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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들의 성경주해] (38) 마태오 복음 ⑬ 가나안 부인의 상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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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태 15,21-22】

“예수님께서 그곳을 떠나 티로와 시돈 지방으로 물러가셨다. 그런데 그 고장에서 어떤 가나안 부인이 나와,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호되게 마귀가 들렸습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이방 민족이 다윗의 후손에게 애원하다

“가나안 여인의 소원이 이루지게 된 이 일의 참뜻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인의 말이 뜻하는 바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이스라엘에는 다른 민족 출신으로서 율법의 행실로 넘어온 개종자들이 분명 있었습니다. 예전의 생활을 뒤로 한 그들은 집을 떠난 사람들처럼 낯설고 위압적인 율법의 종교에 묶여 있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오늘날의 유대아 지방에 살고 있었습니다. 전쟁으로 옮겨 오게 되었거나 주변 마을들로 흩어져서 또는 포로가 되어 노예로 그 땅에 살게 된 이들은 가나안 사람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는 했지만 그곳이 고향이 아니었습니다. 그런즉 유대인들과 섞여 살던 그들은 다른 민족 출신이었습니다. 그때에 믿은 군중들 가운데 일부는 유대교 개종자들이었고, 이 가나안 부인도 개종자(즉, 다른 민족을 떠나 이웃한 민족의 무리로 들어온)가 되고자 자기가 살던 곳을 떠난 사람일 가능성이 큽니다.

여인은 자기 딸을 위해 애원했습니다. 이 딸은 모든 이방 민족을 나타내는 예형입니다. 여인은 율법을 통해 주님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분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릅니다. 율법에서 영원한 하늘 나라의 임금은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돋아난 햇순이며 다윗의 자손’(이사 11,1 참조)이라고 불리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주님이요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른 이 여인은 치유가 필요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아니라 딸(더러운 영들의 손아귀에 잡힌 이방 민족들)을 위해 도움을 청했습니다”(푸아티에의 힐라리우스 『마태오 복음 주해』 15,3).

그 고장에서

… 주께서는 애초에 왜 이 지방으로 가셨던 것일까요? 주님께서 음식 규정을 준수하는 일에서 사람들을 풀어 주신 것은 주님께서 당신의 길을 가시는 중에 마침내 다른 민족들에게 문을 열어 주신 것이기도 했습니다. 이 일은 음식 규정에 종식을 고하라는 명령을 베드로가 처음으로 받고서 코르넬리우스의 집으로 파견된, 이와 유사한 일을 예시합니다(사도 10,1-48 참조).

그런데 누가 만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다른 민족들에게 가는 길로 가지 마라’고 하셨으면서 왜 이 여인이 당신께 가까이 오는 것은 허락하신 것입니까?” 하고 묻는다면, 우리는 첫째, 그분은 그리스도이시므로 당신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지시를 따를 필요가 없는 분이심을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 우리는 예수님께서 그곳에 가신 것은 말씀을 선포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으셨으나 결국 숨어 계실 수가 없었다는 마르코 복음의 말에 담겨 있는 뜻도 바로 이것입니다. 주께서 그들에게 먼저 서둘러 가시지 않은 것은 당신께서 하셔야 했던 일들의 순서를 따른 것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분께서 당신께 다가오는 사람들을 쫓으셨다면, 그것은 인류에 대한 그분의 사랑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도망치려는 사람들도 쫓아가 잡아야 하는 바, 따라오려는 사람들을 피해서는 더더욱 안 되는 법입니다(요한 크리소스토무스 『마태오 복음 강해』 52,1).


노성기 신부·한국교부학연구회·광주가톨릭대학교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09-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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