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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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신춘문예] 동극 당선작] 미운 우리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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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삽화 ▲ 당선자 이은보라씨 ▲ 심사위원 고성주, 손세희
 

글=이은보라/ 삽화 박은경


등장인물
①정꽃잎 (여/7)
②정풀잎 (남/5)
③엄마

무대
눈 오는 크리스마스이브
장례식장, 그리고 교회


1.
하얀 화환이 커다랗게 서 있는 무대.
중앙에 환하게 웃고 있는 아빠의 흑백 사진이 놓여 있고,
하얀 한복을 입은 엄마는 넋이 나간 듯 아빠의 사진만 보고 있다.
주변에 검은 옷을 입은 조문객들, 둘러 앉아 있다.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 앉은 꽃잎, 풀잎 남매.
귀마개에 털모자, 장갑까지 하고 있는 풀잎이.


풀잎 : (하품한다) 누나! 나가자. 나 재미없어.

꽃잎 : 가만히 있어.

풀잎 : 하루 종일 여기 있었잖아. (꽃잎의 옷자락을 흔들며) 우리 나가자. 응? 나 답답하단 말이야.

꽃잎 : 가만히 좀 있으래도!

풀잎 : (벌떡 일어나며) 이씨! 내가 무슨 신호등이야? 다른 애들은 눈싸움도 하고 눈사람도 만드는데 나만 왜 가만히 있어?

꽃잎 : 오늘은 안 돼!

풀잎 : 어제 아빠가 그랬잖아. 내일은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이니까 파티도 하신다고. 나도 맛있는 거 먹고 눈사람도 만들고 선물도 받고 싶단 말이야!


갑자기 엄마에게 다가서는 풀잎이.


풀잎 : (갑자기 엄마에게 다가서며) 오늘 밤에 아빠 오시지?

엄마 : (조용히 꽃잎이를 안아준다)

풀잎 : 아빠 오시면 크리스마스 파티하러 가는 거지?

엄마 : 풀잎아.

꽃잎 : (엄마 품에서 풀잎이를 떼어내며) 너 바보야? 아빠는 이제 못 오셔! 절대, 절대 안 오신 단 말이야!

풀잎 : 누나 미워! 아빤 항상 나랑 한 약속 꼭 지켰어! 예수님 만나서 크리스마스 선물이랑 케이크 받아서 오신 댔단 말이야! 근데 왜 안 오셔! 왜! 왜!

엄마 : (꽃잎이와 풀잎이를 꼭 안아준다) 아빤 이제 예수님 곁에 계시기로 했단다, 하늘나라에서.

꽃잎 : 예수님은 왜 아빠만 데려가셨는데? 우리 아빤데! 왜!

엄마 : 꽃잎아!

꽃잎 : (엄마 품을 밀쳐내며) 예수님 미워! (달려 나간다)

엄마 : 꽃잎아! 꽃잎아!

풀잎 : (따라 나간다) 누나!



아이들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는 엄마.
암전.

2.
저 멀리 크리스마스 전구가 가득 켜진 교회가 보이고, 캐럴이 흐른다.
멍하니 쭈그리고 앉아 있는 꽃잎이, 추워 보인다.


풀잎 : 아까 누나가 한 말, 사실이야?

꽃잎 : (덜덜 떨며) 그래.

풀잎 : 난 누나 말 안 믿어. 누나는 만날 나한테 거짓말만 하잖아.

꽃잎 : 마음대로 생각해라.

풀잎 : 누나 추워?

꽃잎 : 아니.

풀잎 : (귀마개를 벗으며) 그럼 이거 할래?

꽃잎 : 너나 많이 해!

풀잎 : (귀마개를 씌워주며) 난 털모자 있잖아. (미소 짓는다) 누나, 누나! 이거 봐!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두 개의 눈사람을 발견한다)

꽃잎 : 눈사람이잖아.

풀잎 : 제일 큰 건 우리 아빠, 이건 우리 엄마 같다. 그치? (자기와 누나를 가리키며) 그리고 누나랑 나.  

꽃잎 : (큰 눈사람을 발로 찬다) 아빤 이제 우리 가족 아니야!

풀잎 : 왜 아니야, 오늘은 예수님 만나러 가셨으니까, 내일은 진짜 오실거야.

꽃잎 : (벌떡 일어난다) 아빠 이제 영영 안 오셔! 생일에도 안 오실 거고, 학예회도 안 오시고, 동물원도 같이 못 간다고!  (눈사람을 발로 찬다) 이런 거 만들어도 아빤 보지도 못할 거라고!

풀잎 : (운다) 으앙, 누나 미워!

꽃잎 : 왜 내가 미워? 우리 아빠 데려간 건 예수님인데!

풀잎 : 아니야,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돌봐주신 댔어!

꽃잎 : 거짓말이야!

풀잎 : 누나, 나빠! 예수님께서 우리 아빠도 돌봐주시고! 우리도 다 돌봐주시는 데! 누나가 예수님을 미워하니까 아빠가 못 오시는 거야!



엉엉 우는 풀잎이와 꽃잎이.
암전.


3.
크리스마스 이브 파티가 모두 끝난 교회 안.
풀잎이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 앞에 선다.
들어설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 꽃잎이.
풀잎이, 꽃잎이를 잡아끈다.


풀잎 :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 예수님. 우리 누나가 할 말이 있대요. (꽃잎이에게 눈치를 준다)

꽃잎 : 뭘?

풀잎 : 얼른!

꽃잎 : 할 말 없어.

풀잎 : 예수님, 우리 아빠 잘 있어요? 눈사람 아빠를 만났어요. 물론 엄마도 있고요. 좀 있다가 예수님도 만들어 드릴 게요. 누나도 아빠한테 할 말, 지금 해.

꽃잎 : 그런다고 아빠가 들으실 수 있을 거 같아?

풀잎 : 아빠가 직접 듣진 못해도 예수님이 들어주시잖아. 아빠랑 예수님이랑 이제 함께 계시니까, 우리 얘기를 전해주실 분은 예수님뿐이야.

꽃잎 : 우리 같이 작은 애들 하는 말도?

풀잎 : 그럼.

꽃잎 : 니가 어떻게 알아?

풀잎 : (꽃잎이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예수님이시니까.



풀잎이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바라보는 꽃잎이.
풀잎은 다시 고개를 숙여 기도한다.

꽃잎, 잠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을 바라보고 조용히 무릎을 꿇는다.

꽃잎 : (머뭇거리다가) 미, 미안해요.

풀잎 : 눈 감고, 손 모으고, 진심을 다해서!

꽃잎 : (눈을 질끈 감고, 손을 모은다) 미안해요, 예수님. 진짜 예수님이 미워서 그런 건 아니에요. (울먹인다) 우리 아빠, 아빠가 보고 싶어서. 정말 우리 얘기 들리세요?

풀잎 : 그렇다니까!

꽃잎 : 우리 아빠, 따뜻하고 좋은 데 있는 거 맞아요? 우리 아빠는요, 우리랑 약속 한 건 뭐든 지켜주는 분이세요. 물론 잘 때 코를 드르렁 드르렁 하지만요, (자기 귀마개를 벗어 십자가상 앞에 놓는다) 만약 아빠가 코 많이 골면, 이거 하고 주무세요. 그러니까 우리 아빠 미워하시면 안 돼요. (살짝 눈을 뜨고) 이렇게 하면 되는 거야?

풀잎 : (입모양으로 `아멘`을 해서 보여준다)

꽃잎 : (다시 눈을 감고) 아멘.

풀잎 : (환하게 웃는다) 이제 됐어! 아빠한테 할 말 있으면 예수님한테 하면 돼!

꽃잎 : 근데 풀잎아, 사실 저 귀마개



가톨릭평화신문  2007-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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