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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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맘'' 아기와 함께하는 행복

제3회 생명수호 체험수기 우수작(김윤욱 루카, 서울 행당동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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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여름, 서울의 한 여자고등학교로 교생실습을 나갔다. 내 전공과목으로는 철학ㆍ종교ㆍ윤리 등을 가르칠 수 있었는데, 마침 실습나간 고등학교에서는 철학과목이 개설돼 있었다. 천주교 학교였지만 비신자들도 많았기 때문에 전혀 복음적이지 않은 곳에서 하느님을 전해야 하는, 조금은 어려움이 느껴지는 수업이었다.
 수업은 주로 토론방식으로 이뤄졌다. 내가 수업을 직접 진행하기도 하고 다른 교생 선생님 수업에 참석해 함께 토론하기도 했는데, 내가 함께한 조에서 학생들과 토론했던 주제는 `리틀맘`이었다. `Little Mom.` 15~19살 청소년기에 임신한 아기를 낙태하지 않고 낳아 기르는 어린 엄마들을 말하며, 사회적에서는 이들을 미혼모라고 부르곤 한다.
 
 어린 날의 실수로 예상치 못한 임신을 했을 경우 리틀맘과 낙태의 기로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에 대해 6명이 토론하는 것이 수업과정이었다. 나는 학교에서 배운 것도, 나 스스로의 생각도 분명히 낙태는 큰 죄라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부 낙태를 원하는 학생들과 치열한 토론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정말 안타깝게도 많은 학생들은 서슴없이 리틀맘을 거부했다. 아니 주저 없이 낙태를 주장했다. 학생들이 낙태를 하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이런 것들이었다.
 
 어린 나이에 아기를 키울 자신이 없어서, 아기를 키울 돈이 없어서, 세상 사람들이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니까, 아기가 태어나면 가난한 엄마를 만나서 힘들게 살아야 하니까 아기를 위해서,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청년기에 아기가 내 인생의 발목을 잡으니까, 낙태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니까 굳이 임신한다면 낳아서 고아원으로 보내고 싶다….
 
 내 인생을 위해 내 자식을 서슴없이 죽인다는 아이들을 보면서 참 가슴이 아팠다. 그러나 어리둥절해 있는 것도 잠시, 낙태를 주장하는 학생들에게 조금은 날카롭게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말이야…. 돈이 없어서 못 기른다는 의견이 대부분인데, 그럼 돈이 많아서 아기를 충분히 기를 여건이 되고 사회적으로도 눈총을 받지 않는다면 그래도 낙태를 할거야?" "네? 어쩔 수 없잖아요? 제 젊은 인생을 아기 때문에 망치고 싶지는 않아요. 젊었을 때 하고 싶은 일도 많은데 아기가 있으면 힘들잖아요."
 과연 자신의 엄마가 세상 살기 힘들다고 "너 좀 죽어줘야겠다~"라고 말할 때 기꺼이 "네~ 엄마 인생을 위해서 제가 죽어 드릴게요"라고 말할 수 있는 아이들이 몇이나 있을까?
 
보다 못해 너무나 태연하게 아기를 귀찮아하며 낙태를 주장하는 아이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 지금 살고 싶니? 죽고 싶니? 누군가 너를 죽이려 든다면?"
 "네? 살고 싶죠!"
 "그럼 1년 전에는?"
 "살고 싶었죠."
 "5년 전에는?"
 "10년 전에는?"
 "초등학교 때는?"
 "어린 아이였을 때는 죽고 싶었어?"
 "그럼… 엄마 뱃속에서는 살고 싶었을까, 죽고 싶었을까?"
 "……"
 1년 전에도 살고 싶었고, 17년 전에도 살고 싶었고, 엄마 뱃속에서도 당연히 살고 싶었을 텐데 지금 자신이 주장하는 궤변에 대해서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다 다른 조에서 다른 아이들을 만났다. 조원 6명 중 낙태를 선택하겠다는 아이는 4명이었고, 리틀맘은 2명이었다. 그런데 독특하게도 리틀맘을 선택한 아이들의 구체적 의견은 아기를 낳아서 "길러야만 한다" 가 아니라 "기르고 싶다"는 것이었다. `아기 생명이 소중하니 일단 덮어놓고 낳아야 한다`를 넘어 `아기를 사랑하니까 아기와 함께하고 싶다`는 것이다. "왜 아기를 낳아서 기르고 싶어?"라고 묻는 나의 질문이 무안할 만큼 아이들 2명은 하나같이 그렇게 대답했다. 그리고 낙태를 한다는 아이들 4명을 향해서도 이렇게 말했다.
 "저는 제 아기를 갖는 것이 좋아요. 만약 아기가 생긴다면 아기를 낳아 기를 거에요." 여기에 같은 조 친구들은 "야~ 너 애들 기저귀 값이랑 분유 값이랑 어떻게 하려구? 대학교 간다고 해도 학교 때문에 아기를 못 기를 거고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취직이 되는 것도 아니잖아."
 "물론 힘들겠지. 하지만 내 아기가 나에게 주는 행복에 비하면 그런 경제적 문제는 아무것도 아닐 거 같아."
 의외로 당당한 그 친구에게 나는 다른 반 친구들을 통해 들은 반대의견을 제시해 보았다.
 "음… 사회적으로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시선이 힘들지 않겠어?"
 "아뇨, 저는 제 아기를 갖는 게 좋아요. 아기를 갖고 싶어요. 물론 너무 어린 나이에 아기를 낳게 되었지만 어디까지나 제 아기예요.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한다고 어떻게 낙태를 해요."
 "그리구요 선생님~ 아기 때문에 내 행복을 뺏긴다고 할 수도 있지만 아기가 저에게 주는 행복이 너무나도 클 거 같아요. 그리고 나중에 아기가 자랐을 때 엄마랑 나이 차이가 얼마 안 나서 서로 대화도 잘될 거 같아요."
 "어린 나이에 아기를 낳는 것이 무조건 어려운 점만은 아니에요. 젊은 나이에 낳은 아기들이 건강하고 산모에게도 더 좋잖아요. 그리구 언제까지나 리틀맘이 아니에요. 몇 년 만 지나면 우리도 성인이잖아요. 그때 당당하게 저는 제 아기와 행복하게 지낼 거에요. 물론 아빠가 도망가고 없을지도 모르지만 저는 제 아기와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다른 어려움들을 충분히 이길 만큼 행복해요. 제가 아기를 사랑하는 만큼 행복하게 해줄 거예요."

 나는 토론 전에 아이들에게 분명히 말했다. 선생님이 너희들보다 어른이긴 하지만 남자이기 때문에 `모성애`, 특히 어머니와 딸의 관계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이 있다고 먼저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를 듣고 보니 `이것이 엄마가 아기를 사랑하는 모성애구나…`라는 따뜻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살짝 눈물이 고였다.
 
 그 아이가 대견했다.
 "고아원에 보내는 게 아기에게 더 행복할 거예요."
 "제 인생을 구속할 수 있으니 낙태해야죠."
 "돈만 있으면 키우겠지만 어린 나이에 어떻게 돈이 있겠어요?"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수많은 친구들 속에서, 세상의 수많은 가치관 속에서, 아기를 향한 사랑인 `모성애`를 행복의 기준으로 선택한 열일곱 살 여고생이 나는 너무나 자랑스러웠고, 그 아이의 말 한마디를 통해 하느님의 작은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아이는 하느님의 품 안에 있는 아이, 하느님은 이 아이의 길을 비춰주시는구나…"
 
세상에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고 해도 모두 어머니 뱃속에서 어린 아기로 세상에 태어났다. 아무 힘없이, 누군가 죽인다면 죽을 수밖에 없는 미소한 존재로 이 세상에 함께했다. 지금 살고 싶다면 그때도 살고 싶었고, 그때 살고 싶었다면 그때 살고자 했던 의지가 지금의 힘든 삶을 이겨내는 큰 용기가 된다.
 이렇듯 인간의 삶과 생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소중한 관계이다. `낙태를 할 수밖에 없다`고 몰아붙이는 사람들 사이로, `낙태를 할 수는 없으니까`라며 마치 쓴 약을 받아 마시는 사람들 사이로, 아기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작은 생명의 싹을



가톨릭평화신문  2009-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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