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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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어디 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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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삽화 ▲ 당선자 최정금씨 ▲ 심사위원 강정규, 박민호
 
글= 최정금/ 삽화 =박경원


 보슬비가 내려요.
 아기 달팽이가 돌 틈에서 빠져나왔어요.
 스윽스윽 차가운 돌길을 쏜살같이 지나가요.
 돌길 끝까지 오는데 하루 종일 걸렸어요.
 타박타박 개미가 인사도 없이 지나가요.
 "개미야, 어디가니?"
 "우리 집에."
 "집이 어딘데?"
 "저기 민들레 뿌리 아래. 뱅글뱅글 미로 속이야."
 "그래? 재밌겠네!"
 "너무 늦었어. 얼른 가야 돼."
 개미는 손을 흔들며 가버렸어요.
 아기 달팽이는 돌길 끝에 웅크리고 잠들었어요.
 밤새 미로 찾기 왕이 되는 꿈을 꾸었죠.

 
 아기 달팽이는 이튿날도 길을 떠났어요.
 보들보들 초록 풀밭을 미끄러지듯 지나가요.
 풀밭 끝까지 오는데 하루 종일 걸렸어요.
 꼼지락꼼지락 애벌레가 인사도 없이 지나가요.
 "애벌레야, 어디 가니?"
 "우리 집에."
 "집이 어딘데?"
 "저기 찔레꽃 덩굴 속, 새하얀 꽃잎 뒤야."
 "그래? 달콤하겠다!"
 "아유 배고파. 얼른 가야 돼."
 애벌레는 고개를 흔들며 가버렸어요.
 아기 달팽이는 풀밭 끝에 웅크리고 잠들었어요.
 밤새 향긋한 꽃잎을 먹고, 먹고 또 먹는 꿈을 꾸었죠.
 

 아기 달팽이는 다음날도 길을 갔어요.
 까칠까칠 모래 언덕을 순식간에 올라가요.
 언덕 끝까지 오르는데 하루 종일 걸렸어요.
 붕붕붕 풍뎅이가 인사도 없이 지나가요.
 "풍뎅아, 어디 가니?"
 "우리 집에."
 "집이 어딘데?"
 "저기 참나무 가지, 단단한 껍질 틈이야."
 "그러니? 따뜻하겠네!"
 "우리 엄마가 기다려. 얼른 가야 돼."
 풍뎅이는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가 버렸어요.
 아기 달팽이는 모래언덕에 웅크리고 잠들었어요.
 밤새 나무껍질 틈에 앉아 노래하는 꿈을 꾸었죠.

 
 아기 달팽이는 모래 언덕을 내려가
 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어요.
 폴짝폴짝 개구리가 인사도 없이 지나가요.
 "개굴아, 어디 가니?"
 "우리 집에."
 "집이 어딘데?"
 "저기 연꽃잎 사이, 초록 연잎 위야."
 "그래에? 출렁출렁 춤을 추네!"
 "너무 졸려. 얼른 가야겠어."
 개구리는 졸린 눈을 비비며 가버렸어요.

 
 아기 달팽이는 이제 그만 쉬고 싶어요.
 "나도 집이 있으면 좋겠어."
 아기 달팽이는 부럽고 슬퍼져서 아주 조금 울었어요.
 몸을 움츠리고 깊은 잠이 들었어요.

 
 "와, 궁전 같다. 누구 집일까?"
 "이런 집에서 살아봤으면."
 `집이라고?`
 아기 달팽이는 시끄러운 소리에 잠을 깼어요.
 민달팽이 두 마리가 기웃거리고 있어요.
 아기 달팽이는 민달팽이를 따라 고개를 돌려보았어요.

 
 아기 달팽이 눈이 점점 점점 커지고 커지고 커졌어요.
 아기 달팽이 등에 임금님 궁전같이 멋진 집이 아침 햇살에 반짝이고 있었어요.

 "와아, 내 집!"



<동화부문 당선소감>

 집에서 십오 분쯤 걸으면 시립도서관이 있습니다. 한동안 그 유아실에 틀어박혀 그림책을 욕심껏 읽었던 적이 있습니다. 정말 탐나는 책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열권을 뽑으면 그 중 우리나라 작가 그림책은 한 두 권도 채 안 될 때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우리 아이들 어렸을 때 읽어주던 그림책도 거의 외국작품이었습니다. 길고 꼬불거리는 외국 아이들 이름 말고 우리 아이처럼 우리 이름을 지닌 주인공이 나오는 책을 읽어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그때 막연히 했었습니다.

 유아동화는 엄마가 아이에게 읽어주고 이야기해주는 글입니다.

 내가 어렸을 때 할머니가 해주신 재미난 이야기가 없었더라면,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그림책이 없었더라면, 나 자신이나 이제는 다 자란 내 아이들의 정서가 얼마나 메마르고 황량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마음은 도서관 유아실 그 넓은 책장을 다 채울 것 같이 바쁜데, 이제 겨우 한 발짝을 내디뎠습니다. 부족한 작품을 세상에 내보이려니 부끄러움이 앞섭니다.

 오랫동안 같이 공부하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준 친구들과 스승님,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약력=
▲1966년 서울 태생
▲단국대 식품영양학과 졸업(1989년)
▲2004년 계간 「시와 동화」에 단편동화 `용이와 짜루` 게재
▲2006년 5월 단편동화집 「달려라 바퀴」(바람의 아이들 펴냄)에 40매 분량 단편동화 수록




<동화부문 심사평>

 동화는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는 우선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또한 거기에 문학적으로 다듬어진 의미가 잘 녹아 있어야 합니다. 일반 동화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유아동화는 인물이나 사건, 주제가 단순하고도 명쾌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두 사람은 응모작을 정독한 끝에 다음 세 작품을 논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숲 속의 바느질집(김나은)`은 유아동화를 잘 이해하고 쓴 작품입니다. 바느질을 잘 하고 마음이 따뜻한 재주꾼 할머니를 등장시킨 이야기가 우선 잘 읽혔고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뿐, 더 이상 맺힌 데가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가시나무(임영자)`는 제목으로 알 수 있듯이 종교적 사랑을 주제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작가가 가시나무를 통해서 하려는 말이 작품 속에 채 용해되지 못해 감동으로 이어지기까지는 거리가 있습니다. 작가가 앞지르는 감동은 감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끝으로 `어디 가니?(최정금)`는 유아동화의 특성을 잘 살린 작품입니다. 정제된 이야기 구조, 달팽이가 자기의 집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지는 반복과 점층, 그리고 반전의 묘미, 무엇보다 톡톡 영근 언어들이 아침 햇살같이 반짝입니다.

 이에 우리 두 사람은 `어디 가니?`를 당선작으로 올립니다.

 당선자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냅니다. 그리고 본심에 오른 분들과 응모하신 모두에게도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또한 모두가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는 동화 세상에서 정진하기를 기원합니다.

심사위원 강정규ㆍ박민호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07-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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