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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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신비한 모든 생명을 존중

제4회 생명의 신비상 학술(인문과학) 분야 본상 진교훈(토마스,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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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가 주관한 제4회 생명의 신비상 수상자들의 시상식 강연 내용을 3회에 걸쳐 연재한다. △자연법으로 본 생명존엄 △낙태라는 폭력에서 어머니와 아기를 보호할 의무 △한 생명은 온 세상보다 소중하다 등이 각각의 주제이다. 생명에 대한 다양한 접근이 생명의 신비에 한발짝 더 가깝게 다가가게 해주리라 믿는다.

자연법으로 본 생명존엄


생명의 존엄성을 세 가지 관점에서 살펴보겠다. 첫째 생명의 신비의 오묘함을 이해하는 것이며, 둘째 모든 생명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것이며, 셋째 생명의 아름다움을 체득하고 구현하는 것이다.

 ▨생명의 신비의 오묘함
 생명의 본질은 신비로 가득 차 있다. 그 누구도 생명의 신비를 다 파헤쳐 보여줄 수 없다. 생명은 인간이 아닌 하느님께 속한 것이기에 생명은 성스러운 것이다. 인격이나 사랑과 같이 명시적으로 정의할 수 없는 신비한 개념이다.
 생명은 하느님께 속하기 때문에 거룩하고 불가침적인 신비스러운 것이다. 생명은 그 자체로 선하며, 도구화해서는 안 되는 가치를 지닌 것이다. 인간은 하느님께 속하는 생명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육체적 생명, 영혼적 생명, 우주적 생명, 영원한 생명 등 관점에 따라 생명의 범위는 매우 넓다. 우리는 단지 생명은 의미 있고, 가치가 충만한 것이라고 이해할 뿐이다. 우리는 생명에 손상을 입히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어떤 특정한 인간 생명만이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모든 인간이 동등하게 창조됐음을 수긍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든 인간이 하나의 인류를 이룬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국적ㆍ성별ㆍ인종ㆍ나이ㆍ재산ㆍ신체 조건 등에 상관 없이 충분하고도 완전한 생존권, 즉 살려는 권리를 가지고 있으므로 우리는 생명 가치에 어떤 제한을 둬서는 안 된다.
 자연법에 따르면 윤리적 행위는 하느님 창조법칙에 따라 이성을 가진 인간이 그의 자연적 본성에 합당한 행위와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하는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인간과 다른 동물과 교배`, 낙태, 인간배아 복제, 인간 유전자 조작 등 인간 생명을 조작하는 행위는 인간 본성의 질서와 인간 존엄성을 파괴하는 죄악으로서 자연법에 위배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교 신자는 인간 존엄성을 훼손하는 연구 등에 반대하는 여론을 형성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모든 생명에 대한 배려와 존중
 홀로 있는 생명은 없다. 나와 너, 나 아닌 `그 무엇`과 연결돼 있다. 나는 나와 연결된 또 다른 생명과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관계가 헝클어지거나 깨지면 사람도 함께 망가진다. 그 관계를 책임지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랑이다. 사랑하면 생명과 생명 사이에 빛이 들어와 사람과 사람 사이를 따뜻하게 한다.
 우리는 생명을 보전하기 위해서도 생명의 터전인 자연을 온전하게 보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이 다른 생명체의 희생을 바탕으로 살 수밖에 없다면 인간도 다른 생명체를 위해 불이익과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인간은 도울 수 있는 모든 생명체를 도와주고, 또 어떤 생명체에도 해가 되는 일을 삼가할 때 비로소 윤리적일 수 있다. 윤리적 인간은 이 생명 또는 저 생명이 얼마나 가치 있는가를 묻지 않는다. 그에게는 생명 그 자체가 거룩한 것이다.
 인간과 자연은 영원한 기쁨과 아름다움을 공유하고 있다. 인간과 자연은 나눠질 수 없는 하나이다. 우리는 자신의 생명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 다른 생명체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데도 극진해야 한다.

 ▨생명의 아름다움의 체득과 구현
 우리는 생명의 아름다움을 누릴 줄 알아야 한다. 생명의 아름다움을 마음 깊이 느끼고 찬미함으로써 생명의 신비를 체험하고, 생명의 존귀함을 배우며, 우리가 살아 있음을 감사해야 할 것이다. 생명의 숭고함을 우러러볼 줄 아는 사람은 생명을 감히 훼손시키지 못한다. 그러므로 생명에 대한 미학적 감상 능력을 기르는 것은 생명에 대한 외경심을 길러준다. 생명의 신비를 논리에 맞춰 합리적으로 정초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생명이 자기를 향해 부르는 소리에 대해 둔감할 수 없는 사람에게 생명존중은 자명한 것이다.
 우리 겨레가 중시해온 인정ㆍ순정ㆍ애정은 결코 자의(恣意)적인 감정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인간 사랑의 아름다운 표현이다. 우리가 생명의 아름다움을 체득할 때, 그리고 살아서 뛰노는 창조적 생명정신을 예술적 표현으로 널리 전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존중하도록 인도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생명을 존중한다는 것은 자연법을 준수하는 것이다. 우리 안에 영원한 생명의 섬광이 비추고 있고, 그 빛은 근본적으로 모든 존재를 비추고 있지만 우리의 미약한 감성은 그저 멀리서 그것을 예감할 수밖에 없다. 생명의 섬광을 환히 비추게 하고, 생명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하는 하느님 뜻이 이 땅에서도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 필자에게 주어진 임무이다.
정리=남정률 기자
사진=백영민 기자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0-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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