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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이야기] (61) 건국

이스라엘 건국 … 또 다른 분쟁의 시작, 이익 따라 입장 바꾼 영국으로 인해, ‘중동의 화약고’로 변한 팔레스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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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제3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 감독상 등 7개 부문을 수상한 데이비드 린(David Lean) 감독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Lawrence of Arabia)는 상영시간이 4시간에 가까운 대작이다.

그 내용은 이렇다. 1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에 영국은 수에즈 운하를 둘러싸고 터키와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이에 영국은 정보국 소속 로렌스 요원을 팔레스타인으로 파견, 그곳 아랍인들의 힘을 빌려 터키를 공격한다. 로렌스는 기적적으로 전쟁에 이겼고, 아랍 민족으로부터 ‘아라비아의 로렌스’라는 영웅적 칭호를 받게 된다.

이렇게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은 영국을 위해, 형제나 다름없는 터키에 칼을 겨눴다. 이유가 있었다. 영국이 자신들을 도와주면 팔레스타인에 독립 국가를 세울 수 있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1차 세계대전 중인 1915년 10월, 이집트 주재 영국 고등판무관 맥마흔(Henr Macmahon)은 이런 약속을 한다.

“전쟁이 끝나면 아랍 지역의 독립(팔레스타인 지역의 아랍국가 건설 포함)을 돕겠다.”

이른바 맥마흔 선언(McMahon Declaration)이다. 딱 한번 한 약속이 아니다. 약속은 이후 10여 차례 이어진 왕복 서한을 통해 거듭 확인됐다. 영국이 이러한 약속을 한 이유는 간단했다. 영국은 전쟁의 승리를 위해 아랍인들의 힘을 빌릴 필요가 있었다. 결국 아랍인들은 이 약속을 믿고 영국을 위해 싸웠다. 영국이 전쟁에만 이긴다면 자신들은 소원하던 나라를 세울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그런데 영국은 거짓말쟁이였다. 아랍인들은 영국으로부터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철저히 영국에게 속았다. 영국은 신사의 나라가 아니었다. 비신사적인 나라였다.

1900년대 초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다. 영토만 3700만㎢에 달했다. 이는 당시 세계 육지 면적의 1/4에 해당하는 수치다. 그 큰 나라가 아랍 민족과 유대인들을 갖고 논다. 아랍인들과 했던 그 약속을 똑같이 유대인들에게도 한다.

1917년 11월, 당시 외무장관이었던 벨푸어(Arthur James Balfour, 1848~1930)가 영국내 유대인 명문가였던 로스 차일드 경(Lionel Walter Rothschild, 1868~1937)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보낸다.

“팔레스타인에 유대 민족의 정착지를 마련할 것을 호의적으로 숙고하며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이른바 벨푸어 선언(Balfour Declaration)이다. 벨푸어 선언이 나온 배경은 간단하다. 영국은 유대인들의 돈과 기술이 필요했다.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의 막강한 자금력은 대부분 유대인들의 주머니에서 나왔다. 유대인들을 무시할 수 없었다. 포탄 제조에 들어가는 아세톤의 대량생산 기술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유대인 과학자 하임 바이츠만(Chaim Azriel Weizmann, 1874~1952)이었다.

1925년경 미국내 유대인 수는 450만명으로 추산된다는 기록이 있다. 이들은 부유했다. 당연히 이들은 미국을 움직이는 실질적 힘이었다. 1930년대 말 뉴욕시내 대학 재학생 중 50가 유대인이었다. 또 미국 전체 대학생의 9가 유대인이었다. 이들은 대학을 졸업한 이후 정계와 법조계로 진출했고, 미국 사회의 주류가 된다. 이들은 스스로 유대인에게 유리한 법 체제를 만드는 등, 정치 경제 사회를 앞에서 이끌었다. 지금도 전 미국 대학 교수 중 30가 유대인이다.

발명과 과학 분야도 예외가 아니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은 물론이고 결핵 퇴치의 아버지 셀만 왁스만(Selman Abraham Waksman, 1888~1973)도 유대인이다. 특히 유대인 에디슨(Thomas Alva Edison, 1847~1931)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는 암흑 속에서 살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문화 부문도 예외가 아니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과 라디오 텔레비전 영화 등 문화계도 대부분 유대인이 장악했다. 유니버셜, 20세기 폭스, 파라마운트, 워너 브러더스, 콜롬비아 등 유수 영화사는 모두 유대인이 설립하거나 소유하고 있었다.

‘벤허’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을 제작, 한때 세계 최대의 영화사로 불렸던 MGM사(‘어흥’하는 사자로고로 유명하다)도 1924년 유대인인 새뮤얼 골드윈(Samuel Goldwyn, 1882~1974)과 루이스 메이어(Louis B. Mayer)가 설립했다. 문화를 장악했다는 것은 유대인의 이해와 관심이 일반 대중에게 그대로 이식되는 것을 의미한다.

여담이지만 미국의 전설적 코미디언 찰리 채플린(Charles Spencer Chaplin, 1889~1977)과 밥 호프(Bob Hope, 1903~ 2003), 그리고 천재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Allan Spielberg, 1946~)도 유대인이다.

턱 아래의 움푹 파인 매력으로 1960년대 전 세계 여심을 사로잡았던 영화배우 커크 더글러스(Issur Danielovitch Demsky, 1916~)와 ‘원초적 본능’에 출연한 그의 아들 마이클 더글러스(Michael Kirk Douglas, 1944~)도 유대인이며, 해리슨 포드(Harrison Ford, 1942~), 골디 혼(Goldie Hawn, 1945~), 더스틴 호프만(Dustin Lee Hoffman,1937~), 숀 펜(Sean Justin Penn, 1960~), 스티븐 시걸(Steven Seagal, 1951~), 메릴 스트립(Mary Louise Streep, 1949~)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영화인들이 모두 유대인이다. 우리나라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유대인을 꼽으라면 한국 전쟁 당시 UN군 총사령관으로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했던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1880~1964) 장군을 들 수 있다.

방송과 언론 부분을 봐도 유대인 일색이다. CNN과 ABC, CBS의 창업주가 유대인이고 지배 주주도, 그리고 현재 경영인도 유대인이다. 또 워싱턴 포스트(Washington Post)와 뉴스위크(Newsweek)의 발행인 캐서린 그레이엄(Katharine Graham, 1917~2001)과 뉴욕 타임스의 아서 슐츠버그(Arthur Sulzberger) 사장이 유대인인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여담이 길어졌다. 어쨌든, 3문장 125단어로 이뤄진 벨푸어 선언이 남긴 후속 파장은 컸다. 유럽 곳곳에서 박해를 받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의 가슴에는 팔레스타인 지역에 자신들의 나라를 세울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가득했다. 특히 1904년부터 러시아에서 발생한 대학살은 유대인들의 팔레스타인 이주를 가속화 했다. 벨푸어 선언 당시 8만~10만명에 불과하던 팔레스타인 지역 유대인 수가 2차 세계대전 직후에는 50만명으



가톨릭신문  2010-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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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얼굴을 당신 종 위에 비추시고 당신 자애로 저를 구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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