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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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2009 평화신문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작 오은희씨 ''아버지의 섬에서 길 찾기를 종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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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의 섬에서 길찾기를 종료하다`


   글 = 오은희
   그림 = 김복태

   너무 먼 길을 달려왔다. 집에서 아침 8시에 출발했는데 어느덧 오후 3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휴게소를 단 두 군데만 들렀을 뿐이고 점심도 거른 채 여기까지 온 것이다. 나는 뱃속에서 느껴지는 허기보다 이제 여기서부터 어떻게 찾아가지 하는 막막함에 기운이 쑥 빠져 버렸다. 분명 아버지는 이곳으로 왔을 것이다. 내 추측이 맞다면 아버지는 고기잡이를 하며 당신이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바다를 실컷 보고 있을 터였다.

 찝질한 바닷내음이 차 안에 가득해지자 나는 울컥하고 심한 욕지기가 느껴졌다. 서둘러 창문을 닫고 길찾기를 종료해버린 내비게이션을 바라보았다. 부산시 강서구 천가동 52번지. 부산에 편입되어 있는 곳이지만 이곳은 분명 섬이다.

 "아버님이 어디 계신 줄 알고 찾아 나선다는 거야. 그리고 거기가 어딘데 짐작만 가지고 떠난다고 이 난린지 모르겠네. 자기 몸이나 추스르지 않고.……"

 오늘 아침 그는 다녀오겠다는 내 말에 답답하다는 듯이 소리치며 출근해 버렸다. 그렇지만 극구 만류하지 않은 것은 아버지 때문에 며칠 째 잠을 못 이루는 내 마음을 알기 때문인 것이다. 적어도 그렇게 믿고 싶었다. 부둣가 쪽에 주차를 하고 나는 우선 생수 한 병을 사서 벌컥벌컥 마셨다. 갈증이 사라지자 요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근처 식당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오후 시간이라 그런지 손님은 나 혼자뿐이었다. 선하품을 하며 내가 주문한 된장찌개를 하는 아주머니는 육십은 족히 넘어 보였다.

 "아주머니, 혹시 용호건어물 가게 아세요? 여기서 아주 오래된 곳이라던데.……"

 찌개가 끓는 동안 몇 가지 밑반찬을 담던 그녀는 손길을 멈추고 뒤돌아 나를 바라보았다.

 "와 그라능교? 거기 없어져 뿌렀는데.……, 그 집이 돈을 많이 벌어갖고 펜숀인가 뭔가를 짓고 산다카든데.……"

 "그래요? 그 펜션이 어딘 줄은 모르시구요?"

 갑자기 나는 아주머니가 모르면 안된다는 듯 조급해졌다.

 "남쪽 끝에 있는 동두말이라든데.…… 거 왜 가덕도 등대 있는데 안 있는교?"

 아주머니는 내가 가덕도에 사는 사람으로 보였나 보다. 등대 있는 마을이라면 바다가 잘 보이는 곳이겠지, 아버지도 그쯤 어딘가에 계실 거라고 믿고 싶었다. 아주머니는 오래 전부터 그  가게와 거래를 했다며 용호건어물은 없어졌지만 둘째 아들이 새로 지은 건어물 센터에서 젓갈과 건어물 장사를 한다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어쩌면 의외로 쉽게 아버지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 아들이라면.…… 그 때 보았던 남자애였던가.

 아버지가 배에서 내린 후 뭔가 다른 일을 찾고 있을 때, 나와 동생을 데리고 이곳에 왔었다. 그때는 부산에서 배를 타고 왔었는데 거제도까지 이어지는 다리가 놓이면서 자동차로도 가능한 길이 만들어진 것이다.

 

   겨울 초입으로 접어들던 그 때의 부둣가는 을씨년스럽기 그지없었다. 바람에 검은 비닐봉지가 여기저기 날리고 생선비늘 같은 것들이 군데군데 눌러붙어 있는 부두는 사람들이 살고 있지도 않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 나는 이 낯선 곳에서 아버지를 잃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밀려와 아버지의 손을 꼭 부여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남동생의 손을 꼭 그러쥐고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 친구가 한다는 건어물 가게에 도착해선 달랐다. 밝은 형광등이 여기저기 켜 있어 바깥과는 다른 세상이었다. 게다가 하얀 오징어 속살이며 붉은 새우, 희번뜩한 큰멸치며 조그만 멸치 등이 바구니 곳곳에 가득 담겨 있었는데 무엇보다도 내 입맛을 다시게 했던 것은 줄줄이 걸어 놓은 문어말린 것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친구와 마른 멸치에 소주를 마시고 있는 사이 가게를 들락날락하며 몰래몰래 문어꽃을 하나씩 따서 입속에 넣고 오물거리고 있었다. 이까짓 빨판 같은 것은 없어도 될 거라며 나중에는 잔뜩 뜯어서 호주머니에 넣기도 했다. 그런데 그때 가게 안쪽에서 어떤 사내아이가 튀어 나오며 소리쳤다.

 "아부지예. 저 가스나가 문어발 다 따묵심더. 그라몬 못팔아 묵는다고 아부지가 그랬다 아임니꺼."

 아이는 가무잡잡한 얼굴에 큰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아저씨는 껄껄 웃으며

 "괘안타. 이 녀석아. 영아 많이 묵으래이. 저 녀석이 영아가 이쁘니까 괜히 그라는기다."

 그 아이는 자기 아버지 말에 씩씩거리며 나를 노려보았다. 그때 아저씨가 저 녀석이 우리 둘째 놈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가 또 집을 나갔다고 말하는 엄마의 목소리는 걱정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이번에도 어디 가서 한 몇 달 있다 오겠지, 라며 이미 아버지에 대해선 체념하고 있는 말투였다. 단지 네가 그렇게 챙기는 아버지, 또 집을 나간 거나 알고 있으라는 통보였다. 하긴 엄마는 아버지가 없으면 더욱 자유로운 생활을 즐길 것이고 밤낮 내게 전화해서 저 화상 어쩌냐 소리 같은 것은 하지 않을 것이다. 엄마 가게에 단골로 드나드는 홍사장이나 김교수 앞에서도 마음놓고 웃을 수 있으니 오히려 잘됐지 않은가. 아버지는 처음부터 엄마가게에 나가지 않았어야 했다.

 부산에서의 지리멸렬했던 생활을 청산하고 외삼촌이 있는 서울로 옮겨간 후, 아버지는 더욱 말수가 없어졌다. 더욱이 외삼촌이 봉천 시장통에서 잘 되던 불고기집을 정리하고 엄마랑 같이 청우가든을 개업한 후 아버지는 숯불 나르는 일이나 주차를 해 주는 일 등 허드렛일만 하게 되었다. 나는 곱게 화장하고 손님을 맞는 엄마와는 다르게 숯검댕이 묻고 추레한 아버지의 모습이 보기 싫어 가게에는 좀처럼 나가지 않았다.

 새로 지어서 그런지 건물은 깨끗해 보였지만 역시나 생선 비린내와 콤콤하게 썩어 들어가는 젓갈 냄새, 하수구 냄새들로 신가덕도 건어물센터는 `신`이라는 글자가 무색할 지경이었다.

 역시 상호를 바꾸지 않은 용호건어물 상회에는 그때 그 아이가 자란 듯싶게 눈이 부리부리한 남자가 아내로 보이는 작달막한 여자와 함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뭘 좀 드릴까예? 젓갈 찾습니까?"

 "아뇨, 저 뭐 좀 여쭤볼까 해서 왔는데요."

 내가 물건을 사러 온 사람이 아님을 알고는 그녀는 남자를 불렀다. 그는 나를 알아봤다. 다행히도.…… 내 아버지에 대해 묻자 요즘 자기 아버지한테 가 본 적이 한참 지나서 모르겠다며 펜션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었다. 돌아나오는 내 등 뒤에 그가 말했다.

 "참 잘 컸소. 그 때도 이쁘드만.… 아버지 찾으려면 다시 한번 오



가톨릭평화신문  2009-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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