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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건축을 말한다] 내가 뽑은 교회건축 - 프랑스 르 토르네 수도원

김광현(안드레아,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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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네스크의 대성당 건축이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수도회 건축이었다. 당시 클뤼니(Cluny) 수도회와 시토 수도회는 모두 프랑스 브르고뉴 지방에서 시작했다. 클뤼니 수도회는 문맹자에게 성경 내용을 알려 주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으며, 호화로운 장식과 빛나는 보석만이 하느님을 섬기는 데 옳다고 여겼다. 이 정신은 고딕 건축으로 이어졌다.

 이와 달리 시토 수도회 성 베르나르도는 "가난하게 살아야 할 당신들에게 성당 안에 있는 황금이 무엇이라는 말인가"하고 반박하면서, "우리는 성당 안이나 수도원 다른 장소에 조각이나 회화를 제작하는 것을 금한다. 그것을 보고 있는 사이에 종종 탁월한 묵상의 유용성과 종교적 계율을 쉽사리 잊어버리기 때문이다"고 시토 수도회 규칙을 정했다. 시토 수도회는 종을 3개로 한정했고, 제대 뒤를 둘러싸는 제실도 거부했다. 이렇게 시토회는 검소하고 자기반성을 촉구하며, 정확하고 완벽한 성당을 추구했다. 성당은 공간과 빛에서 비롯하며, 공간과 빛은 재료와 구조에서 만들어지는 것임을 직감적으로 이해하고 있었음에 틀림이 없다.

 12세기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 숲 속에 시토회 수도원이 세워졌다. 이 수도원은 로마네스크 최고 건축물인 르 토로네 수도원(Le Thoronet, 1160~1190)이다. 건축 형식은 엄격하고 계율에 근거하고 있으며, 모든 장식을 배제했다. 돌은 거칠지만 정밀하게 쌓여 있다. 저 무겁고 거친 돌로 만들어진 건축이 어떻게 이처럼 고요하고 치밀하며, 시각조차도 억제하게 만드는 영혼의 건축물로 어떻게 바뀔 수 있을까? 참으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성당이다.

 르 토로네 수도원은 천장이 높고 돌로 쌓은 볼트(vault)로 만들어진 회랑이 있다. 여기에서는 볼트에 빛이 가득 차 있다. 그리고 동시에 빛이 볼트의 형태를 띠고 있다. 물질인 돌과 빛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돌로 쌓은 볼트에서 빛이 생겨나고 빛에서 돌로 쌓은 볼트가 생겨나고 있다. 그야말로 이 성당 안에서는 물체에서 공간이 생겨나고, 공간에서 물체가 생겨난다.

 이 성당은 가톨릭 신자만을 위한 거룩한 성당일 뿐만 아니라, 몇 세기가 지난 지금과 미래에도 변함없는 거룩한 공간의 원형으로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 남아 있게 될 것이다. 그래서 건축가 존 포슨(John Pawson)도 이렇게 썼다. "이 수도원은 시각적 유혹을 없애면 어떻게 되는가를 보여주는 숭고한 예다. 재료 자체가 지닌 아름다움이 놀라울 정도로 명료하게 떠오른다(…) 빛도 완벽한 배경을 발견한다. 위대한 빛 조각이 내부에서 공간을 잘라낸다."

 루시엥 에르브(Lucien Herve)는 20세기 최대의 건축가 르 코르뷔제와 함께 르 토로네 수도원을 찍은 사진집을 내고, 제목을 「진리의 건축(Architecture of Truth)」이라 붙였다. 이 사진집은 르 토로네 수도원 사진 옆에 성경과 여러 성인의 말씀을 더해 마치 일종의 시간전례서(성무일도서)처럼 편집했다. 돌로 지어진 성당이 인간 정신에 얼마나 거룩함을 안겨 줬으면, 책 이름을 `진리의 건축`이라 붙이고 성무일도서처럼 편집했겠는가? 이 작은 로마네스크 수도원 성당은 물체와 빛이 나뉘기 이전의 모습으로 그리스도교 `진리`를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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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2-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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