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3일
기획특집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특집/신춘문예]유아동화 부문 당선작 '통통배'(반인자 작)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 그림=박경원
 

  바닷가 외딴집 마당에, 채송화가 피었습니다.
 담장 너머에는 키가 큰 해바라기 한 그루도 피었습니다.
 "땅 꼬마야! 너는 만날 뭘 찾는다고 땅만 내려다보니?"
 해바라기는 담장 너머로 고개를 내밀며 채송화 보고 놀립니다.
 "난 채송화야, 이름 부르면 좋겠어."
 차분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입니다.
 해바라기는 작다고 무시한 게 마음에 걸립니다.
 "미안해. 사실은 오래 전부터 내려다보며 친구하고 싶었어."
 "쪼그만 내가, 친구 될 수 있어?"
 채송화는 고개를 반짝 들어 봅니다.
 "커다란 바위와 풀 한 포기도 친구가 되잖아."
 "키가 크니 마음도 넓네."
 "뭘, 부끄럽다."
 "먼저 말 걸어줘서 고마워. 땅을 보는 건, 개미가 꼬물꼬물 기어가는 게 신기해. 내가 흙 속에서 어떻게 나왔나 궁금하기도 해."
 "너는 궁금쟁이구나."
 해바라기는, 채송화가 땅에 납작 앉아 빨갛게 핀 것이 기특합니다.
 
 "키가 장대처럼 길고, 잎도 우산만큼 넓은데 이름 불러도 돼?"
 "그럼."
 해바라기는 환하게 웃습니다.
 "그래도, 미안해. 제일 크잖아."
 채송화도 활짝 웃어 봅니다.
 "너는 꽃은 작아도 마음은 바다같이 넓구나."
 "그렇지 못해. 나 같이 작은 게 넓으면 얼마나 넓겠니."
 "몸이 작다고 마음도 작은 건 아냐. 커다란 코끼리가 새끼를 사랑하는 마음과 작은 개미가 새끼를 사랑하는 마음의 무게가 다르겠니?"
 "정말 마음도 크네. 해님 바라보는 꽃 이름도 예쁘고, 무얼 바라보는 뜻도 함께 있어 좋겠다."
 "너는 참으로 속이 깊은 생각쟁이구나."
 "잎도 꽃도 요렇게 작은 내가 뭐…."
 채송화는 꽃이나 잎이 큰 해바라기가 부러운 건 아닙니다.
 작은 대로 만족합니다.
 그런데, 요즈음 많이 외롭습니다.
 
 "해바라기야, 궁금한 게 있어."
 "뭔데?"
 "며칠 전부터 물어보고 싶었는데, 키가 너무 커서 감히…"
 "어서 얘기해 봐."
 해바라기는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에 몸이 흔들립니다.
 "누굴 기다린다고 그렇게 만날 바다만 바라보니?"
 "누굴 기다리기보다 꿈꾸는 거야. 바라는 꿈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꿈이 뭔데?"
 "생각이 자라면서 무엇이 되고 싶고, 또는 누굴 아끼고 위해주는 것."
 "아! 채송화 언니도 언젠가, 내 앞에서 너는 꿈이 뭐니? 라고 물어본 일이 있어."
 "채송화 언니라니?"
 "이 집에는 외동딸이 있는데, 성이 채씨고 이름은 송화야. 그래서 해마다 마당에 내 씨를 뿌려."
 "그렇구나."
 해바라기는 빨강, 노랑, 하얗게 핀 마당이 아름답습니다.
 
 "친구들이 와서 채송화, 부르면 꼭 내 이름 부르는 것 같아 기뻐. 이름 부르면 기분이 짱하고 좋잖아."
 "채송화, 하고 부르는 걸 들었어. 그럴 때면 예쁜 이름이구나 했지."
 "고마워."
 해바라기 큰 얼굴에도, 채송화 작은 얼굴에도 웃음이 가득 합니다.
 채송화는 해바라기가 차츰 좋아집니다. 이런 친구면 속마음도 털어 놓고 싶습니다.
 "해바라기야, 그런데…."
 채송화는 울먹이던 송화 언니가 떠오릅니다.
 "송화네 통통배가 고기 잡으러 나가, 안 돌아 온지 일주일 넘었어."
 채송화는 시무룩해집니다.
 "그랬구나. 나는 집안 사정을 잘 몰랐지."
 해바라기 목소리도 우울해집니다.
 "송화 언니가 내 앞에 쪼그려 앉더니 채송화야, 아빠가 무사할까? 너도 기도 해줘. 그러고는 훌쩍이더니 눈물을 펑펑 쏟는데, 내 가슴도 너무 아팠어."
 "그런 일 있었어?"
 해바라기도 울상입니다.
 "하루하루가 슬퍼."
 "나도 눈물 나오려 해."
 해바라기는 해님 바라보며 침을 꿀컥 삼킵니다.
 
 "너는 크니깐, 기도도 클 거 아냐?"
 "크다고 기도가 클까마는, 이럴 때는 마음을 모아 보자."
 해바라기는 반짝이는 햇살을 더 많이 꽃에 받습니다.
 해바라기는 왼 종일 눈이 따가워도, 해님 바라보며 빕니다.
 `송화 아빠가 무사히 돌아오게 해 주세요.`
 밤에는 달과 별을 보며, 머리 숙여 기도 합니다.
 해바라기는 하늘 끝까지, 채송화도 땅 끝까지 간절히 빕니다.
 다시 하루가 지났습니다.
 그리고, 또 하루가 지났습니다.
 "오늘도 소식이 없으려나 봐."
 해바라기는 힘이 쭉 빠집니다.
 "희망의 끈을 절대 놓지 마!"
 채송화가 야물 찹니다.
 
 다시 하루가 지나고 있습니다.
 무섭던 파도가 조금씩 잔잔해 집니다.
 고요한 물살 위에 햇빛이 반짝입니다.
 "먼 바닷길에서 희미하게 통통 소리가 들려."
 "어디, 어디!"
 채송화도 듣고 싶어 몸을 들썩여 봅니다.
 "어! 더 크게 들려."
 해바라기는 기쁨 가득한 목소리로 소리칩니다.
 "난, 안 들려."
 채송화는 가슴이 바짝바짝 탑니다.
 "눈 감고 마음을 차분히, 귀를 쫑긋해 봐."
 "그래! 나도 들려."
 통 통 통, 통 통 통.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08-02-03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5. 13

2코린 12장 9절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