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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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당선작]소설- 퀼트탑

글/ 홍영숙, 삽화/김복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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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꼭지점이 희미하게 보인다. 정삼각형의 두꺼운 종이본을 다시 천 위에 올려놓고 모서리를 맞춘다. 한 변이 십 센티미터인 첫 번째 조각의 꼭지점이 머물고 있는 자리는 활짝 핀 빨간 장미 꽃잎이다. 연보라색 바탕에 빨갛고 노란 장미가 사방으로 이어진 무명천은 무늬 때문인지 재단선이 선명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한손으로 본을 누르면서 모서리 부분에 샤프연필을 대고 힘을 준다. 순간 도톰한 면직물의 감촉이 뾰족한 연필심을 타고 올라왔다 사라진다. 노란 장미 삼각 하나와 연보라색 삼각 두 개를 더 그린 다음 종이본을 상자에 넣는다. 상자에는 삼각과 사각 마름모 같은 본이 가득 들어 있다. 바느질 순서대로 조각에 번호를 붙인 후 천 밑에 받쳤던 사포를 빼내고 시접선을 따라 가위를 놀린다. 가위 끝에서 잘려 나온 삼각조각이 바람결에 꽃잎이 떨어지듯 마루 위로 흘러내린다. 조각을 모아서 가지런히 포개놓은 뒤 시침핀을 찾아든다. 겉을 마주 댄 일번 조각과 이번 조각의 모서리에 못을 박듯 시침핀을 꽂는다. 겹쳐진 조각의 가장자리도 핀으로 땀을 떠서 고정시킨다. 벌써 여섯 시다. 아이가 일어나기 전에 블록을 완성하려면 서둘러야 한다. 급한 마음에 시침은 생략하고 곧바로 연보라색 패치워크 실을 찾아든다. 내가 쓰는 십이 호 바늘은 길이가 짧고 바늘귀가 작다. 초보 때는 구 호를 썼다.

 장딴지와 마주 닿은 허벅지에 땀이 배어 끈적거린다. 수건으로 땀을 닦은 다음 다시 바늘을 집어 드는데 등허리에 따끔한 통증이 느껴진다. 동시에 가벼운 한기가 지나가는 것도 같다. 개미다. 반사적으로 손이 등으로 향한다. 나는 아차 싶어 손을 내린 뒤 안방으로 들어가 티셔츠와 브래지어를 벗고 등에 확대경을 비춘다. 등허리는 물린 자국만 벌겋게 남아 있을 뿐 개미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눈꺼풀에 힘을 주고 홀랑 뒤집어 놓은 티셔츠를 이 잡듯 샅샅이 훑는다. 티셔츠에도 개미는 없다. 부릅뜬 눈망울만 시큰거린다. 잠이 부족한 탓이다. 밤색 몸판에 퀼팅 솜을 누비느라 새벽 한 시에 잠들었는데 눈을 뜨니 다섯 시였다. 상처에 소독약을 바르고 새 티셔츠를 꺼내 입는다. 다시 거실로 나온 나는 양손바닥을 마주대고 여러 번 비빈 다음 감은 눈 위에 갖다 댄다. 손바닥의 따스한 기운이 눈꺼풀로 옮겨온다. 눈을 감은 채 목도 뒤로 젖히고 한 바퀴 돌린다. 우두둑 뼈마디가 제자리에 맞춰지는 소리가 들린다. 개미에게 물린 등허리가 계속 근지럽고 스멀거려서 손톱으로 박박 긁는다. 손가락 끝에 피가 묻어난다. 근지럽던 등허리가 화끈거린다.

 느릿느릿 들어 올리는 눈꺼풀 밑으로 환한 빛이 스며든다. 창문을 넘어온 햇살이 때 묻은 벽지 위를 헤집고 있다. 눈길이 창문 오른쪽 벽에 걸려 있는 가족사진에서 멈춘다. 가족사진은 네평 남짓한 거실 벽을 다 차지하다시피 걸려 있다. 삼 년 전 아이가 초등학교에 이름을 올리던 해 찍은 사진이다. 나는 남편보다 더 나가는 몸무게를 감추기 위해 몸을 옆으로 살짝 돌려서 두드러진 배를 아이의 어깨 너머로 감추고 있다. 크게 마음먹고 사 입은 자주색 투피스가 몸에 붙지 않아 어색해 보인다. 지금 그 투피스는 허리가 커서 입지 못하고 장롱 속만 채우고 있다. 남편은 회색 양복에 파르스름한 넥타이를 맸다. 양복을 불편해 하던 평소와 달리 넥타이도 비뚤어지지 않게 잘 맨 걸 보면 어지간히 정성을 다한 차림새다. 새신랑 때 보다 더 멋스러워 보인다. 그해 남편은 공장에서 헤어날 새가 없이 바빴다. 그가 가공한 피브이시 원단은 색상이 선명하고 세탁에 강해 외국 바이어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쉬지 않고 기계를 돌리는데도 물량을 대기가 어려웠다. 나는 그가 짧은 영어 실력으로 바이어의 주문을 받는 것이 신통했다. 이런 것이 사업하는 재미지. 남편은 주문량을 적으며 신명이 나는 듯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남편과 나는 아이의 어깨 위에 한 손씩을 얹고 서로 십오 도쯤 고개를 기울인 채 앞을 보고 있다. 아이는 셔터가 눌러지기 전 사진사가 웃기기라도 했는지 환한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 있고 남편과 나도 미소를 띠고 있다. 아이의 그 웃음이 좋았던 것일까. 남편은 내가 조금 더 잘 나온 다른 사진을 제쳐두고 그 사진을 벽에 걸었다.

 사진을 찍은 날은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식 날이었다. 친애하는 학부모 여러분 하면서 교장선생님이 인사말을 시작했을 때 나는 입가에 번지는 웃음을 억지로 참느라 애를 썼다. 어린이는 나라의 보배라는 말에 이르러서는 가슴 한쪽이 뭉클해지며 눈꼬리에 눈물방울이 맺혔다. 나는 누군가 내 꼴을 보고 보배를 품안에서 내놓기 싫어하는 어미로 오해할까 봐 얼른 눈가를 닦았다. 말없이 서 있는 남편의 눈가에도 물기가 반짝였다. 입학식이 끝난 후 남편은 입학식 기념사진을 찍자며 사진관으로 차를 몰았다. 그는 성능이 좋은 카메라를 가지고 있었다. 아이의 유치원 졸업식을 앞두고 주문한 카메라였다. 졸업식에서 카메라는 제 기능을 다하지 못했다. 남편이 찍은 한 통의 필름 중 구도가 제대로 잡힌 사진은 두장뿐이었다. 그는 그때의 아쉬움을 만회하려는 듯 사진사의 지시대로 김치를 따라 하며 미소를 지었다.

깊은 한숨을 토해내며 바늘을 든다. 홈질을 할 때는 일센티미터 안에 세땀 정도가 보기 좋은데 자꾸 바늘이 빗나간다. 가슴도 돌이 얹힌 것처럼 답답하고 바늘땀을 뜰 때마다 움직이는 어깨의 근육도 무겁기만 하다. 삼각블록은 삼각조각 하나를 중심에 놓고 그 조각의 각 변에 삼각조각을 하나씩 이으면 된다. 부분적으로는 네개의 삼각이지만 그것이 합쳐진 패턴의 모양은 하나의 큰 삼각이다. 아얏! 빗나간 바늘이 엄지손가락 끝을 찌른다. 제법 깊이 들어갔는지 바늘이 들어갔다 나온 자리에서 피가 뚝뚝 방울져 흐른다. 검붉은 피다. 나는 얼른 바늘을 내려놓고 손가락을 힘껏 눌러 피를 뽑는다. 피는 점점 선홍색으로 바뀐다. 손끝은 아린데 검붉은 피가 나오고 나니 속은 좀 시원해진 것 같다. 체기가 있었던가 보다. 엄지손가락에 일회용 밴드를 감는다. 꼭지점이 자꾸 어긋난다. 블록은 어느 한 변이라도 재단선에서 벗어나면 서로 길이가 달라져서 중심에 있는 삼각이 정삼각형이 안 된다. 오늘따라 바느질이 수월치 않다. 이번 손가방은 주문을 받을 때 일주일의 여유를 뒀는데도 금방 나흘이 지나버렸다. 들고나는 날은 그렇다 쳐도 원장이 협회에 보낼 샘플을 갑자기 부탁해 오는 바람에 이틀을 더 날려버린 것이다. 마지막 조각으로 가운데 들어갈 삼각조각의 세번째 변을 잇는데 자명종시계가 일곱 시를 알린다. 보통날 내가 일어나는 시간이다. 아이는 삼십분이 더 지나야 일어난다.

블록을 대충 마무리 짓고 아이를 깨우러 아이방으로 들어간다. 남편이 떠난 후 나는 아이에게 엄마방에서 같이 잘까 물어봤지만 아이는 아니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이는 런닝셔츠와 팬티만 입고 이불도 차낸 채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옆으로 누워서 어깨를 움츠린 모습이 남편의 자는 자세와 닮았다. 나는 아이의 몸을 이리저리 살펴본다. 다행스럽게도 개미가 문 자국이 없다. 이름을 부르며 몇 차례 어깨를 두드리자 눈을 비비며 일어나 앉아 하품을 한다. 아이는 남편처럼 피곤해 한다. 잠 좀 실컷 자봤으면 좋겠어. 남편은 아침마다 뇌까리던 그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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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6-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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