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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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신춘문예] 유아동화부문 가작 김지애 작 ''고야는 특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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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야는 특별해`
   글=김지애
   그림=권소현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한낮, 수박밭은 후끈후끈 달아오른 찜질방 같았어요.
 "아, 배고파. 뭐 먹을 거 없나?"
 땟국이 자르르한 들쥐 한 마리가 수박밭을 이리저리 살폈어요. 심술궂고 욕심 많은 몽니였지요. 너른 수박밭에 조그맣고 푸르스름한 수박들이 햇살 아래 빛나고 있었어요. 몽니는 코를 킁킁거렸어요. 어디선가 단내가 풍겨왔지요. 몽니가 수박잎을 헤치고 들어가니 탐스럽게 잘 익은 수박이 있었어요.
 "크크, 저기 먹음직스런 먹이가 있네."
 
 몽니가 가는 눈을 번뜩이며 수박에게 다가갔어요. 입맛을 쩍쩍 다시며 말이죠. 그 모습을 보고 겁에 질린 고야가 소리쳤어요.
 "저리 가. 저리 가지 못해. 난, 장에 비싸게 팔릴 귀한 몸이야."
 고야는 짙은 녹색에 뚜렷한 줄무늬를 가진, 축구공만한 수박이에요.
 "히히히, 아무려면 어때? 먹으라고 있는 수박 누가 먹음 어때서."
 "너같이 더러운 쥐한테 먹힐 몸이 아냐. 나를 먹으면 우리 주인이 가만두지 않을 거야. 잡히면 오늘로 고양이밥이 될걸!"
 고야가 낮게 을러댔어요. 고야의 말에 몽니는 누런 이를 드러내며 히쭉 웃었지요. 그러더니 앞니로 고야를 콕 깨물었어요. 고야는 아파서 큰소리로 울부짖었어요.
 "이러지 마. 이러지 말라고. 난, 특별한 수박이란 말야."
 그러거나 말거나 몽니는 `냠냠 짭짭`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했어요. 짧은 몇 분이 고야에게는 무척이나 괴롭고 길게 느껴졌지요.
 
 "별 거 아니네, 뭐. 잘난 체 하기에 난 또 금씨라도 있는 줄 알았지."
 몽니가 `끄윽` 트림을 하며 비아냥거렸어요. 그러고는 수박밭을 휭 떠나 버렸지요.
 "이 나쁜…… 지저분하고 못된 놈! 자기밖에 모르는 막무가내 쥐 같으니라고. 가다가 고양이나 만나라. 만나서 고양이한테 콱 물려 버려라."
 고야는 화가 나서 씩씩거렸어요. 억울하고 분해서 온몸이 쫙쫙 갈라질 것 같았지요.
 
 고야는 최고의 수박을 꿈꿨어요. 다른 수박들이 하나둘 장에 나가도 고야는 마음 쓰지 않았어요. 햇살을 맞고, 시원하게 내리는 빗물을 마시며 더욱 크고 싱싱한 수박이 되리라 마음먹었지요.
 
 델 것처럼 뜨거운 햇살이 고야 위에 내리쬐었어요. 고야는 몽니에게 먹힌 부분이 화상을 입은 것처럼 쓰라렸어요. 그때였어요.
 미니가 비틀거리며 고야에게 다가왔어요. 미니는 비쩍 마른 어린 쥐에요. 작기는 또 얼마나 작은지요. 바람 불면 이파리처럼 휙 날아갈 것 같았어요. 듬성듬성 빠진 잿빛 털은 꾀죄죄하고 윤기도 하나 없었지요.
 "목말라 죽을 것 같아. 미안한데…… 한 입 먹어도 될까?"
 미니는 숨을 헉헉대며 간절하게 말했어요. 고야는 못 들은 척 대꾸도 하지 않았지요.
 
 "아주 조금이면 되는데……. 안 될까?"
 미니는 고야를 물끄러미 바라봤어요.
 "꿈도 꾸지 마. 난 쥐라면 딱 질색이야. 예의라곤 하나 없고, 무지 못됐어. 쥐는 정말 싫어."
 고야는 몽니한테 당한 게 생각나 속이 부글부글 끓었어요.
 "하지만……."
 "싫어. 절대로 안 된다고! 난, 장에 비싸게…… 팔릴…… 귀이한……."
 고야는 말꼬리를 흐렸어요. 몽니의 이빨 자국이 더욱 도드라져 보였지요. 미니는 수박 옆에 기운 없이 털썩 주저앉았어요. 더 이상 빌지도 못하고 숨만 `쌕쌕` 몰아쉬었지요.
 
 고야는 본체만체 딴청을 부렸어요. 미니는 고야에게서 나는 달콤한 냄새에 침이 꿀떡꿀떡 넘어갔어요. 저도 모르게 입맛도 다셨지요. 고야는 그 소리가 거슬렀어요. 마음 쓰지 않으려고 했지만 눈길이 자꾸 갔어요.
 "딱, 한 입이야."
 미니가 눈을 커다랗게 뜨고 고야를 쳐다봤어요.
 "맘 바뀌기 전에 빨리 먹어. 너무 크게 베어 먹진 말고."
 고야가 퉁명스럽게 말했어요.
 
 그제야 미니가 고야를 한 입 베어 물었지요.
 "아, 살 거 같다. 고마워, 수박아!"
 미니가 두 팔로 고야를 부둥켜안았어요. 고야는 애써 모르는 척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지요.
 "넌, 참 좋은 수박이야."
 "쳇! 좋은 수박이라고? 맛있는 수박이 아니라?"
 "맛있고말고. 내가 지금껏 먹어 본 수박 중에 가장 달고 맛있어. 정말 최고야!"
 최고라는 말에 고야는 뚱하던 마음이 풀렸어요.
 
 "이래봬도 제일 좋은 씨앗에서 나온 몸이라고. 최고라는 뜻에서 내 이름이 고야 아니겠니? 내가 붙인 이름이지만."
 고야의 목소리가 한결 나긋나긋해졌어요.
 "고야! 정말 근사한 이름이다. 난 작아서 다들 미니라 부르는데……. 근데 넌 왜 장에 비싸게 팔리고 싶은 거야?"
 미니가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어요. 고야는 장에 실려 가는 다른 수박들의 만족스런 표정이 떠올랐어요. 저마다 자기가 더 비싼 값에 팔릴 거라 으스댔지요.
 "음, 잘 익고 맛있는 수박은 다 그러거든. 비싸다는 건 그만큼 뛰어난 거래. 그리고 특별한 거지. 난, 아주 특별한 수박을 꿈꿔왔지. 그래서 뜨거운 햇볕도, 줄기차게 퍼붓는 장맛비도 견뎌냈지. 크고 탐스럽게 자라려고."
 "그렇구나. 그래서 이렇게 맛있구나. 나도 너처럼 특별해지고 싶어."
 
 "미니, 네 꿈은 뭔데?"
 "내 꿈은 말이야. 어서 빨리 몸집이 커지고 힘도 세졌으면 좋겠어. 그리고 혼자 마음대로 가고 싶은 곳 다 가 보는 거야. 나는 자유로운 여행가가 될 거야."
 "마음대로 가고 싶은 곳을 간다고?…… 부럽다."
 "나는 네가 부러운 걸. 넌 맛있고 시원하잖아. 목마름도 없애 주고."
 미니의 말에 고야는 아무 말 없이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어요.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지요.
 `꼬르륵 꼬르륵.` 미니의 배에서 소리가 났어요.
 "배고프구나?"
 미니가 고개를 끄덕였어요. 미니와 고야 모두 힘이 하나도 없었지요.
 
 낮 동안의 찜통더위가 고야의 상처를 더욱 깊숙이 곪게 했어요. 고야는 몽니에게 먹힌 부분이 욱신욱신 아팠지요.
 고야는 자신의 몸을 찬찬히 훑어보았어요. 상처에 멀건 물이 고이고 이따금씩 흘러내렸지요. 고야의 몸 위를 개미들이 줄지어 바쁘게 오르내렸어요. 리듬에 맞춰 걷듯 신나는 움직임이었어요. 알록달록 고운 무늬가 있는 나비가 나풀거리며 날아와 고야의 몸 위에 앉았어요. 벌들도 윙윙 소리를 내며 고야 주위를 맴돌았지요. 이름 모를 벌레들이 하나둘 고야 주위로 몰려들었어요.
 고야의 몸은 벌레들의 흥겨운 잔치판이 된 것 같았지요.
 고야는 벌레들의 움직임에 몸이 따끔거렸어요. 하지만 벌레들의 행복한 모습에 잠자코 있었지요.
 
 고야는 미니를 바라봤어요. 미니는 배도 고프고 기운도 없어 축 늘어져 있었지요. 고야가 결심한 듯이 말했어요.
 "배 많이 고프면 더 먹어도 괜찮아."
 "정말 그래도 돼?"



가톨릭평화신문  2009-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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