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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신춘문예] 심사평 - 시 (정호승, 이승하)

사물에 대한 관찰력, 묘사 돋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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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호승(왼쪽) 이승하 시인.
 

   시를 쓰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테크닉이 아니라 시심이다. 마음의 바탕이 사물의 본질을 추구하는 데 있지 않으면, 인생의 희로애락과 인간 생로병사의 비의를 탐색하는 데 있지 않으면, 그 시인은 시를 쓰는 기술자이지 시인이 아닌 것이다.

 평화신문에 투고한다고 해서 반드시 신자일 필요는 없다. 또한 주제가 신앙심이나 영성이어야만 하지도 않고, 성경에서 모티브를 가져와야만 하지도 않다. 우선 좋은 시여야 한다. 그리고 그 시가 좋으려면 진실한 마음(흔히 `진정성`이라 한다)으로 써야 한다. 바로 그런 점에서 우리는 오정순의 `은빛 보행차`를 당선작으로 뽑기로 했다.

 지팡이를 대신해 노인의 보행을 도와주는 유모차 비슷한 것이 있다. 이 시는 바로 그 보행차가 시의 초점이 된다. 몸이 불편한 노인에 대한 과도한 동정심이나 부자연스런 행동에 대한 과장된 표현 대신 사물에 대한 꼼꼼한 관찰과 세심한 기록이 이 시의 덕목이다.

 그런데 사물에 대한 관찰기록 속에는 한 존재의 말년이 참으로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보행차는 은빛을 띠고 있고, 그 빛나는 사물이 바로 노인이다. `햇살 걸음`의 발견도 놀랍지만 `네 개의 바퀴와 굽은 허리 하나`가, `더 이상 수리할 곳 없는 오후의 한때`와 함께 은빛 바퀴를 굴리며 가고 있는 광경에 대한 치밀한 묘사는 미상불, 눈부시다.

 `피에타`(김형미)는 병실에서 늙어버린 어머니와의 나날을 눈물겹도록 아름답게 수놓은 작품인데 받쳐주는 시들이 약했다. `책의 장례`(김은호)는 전반부의 견고함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다락방에서 본 풍경`(정순)은 추억담을 들려주는 입담이 여간 활달하지 않은데, 그 이야기를 하나의 주제의식으로 승화되지 못하고 있었다. `압록 매운탕`(조송이)은 참 좋은 소재인데 소품에 가까워 좀 더 의욕을 갖고 퇴고했으면 한다.

 "백부가 인절미 담긴 칠기를 던졌다 학이 날던 다완도 함께 날아갔다"로 시작되는 시와 "누군가 걷어내는 걸 잊어버린 물그림자"로 시작되는 시를 쓴 두 응모자는 기성시인임이 심사과정에서 밝혀졌다. 전자는 오랫동안 활동하지 않았다 하고, 후자는 유명하지 않은 출판사를 통해 등단한 뒤 시집을 2권 냈다고 했다. 이런 분이 구태여 신춘문예를 다시 두드릴 필요가 있을까? 공자가 시를 `사무사`(思無邪)라고 한 이유를 가슴에 새겼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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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3-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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