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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방송·평화신문 신앙체험수기 가작 어떤 부르심<2>

이진아 율리안나(서울 미아동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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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에서 오신 분들과 우리는 중환자실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아빠는 대세를 받게 됐습니다. ‘요셉’이라는 세례명과 함께.

그때 어떤 과정으로 이뤄졌는지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습니다. 사실 저는 상황을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슨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빠를 위한 거라니까 함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요셉 형제님이라고 아빠를 칭하며 짤막한 기도를 한 뒤 아빠 손에 묵주를 쥐여줬습니다. 낯설 정도로 차가워진 손에 말입니다.

그리고 하루도 지나지 않아 우리는 아빠를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우리가 잡은 손이 풀어질 것이라고는 생각해본 적도 없었는데…. 우리의 믿음이라는 건 너무 단숨에 무너져내리고 말았습니다. 거짓말 같은 밤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 슬픔만 감당하고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죽음이었기에 준비해야 할 것도, 챙겨야 할 것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먼저 장례식장을 알아봐야 했습니다. 당연히 병원에 안치하기로 했는데 남동생이 반대했습니다. 너무 정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평소에 차분하고 조용했던 아빠의 성향과 맞게 조용히 아빠를 보내주고 싶다면서. 엄마와 저도 동의했습니다.

엄마는 대모님께 도움을 청했고 덕분에 성당에서 운영하는 장례식장을 구했습니다. 우리는 병원을 정리하고 그곳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오랜 만에 성당 안으로 들어가 본 거지만 입구에 있는 성모님조차 제 눈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조차 숨이 차오를 정도로 버거웠기 때문입니다.

성당에서의 장례는 차분했습니다. 그러나 그리 조용하지만은 않았습니다. 하루 종일 이루어진 연도 때문이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저희와 대모님 본당 등 다섯 군데의 성당 연령회에서 왔다고 합니다. 슬픔을 감당하랴, 손님 맞이하랴, 기도 함께하랴, 처음에는 그 기도들이 저를 더 지치게 만드는 것 같았습니다. 장지까지 갈 때도, 돌아올 때도 기도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점점 저는 기도를 듣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그것이 아빠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빠를 위해 무언가를 해 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사라진 것입니다. 지금껏 저뿐 아니라 우리 가족은 늘 아빠를 위해 살았는데 말입니다. 먹을 것부터 입을 것까지 모두 다…. 그렇게 아빠를 위해 했던 일들을 생각하며 쏘아댔던 내 생각의 화살들이 아빠를 원망하는 화살로 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덩그러니 우리만 두고 가 버릴 수가 있는지….’ ‘한마디 말조차 없이, 야속하다 못해 야박하게….’

수없이 질문들 던져도 대답은 들을 수가 없었고 저 혼자도 답을 유추할 수 없었습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우리 가족은 한날 죽었으면 좋겠다고, 죽어도 함께 있을 거라고 말하기도 했었는데…. 제 생을 부모님에게 나눌 수 있다면 기꺼이 그리하고 싶었는데…….

집으로 돌아오고 가족은 모두 각자의 방으로 말없이 들어갔습니다. 언제나 하나라고 했던 가족은 아빠를 시작으로 분산되기 시작했습니다. 한집에 있었지만 따로 떨어져 살게 된 것입니다. 서로의 공간 안에 갇혀서. 그러기에 서로를 아는 척할 것도, 모른 척할 것도 없게 됐습니다.

저는 환한 곳이 싫어졌습니다. 아빠를 원망하던 화살이 점점 나를 향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빠에게 투정을 부렸던 내 모습, 아빠를 제대로 부축하지 못해 주저앉게 했던 내 모습 등. 왜 나는 아빠에게 그 정도밖에 할 수가 없었을까? 하는 자책을 하며.

‘아빠한테 어떻게 했는데 나를 버려’는 ‘그것밖에 못 했기 때문이야, 네가’로 변했습니다. 지금 다시 기회를 준다면 전보다는 낫지 않을까? 하는 후회도 하며. 이런 생각들을 하며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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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4-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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