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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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한국가톨릭문학상 시상식 수상소감

소설부문 수상자 공선옥 · 시부문 수상자 김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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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선옥씨
 

 
▲ 김종철씨
 

◆ 소설부문 수상자 공선옥

“문인·신앙인으로 겸손하게 살 것”



언제나 상을 받기보다는 시상식장을 찾아 박수치는데 익숙한 사람인지라, 상을 받으러 나오는 것 자체가 저로서는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한국가톨릭문학상’이란 그 이름 그대로 이 상은 제가 글을 잘 써서, 혹은 제가 글을 써서 많은 사람들에게 복을 줘서 받는 상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단순히 제가 가톨릭 신자 문인이라서 받는 상이라는 생각을 하다가, 그렇다면 더욱더 받을 자격이 없는 상이라는 생각에 혼자 낯을 붉혔습니다.

문인으로 받는 상도 그리 익숙지 않은데, 거기에 신자라는 이유로 상을 받는다면 그것은 저의 양심에 어긋나는 부분이 없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명색이 가톨릭 신자이지만 매주일을 제대로 지키는 것도 아니고, 또 아직 성경조차 완독하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무엇보다 하루하루의 일상을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삶으로 이어나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무릇 상이 주는 의미가 잘해서도 주지만, 저 같은 경우에는 앞으로 잘하라고 주는 상이라 여기고 결국 이렇게 이 자리에 섰습니다. 한없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언젠가 제가 아는 한 수녀님께서 휴가를 받아 여행을 하시다가 주일이 돼 어느 성당에 가셨답니다. 수녀님은 당시 교통비 정도만 지니고 있었는데, 마음속으로 갈등하다가 결국 자신이 가진 돈을 몽땅 헌금으로 봉헌하셨습니다. 수녀님은 기왕에 일을 저질렀으니 마음만이라도 편하자며 기도를 바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한참동안 기도 후 고개를 들어보니 수녀님의 머리맡 탁자 위에 돈 봉투가 놓여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느님은 우리가 내어놓은 몇 배를 갚아주신다’는 수녀님의 말씀을 그때는 새겨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문득 그 말씀이 사무쳐 옵니다. 가진 돈을 모두 봉헌한 수녀님의 마음도, 또 수녀님의 머리맡에 돈을 놓고 간 어느 분의 마음도 하느님의 마음이겠지요.

제가 상을 받았으니, 저도 누군가에게 상을 줘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일입니다.

그러자면, 더욱 더 겸손한 마음으로 치열하게 살아야겠습니다. 문인으로서, 신앙인으로서 말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 시부문 수상자 김종철

“어떻게 하면 시로 죽을 수 있는가”

최근에 첫 시선집을 엮었습니다. 한 40여 년 써왔던 시 중에서 100편의 시를 뽑았지만, 일백 번 죄 짓고 시 쓴 것처럼 부끄럽기만 했습니다. 오늘까지 제가 시인으로 살아오는 데는 두 가지 우연찮은 까닭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 이야깁니다. 당시 주일학교 선생님이었던 어느 수녀님께서는 망치로 박은 못과, 그 못 자국을 예로 들며 ‘죄와 참회’에 대해 가르치셨습니다. 하찮은 못 하나로 교리를 가르치는 수녀님이 딱해 보였습니다. 수녀님은 그해에 예비신자 교리반 아이들에게 베드로, 미카엘, 요한 등 거창한 세례명을 지어주시면서, 제게는 ‘아오스딩’이란 생소한 세례명을 주셨습니다. 불만이 컸습니다.

아오스딩이 누구냐고 볼멘소리로 물었더니, 시인이라고 했습니다. ‘시인? 웃긴다.’ 속으로 삐죽댔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고백록’의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이었습니다. 죄 없이는 구원도 없다고 외친, 그 멋진 아우구스티누스였습니다.

또 하나는 이십대에 읽은 어느 ‘불경’의 이야기입니다. 한 선사가 암자를 옮겨 다니며 수행을 하다가 산중에서 도적을 만났습니다. 시퍼런 칼을 든 도적은 가진 것 없는 선사에게 버럭 화를 냈습니다. 네 놈이 숨긴 걸 다 내어놓으라고 호통 쳤습니다. 선사는 태연히 말했습니다. ‘가진 것은 오직 불심뿐이며, 이는 가슴 속에 있습니다.’

화가 난 도적은 ‘그러면 가슴 속을 열어 꺼내자’며 칼을 휘두르려 했습니다. 찰나, 선사는 임기응변으로 한 수의 시를 읊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해마다 꽃 피우는 저 나무 / 아직 때가 한겨울이거늘 / 어찌 생나무 가슴을 칼로 갈라 / 꽃을 꺼내려 하는가’

그렇습니다. 저는 시인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가 주저해온 것은 아직까지 겨울나무로 살아왔다는 점입니다. 싹을 틔고, 꽃 피워야 할 때가 지났는데도 그냥 꽃나무인 채 살아온 것은 아닌지 제 자신이 자못 의심스러웠습니다. 이제는 ‘어떻게 하면 시로 죽을 수 있는가’ 궁리하며 살아야 할 나이에 이르렀습니다.

못과 망치로 내 시의 화두를 던져준 수녀님, 그리고 깊은 산중에서 칼로 시를 끄집어 내달라고 애걸복걸한 그 도적을 찾아 이제는 떠나야 할 순례의 시간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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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09-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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