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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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되었습니다'' 생명수호 체험수기 대상작(하)

이송주(빅토리아, 인천 연수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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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년이 지나고 세 번째 임신이 되었다. 이번에는 아기를 꼭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임신 소식 후 바로 모든 일을 접고 집에 누워만 있었다. 병원에서 맥도날드 시술을 해야 한다고 해서 시술 후 입원해서 꼼짝 안하고 누워 지냈다. 화장실, 식사, 씻는 것, 모든 것을 누워서 했다. 힘들었다.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나만을 믿고 있는 한 생명, 나만이 지킬 수 있는 내 아기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소중한 내 아기를 난 지키지 못했다. 25주 만에 태어난 내 아기는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단 하루만을 살다가 하늘로 갔다. 그 아기가 너무 불쌍해서, 너무 미안해서 밥도 못 먹고 며칠을 울며 지냈다.
 그 사이 나의 임신을 누구보다 기다리시고 정성을 다해 끊임없이 기도해주시던 친정 아버지마저 돌아가시고, 아이를 갖는다는 것을 거의 포기하고 있던 때, 다시 네 번째 임신이 되었다. 또 어찌해야 하나, 기쁨은 없고 오로지 걱정과 두려움이 가득했다. 다시 데려갈 생명이면 원치 않는다고 마음으로 울며 기도했다. 그동안의 아픔이 떠올라 두려웠지만 그래도 내게 주신 생명 꼭 지키리라 맘을 굳게 먹었다.
 
우선 병원을 먼저 선택해야 했다. 어렴풋이 TV에서 보았던 서울 제일병원을 생각해냈다. 인천 연수동에서 그곳까진 꽤 먼 거리었지만 내 생각엔 병원 선택도 무엇보다 중요하리라 생각해서였다. 우린 그곳에서 다시 한번 수술 날짜를 잡았고 또다시 힘든 여정이 시작됐다.
 임신 4개월, 다시 수술대에 눕혀졌다. 아기를 지키기 위한 맥도날드 수술을 받았다. 그때 병원에 있는 동안 베로니카 수녀님을 만나게 되었고, 수녀님의 기도와 보살핌으로 나의 마음은 평화로움과 큰 위안을 얻었다. 식사는 물론이고 대소변도 남편의 수발로 해결을 하고 24시간을 누워 있어야 했지만 내 뱃속에 자라고 있는 하나의 가녀린 생명을 지켜야 했기에, 아니, 이대로라도 영원히 살 수만 있다면, 아기만 지킬 수 있다면….
 하지만 다시 조산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구급차에 실려 병원 응급실로 온 나는 또다시 절망해야만 했다. 양수가 약간 흐른다며 분만실로 보내졌다. 포기할 것을 권하는 의사에게 남편과 나는 완강히 거부했다. 이대로 분만하면 아기가 살아날 가능성은 0란다. 한참 후 주치의가 왔고, 난 아기를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고 다시 한번 완강히 거부했다. 주치의는 나의 의견을 존중해 주었고, 10일간 더 입원을 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 조산이 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으로 태교에는 신경도 못쓰고 묵주알을 돌리며 성모님께 매달렸고, 기도로 주님께 의지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하루가 일년처럼 길게 느껴졌지만, 내 아기가 나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한가닥 기쁨이었다. 이렇게라도 아기가 버텨주기만을 기도하며 지내고 있는데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기형아 혈액 검사에서 아기의 다운증후군 가능성이 높게 나왔단다. 나에게 양수검사를 권한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다. 하지만 나에겐 이미 확고한 의지가 있었다. 이미 나는 유산이라는 죄를 지었고, 설사 이 아기가 다른 형태로 태어난다 하더라도 하느님의 뜻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걱정과 분심이 생길 때마다 묵주를 잡았고 기도드렸다. 다시 병원에서 연락이 왔지만 단호히 거절을 했다. 나의 아기, 내게 의지하고 있는 어린 생명을 어떠한 경우라도 포기할 수 없다고….
 
 23주 6일이 되던 날 새벽,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또다시 응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자궁 문이 이미 열려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하늘이 노랗게 된 듯했다. 머리 속이 멍하다. 병원에서는 즉시 분만해야 한단다. 나에게 선택하란다. 아기를 포기하든지, 아니면 다른 병원으로 옮기란다. 확률은 거의 없어도 내 손으로 아기의 생명줄을 놓을 순 없었다. 남편에게 물었다.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한가지, 혹 아기가 고통만 당하는 것은 아닌지… 내 머리 속엔 옛날 경험이 너무나도 무섭게 다가왔다. 주님! 제발 도와주세요.
 이때 함께 있던 언니가 서울 삼성의료원으로 보내 달라고 했고, 병원에서는 신생아 중환자실의 인공호흡기를 사용할 수 있는 병원을 알아봐 주었다. 그때 삼성의료원에서 아기를 받아 줄 수 있다는 회신이 왔고, 나는 급히 그 병원으로 옮겨졌다(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곳이 우리나라 최고의 신생아 중환자실이고, 인큐베이터가 모자랄 정도로 위급히 찾는 아기들이 많아서 빈자리를 찾기란 정말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하느님의 도우심을 절실히 느꼈던 순간이었다).
 다시 한번 여러 검사가 시작되었고, 분만실로 옮겨진 나는 다음날 새벽, 채 24주가 안된 아기를 낳게 되었다. 울음도 울 수 없는 너무나 조그만 아기, 504g(내 손보다도 훨씬 작았다)이란다. 나는 분만실에서 차마 아기를 볼 용기가 없어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너무나 미안해서… 가슴 아파서…
 갓 태어난 아기에 대한 조치가 일사분란하게 취해졌고, 신생아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병실로 옮겨진 나는 `아기가 살 수 있을까?` 하는 절망적인 생각뿐이었다. 언니가 병실로 와서 말한다. 이 병원은 500g 정도의 아기들도 50 이상 살아난다고. 그 말에 귀가 번쩍 뜨이고 희망이 보였다.
 
그날 저녁, 아기 면회 시간이 되었다. 첫 만남. 설렘보다는 이기를 대하기가 너무 무서웠다. 그 조그마한 아기가 치료받는 모습을 보는 것은 그 자체가 고통이고 가슴이 메어왔다. 아기에게는 인공호흡기 및 여러가지 장치와 바늘들이 꽂혀 있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루룩 흐른다. `차라리 내가 저 자리를 대신할 수 있다면…`
 하지만 살아 있다. 분명히 살아있다. 희망이 있다. `성모님! 어머니셨던 당신께 기도드립니다.` 나는 매달렸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기도뿐, 매일 면회시간에 갔다. 아기가 있는 인큐베이터 앞에서 기도를 드렸다. 단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하루가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지났다. 빨갛고 쭈글쭈글
한 피부를 한 손바닥만한 크기의 아기가 살아가고 있다. 그 힘든 치료를 견디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내가 아기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기도밖에는 없었다. 그 과정은 피를 말리고 하루하루가 살얼음을 걷는 날들이었으며, 하루에도 열두 번씩 희망과 절망을 넘나들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날들이었다.
 
 매일 병원에서 아침마다 아기의 상태를 알리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 주었다. `오늘 우리아기 몸무게는… 모유는 10cc 먹었어요.` 비록 관을 통해서 모유를 먹지만 차츰 늘어나는 양과 몸무게가 신기하고 감사할 따름이었고, 하루하루가 나에겐 기적이었다.
 언니와 남편과 매일 아기를 위해 미사를 드렸다. 아침마다 성당에 들러 기도를 하고, 모유는 짜서 팩에 담고 병원으로 향했다. 내 일생에 그토록 간절히 진심으로 기도한 적이 없는 듯하다.
 아기가 살아가고 있다. 힘들고 중요한 치료가 있을 때는 수녀님께 기도를 부탁드렸다. 그때 알게 된 이상국 신부님도 함께 기도해 주셨다. 지금도 생각하면 너무나 감사를 드릴 분들이다. 기적을 함께 만들어주신 분들이다.
 아기는 그 힘든 과정을 마치고 3개월 20일 만에 우리 품에 안겼다. 그 가녀린 숨결은 그 힘든 인공호흡기에 매달려 싸웠고, 감염의 위험 속에서 몇 번의 고비를 넘기며 당당히 그 생명을 지켜냈다. 2kg 조금 넘는 조그만 아기였지만 너무나 대견하고 의지력 있는 나의 아기… 아기를 안고 집으로 왔다. 너무 기뻤다. 너무 기뻐서 미사를 드리고 성당에서 나올 때는 나도 모르게 입에서 찬송이 나오곤 했다.
 
일주일에 서너 번씩은 여러 검사로 인해 병원에 다녀야 했고, 혹시나 모를 후유증을 방지하기 위해 재활치료를 받아야 했지만 아기와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나에겐 너무나도 큰 행복이었다. 이젠 3살이 된 우리 아기, 이젠 물리치료와 작업치료 그리고 재활치료가 더 이상 필요 없을 만큼 건강하게 자랐다. 우리 가족의 간절한 기도와 성모님의 돌보심을 느꼈던 것일까? 이젠 묵주와 기도서를 들고 뭐라 중얼거리며 그럴 듯하게 기도 흉내도 낸다. 비록 기도서는 거꾸로 들려있고,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나에게 생명의 소중함과 경이로움을 알게 해준 나의 아기. 가끔 아기를 안고 감사드리러 찾곤 하는 신생아 중환자실. 그곳의 일상은 참으로 숨가쁘다. 아기들의 작은 숨결들을 지키기 위한 간호사님과 의사 선생님들의 바쁜 손놀림과 희생은 가히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리고 그 조그만 아기들은 자신들의 생명줄을 놓지 않으려 발버둥치며 싸우고 이겨낸다. 그들에게도 한 생명의 의지가, 강한 의지가 엿보인다. 살기 위해 모든 고통들을 감수하는….
 자신들의 잘못도 아니고, 아무런 이유도 없이 받는 고통이지만 말없이 그들은 죽음과 싸우고 있다. 이기고 있다. 자신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작은 생명을 위해… 나의 아기가 이겨낸 것처럼 다른 모든 아기들도 파이팅하기를 진심으로 기도 드린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성모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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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9-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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