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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건축을 말한다] 제2화 ⑴ 한국 성당건축 Ⅰ: 1960년대 이전

공사 시작은 명동성당, 준공은 약현성당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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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형적 고딕교회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서울 명동성당 전경.
 

 
▲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옥 교회건축물인 화산(현 나바위)성당 내부.
 

1784년 겨울,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돌아온 최초 영세자 이승훈이 도성 안 수표교 근처에 있던 이벽 집에서 세례를 행함으로써 우리나라 최초 천주교회가 세워졌다. 이후 신자들이 명례방 김범우 집에서 집회를 가졌다고 하니 처음에는 신앙공동체로서 교회만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1899년 교민조약에 의해 신앙의 자유를 확보했지만 성당을 짓기 위한 움직임은 그 이전에 시작됐다.

 1883년 도성 내 서양인 거주가 허락되면서 외국인의 토지 구입이 가능해지자, 천주교 측에서는 종현서당 주인으로 전교회장이던 김가밀로를 통해 종현 땅을 매입하기 시작했다. 명동성당 부지 구입은 1883년에 시작돼 프랑스와 수교가 이뤄진 다음해 매입이 완료됐다고 한다. 이어 정지작업이 시작됐으나 토지소유권 문제가 발생해 본 공사가 늦춰지는 사이에 주교관(1890년)이 먼저 건축됐다.

 그러나 최초 교회건축물이라는 영예는 명동성당이 아닌 중림동약현성당에 돌아갔다. 공사는 명동성당이 먼저 시작됐으나 토지소유권 분쟁과 재정적ㆍ기술적 어려움을 겪는 사이에 수렛골 공소였던 중림동약현성당이 1891년 명동본당에서 분리돼 서울에서 두 번째 본당이 됐고, 그해 10월 공사에 들어가 착공 1년 만인 1892년 준공됐다. 최초 교회건축물이 탄생한 것이다.

 두 성당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지어졌지만 규모에서는 큰 차이가 있다. 주교좌성당으로 계획된 명동성당은 길이 69m, 폭 28m, 높이 23m, 종탑 46m 규모에 전형적 고딕교회 건축양식으로 1898년 지어졌다. 이에 반해 길이 32m, 폭 12m, 종탑 22m인 중림동약현성당은 약식 고딕건축 양식으로 지어졌다. 두 교회 모두 중앙에 신자석을 두고 양편에 통로가 배치된 전형적 바실리카식 교회로, 이후 한국 교회건축의 모델이 됐다.

 그 중에서 명동성당은 주출입구 정면에 종탑이 있으며, 붉은 벽돌과 검은 벽돌이 구조요소와 입면요소로 구분돼 사용됐다. 뾰족 아치와 갤러리의 숨은 플라잉 버트레스, 그리고 신자석과 통로 상부 교차형 볼트는 고딕건축의 구조미학에 기초한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특히 대성전의 교차 볼트가 경쾌함으로 고층화된 고딕성당의 구조미학을 표현하고 있다면, 지하성당 교차 볼트의 육중함은 역학적 힘의 논리를 드러내는 구조미학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어, 명동성당을 찾는 이들이 반드시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다.

 이후 고산 되재성당(1894년), 인천 답동 옛 성당(1899년), 평양 관후리성당(1900년), 대구 계산동 옛 성당(1898년), 전북 화산(현 나바위)성당(1906년), 강원도 횡성 풍수원성당(1907년) 등이 지어졌다. 흥미로운 것은 대도시에서는 벽돌로 지어졌지만, 지방에서는 대부분 성당이 전통건축 형식으로 지어졌다는 점이다. 이는 재정 빈곤과 함께 서양식 건축을 지을 수 있는 기술과 전문가가 없기 때문이었다. 물론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전통사회 관념이 강한 탓에 전통건축 모습을 갖춘 교회가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리는 데도 기여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기록으로 전하는 계산동 옛 성당은 `가로 세로가 같은 그리스 십자가형 평면에 팔작 기와지붕으로 사방이 9척 3칸식으로 가로 세로가 모두 9척 9칸의 총 45칸이었으며, 단청까지 칠해져 있었다`고 한다. 이는 마치 르네상스 시기 중앙집중형 성당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대부분 한옥성당은 현존하는 화산성당처럼 신자석 방향으로 긴 장방형으로 지어졌다. 흥미로운 것은 남녀가 유별하던 시절에 화산성당처럼 신자석을 길게 둘로 나눠 남녀가 서로 보이지 않게 처리하거나, 익산에 한옥으로 지어진 두동교회처럼 `ㄱ`자형 평면에서 모퉁이에 제단을 모시고 양편으로 남녀가 갈라져 앉아 미사를 봉헌했다는 점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옥 교회건축물인 화산성당은 장방형 평면에 신자석이 높고 통로가 낮아, 높이 차이를 이용해 창을 설치함으로써 실내 깊숙이 빛이 들어올 수 있도록 중층 지붕으로 구성했다. 이는 중림동약현성당이나 명동성당과 같은 공간구성이라고 할 수 있다. 한옥성당은 비록 전통적 구법에 따라 지어졌지만, 교회 전례를 구현하는 공간구성을 만들어낸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전통건축은 넓은 면으로 진입하지만, 한옥교회에서는 측면을 주출입구로 사용하고 출입구 반대편에 제단을 둬 의식을 행하기에 적합한 축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공간변형은 유럽에서 로마 바실리카 진입축을 바꿔 장방형 바실리카식 교회를 만든 것에 비견된다. 화산성당은 1916년에 벽돌조 종각을 증축하면서 정면 모습이 바뀌었고, 측면에 있었던 퇴칸 마루가 회랑으로 바뀌었지만, 내부는 당시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내부는 신자석과 통로 구분이 없는 하나의 큰 공간으로 구성되는데, 주목할 만한 것은 중앙에 기둥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는 장방형 평면에서 축성을 갖는 데 방해가 되지만, 남녀가 유별한 한국사회 전통적 가치를 수용해 막을 치기 위함이었다.

 일제 강점기에도 교세가 확대되면서 전국적으로 많은 교회가 지어졌다. 지방 대도시인 인천과 전주 및 대구 등에는 벽돌로 교회가 지어졌지만, 중소도시에는 한옥과 내양식이 절충된 한ㆍ양 절충형 교회가 지어졌다. 벽돌조 교회로 인천 답동성당, 전주 전동성당, 대구 계산동성당이 있고, 한ㆍ양 절충형 성당으로는 안성 구포동성당이 있다. 이 중에서 인천 답동성당은 다른 성당과 달리 로마네스크에 기초한 절충형 역사주의 건축양식으로 지어졌다.

 한국 교회건축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분이 고의선(高宜善)이라는 한국 이름을 가진 코스트 신부다. 프랑스 몽따르노 출신인 고 신부는 프랑스와 수교 직전 입국한 이후 성당 건축



가톨릭평화신문  2012-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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