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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신춘문예] 시 당선작 - 은빛 보행차

오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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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앉고 싶을 때 앉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만은
 저 노인은 서고 싶을 때 설 수 있는 날들이 많지 않다
 풀썩, 직립의 보행을 주저앉히는 것은 아득한 역진화의 기억이다
 노인의 외출과 동행하는 은빛 보행차,
 생의 마지막 공궤를 받들 듯
 의자가 달린 보행기를 모시고 간다
 비어있는 의자에 경적과 깜빡거리는 푸른 보행시간이 앉아 있다
 걸음의 거리가 지리멸렬할수록
 보행기가 굴리는 바퀴의 공회전이 많아진다
 의자는 다리를 받치는 부속물
 수시로 찾아오는 퇴행의 증세들이다
 그럴 때마다 휘청거리는 걸음과 날카로운 통증을 모셔 들인다
 
 가까운 거리를 몇 겹 덧대면 보이는 먼 곳
 언제부터인가 가야 할 길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골목 어느 한 귀퉁이가 한 생처럼 휘어져 있고
 처마 밑 그늘에 햇살 걸음도 잠시 쉬어 간다
 앉을 수 있는 날들은 다 서서 걸어왔거나 걸어간 후에 있다
 이제 마지막 의자에 통증과 나란히 앉아 있다
 두 다리 위에 아이를 올려놓듯
 의자를 묘지로 삼고 싶다는 듯 잔뜩 웅크리고 있다
 
 노인이 다시 일어서고
 남아 있는 길의 거리를 경배하듯 저 굽어진 몸으로 휘어진 골목을
 돈다
 네 개의 바퀴와 굽은 허리 하나
 더 이상 수리할 곳 없는 오후의 한때가
 은빛 바퀴를 굴리며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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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3-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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