도회들이 잇따라 설립된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크지만 조용한` 그분 소리 들으려

 카르투시오회 모원(母院)인 샤르트뢰즈수도원은 협곡을 끼고 해발 1300m 중턱에 있다. 버스에서 내려 2㎞ 남짓한 전나무 숲길을 걷는다. 알프스의 맑은 태양빛에 흰색 맨살을 드러낸 수도원 뒤편 그랑 솜(2026m) 봉우리가 울긋불긋한 숲길과 절묘한 대비를 이룬다.


 하지만 수도원 초입에서 방문객을 맞이하는 건 `Silence Zone(침묵구역)`이라고 적힌 푯말이다. 하기는 인간이 신의 정체를 밝혀낸다면 그건 신이 아니듯, 누구나 문을 열고 들어가 수도자를 만날 수 있다면 그건 더 이상 봉쇄수도원이 아닐 게다. 유난히 육중해 보이는 나무 대문 옆에 작은 안내판이 붙어 있다.

 "여기에 사는 사람들은 여러분을 위해 하느님께 봉헌된 사람이기에 침묵을 존중해 주시기 바랍니다."

 성직수사와 평수사 33명이 이어가고 있는 1000년 정주(定住)의 침묵을 어찌 방해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고요한 기도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고독과 침잠(沈潛)을 스스로 선택한 사람들이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의 소리들은 작지만 시끄럽다. 그러나 하늘의 소리는 크지만 조용하다. 수도승들은 그 `크지만 조용한` 하늘의 소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가족과 세상을 떠나 고요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주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마르 4,9)는 말을 한 뒤 말씀을 이어갔다. 들으려면 들을 준비를 해야 한다. 수도자들은 그 소리를 듣기 위해 내면의 욕망마저 말끔히 비워냈다.

 다행히 수도원 아래에 있는 박물관에서 카르투시안들 삶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다. 1957년까지 평수사들이 생활했던 공간이다. 옛 수도원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세상은 돌지만, 십자가는 서 있다(Stands the Cross, still point of the turning world)"라는 카르투시안 모토다.

 하느님 천지창조 이래 인류가 축적해온 지식과 진리, 신학을 단 한 줄로 압축한 듯한 이 모토 앞에서 말문이 막힌다. 단 한 줄의 글이 우주 무게보다 더 육중하게 느껴진다.

 수도자들이 독방(cell) 생활을 하는 것도 인상적이다. 기도소리가 맴도는 듯한 수도자 독방에 들어섰다. 마침 알프스의 햇살이 책상과 무릎틀, 침대뿐인 가난한 방에 찾아와 잠시 머무는 시간이다. 창가에서 그 햇살을 벗삼아 마른 빵을 떼어먹던 영화 속 젊은 수사를 만날 것만 같다. 카르투시안들은 식사도 교도소 배식구처럼 생긴 작은 쪽문을 통해 공급받는다. 식사라고 해봐야 빵과 물, 푸성귀 반 접시 정도다. 같이 밥먹고, 같이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집단성 강한 한국인에게 외로운 독방 식사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독방 생활마저도 선택한 삶이다. 3, 4세기 이집트 사막의 영적 스승들은 은수(隱修)의 삶에 들어서는



가톨릭평화신문  2011-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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